대기업 신입사원 응시자의 집단토론 모습.
효성그룹은 응시자를 5명 정도 소그룹으로 나눠 집단토론을 실시한다. 이때 돌발성 질문을 던진다. ‘서울에서 하루에 팔리는 짜장면은 몇 그릇일까?’ ‘한강물의 총무게는 얼마나 될까?’ 주어진 시간 안에 응시자들은 토론을 통해 답을 찾아가야 한다. 물론 짜장면이 몇 그릇이나 팔리는지, 한강물이 몇 톤이나 나가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효성은 정답 대신 답을 구하는 과정, 즉 팀워크나 소통 능력, 획기적 발상 등을 테스트한다. 우문(愚問)이지만 현답(賢答)을 내놓는 팀과 개인에게 우수한 점수를 준다. 학벌이나 어학 점수에 관계없이 선발하는 방식이다.
성장과 확장이 급선무이던 개발연대 시대를 달려온 국내 대기업의 채용 방식은 그동안 구태의연했다. 그런데 이런 채용 방식이 바뀌고 있다. ‘스펙 무용론’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빵빵한 이력서 시대가 가고 ‘통섭형 인재’ 채용 시대가 열리고 있다. 통섭형 인재란 인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양을 겸비해 통찰력과 종합적 사고력, 상상력,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뜻한다. 통섭형 인재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과 악조건을 뚫고 성취해내는 사람이다. 즉 상황을 꿰뚫어볼 줄 알고 돌파해나가는 편집력이 각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면접 무대에서 당신의 편집력을 드러내라.
# 제 속에 소설책 한 권이 숨어 있습니다
기업은 학벌 중심의 고학력, 고스펙을 갖춘 신입사원이 얼마나 나약한지 잘 안다. 화려한 스펙을 지닌 신입사원이 조직 적응력이 부족해 얼마 안 돼 퇴사하는 경우를 끔찍이 싫어한다. 스펙을 위한 봉사활동 경력은 무질서한 겉핥기로 보일 뿐이다.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한 우물’을 집중 탐구하라. 작은 경험, 큰 경험, 감동적 경험을 이어 붙여 스토리 한 편으로 집대성하라. 정답은 없다. 제대로 된 스펙 하나를 이루기까지 겪었던 고난과 노력을 표현하라. 스펙은 이력 한 줄이지만, 스토리는 비전과 미래 가능성을 드러낸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차별화한 발상을 실현하기 위해 도모했던 것을 ‘마이 스토리’로 편집해놓아야 한다.
# 신(新)신언서판 시대가 왔다
중국 당나라 태종은 기득권 세력을 억누르고 신진 관료를 등용하기 위해 과거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그때 급제 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즉 인간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인데, 요즘 같은 인성평가 채용 시대에도 유효하다.
신(身)은 첫인상이다. 부드러운 미소, 밝은 표정, 은은한 눈빛은 ‘얼굴로 보여주는 이력서’나 다름없다. 신분 좋은 고관 자제에 재주가 뛰어나도 첫눈에 풍모와 품격이 모자라면 결격사유가 된다. 언(言)은 표현력이다.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다 해도 말에 조리가 없고 자신감 없이 중언부언하면 평가받기 어렵다. 제대로 된 발성과 또렷한 말씨는 리더십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서(書)는 그 사람의 지식과 지혜 수준을 가늠하는 것으로 문(文)이라고도 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인문적 교양을 품었는지를 글씨와 문장력으로 시험했다. 판(判)은 상황 판단 능력이다. 경중, 완급, 전후좌우를 잘 살펴 치우치지 않게 결론을 내리는 편집력이다. 이는 현상에 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일목요연하게 기술하는지로 판정했다.
신언서판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단기 속성학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짧은 기간에 책 몇백 권을 읽었다고 지혜가 쑥쑥 자라지 않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두고두고 쌓아온 인격적 내공이 신언서판으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