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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채지형의 On the Road

바위야? 파도야?

서호주의 특별한 여행

  • 채지형 여행작가 www.traveldesigner.co.kr

바위야? 파도야?

바위야? 파도야?

푸눌루루 국립공원에 있는 벙글벙글.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안내자다. 호주가 자연과 가까운 나라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원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35억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암석 지형들은 새삼스레 ‘바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지구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형 가운데 하나인 호주. 그중에서도 서호주에는 독특하고 드라마틱한 절경이 모여 있다. 수만 년을 거쳐오면서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바위들의 형상은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신비롭기만 하다. 학창시절 머리를 쥐어짜게 한 지구과학이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줄이야.

호주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고 아직도 상당 부분이 베일에 감춰진 대륙이다. 풍부한 자연환경과 자연 보전에 대한 엄격한 법률 덕분에 호주는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의 무대, 벙글벙글

푸눌루루 국립공원(Purnululu National Park)에 있는 벙글벙글(Bungle Bungle)은 호주의 자연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곳의 하나로 꼽힌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가 개봉된 이후부터 벙글벙글 이야기는 언제나 영화의 배경지라는 설명으로 시작된다. 호주의 독특한 자연을 장엄하고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70% 정도가 벙글벙글을 비롯한 킴벌리 지역에서 촬영됐다.



벙글벙글은 영화의 주요 무대였을 뿐 아니라 주인공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험한 지역으로 등장한다.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벙글벙글은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아찔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나오다가 동글동글한 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차례차례 들어온다.

벙글벙글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겨우 25년 전. 1982년 항공사진이 공개되면서 세상사람들에게 처음 알려졌을 만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벙글벙글은 2000만년 전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지금처럼 독특한 바위 지형이 형성됐다. 벙글벙글에는 149종의 새와 600여 종의 식물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또 수만 년 전 애보리진의 암각화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호주에서만 사는 동식물이 발견돼 세계 자연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벙글벙글이라는 깜찍한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현지 사람들은 원주민의 지역명을 잘못 들었거나, 벙글벙글에 사는 식물인 번들번들 그래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벙글벙글 지형은 오렌지색과 검은색의 가로 줄무늬가 한 줄씩 이어진 벌집 모양. 바위에 새겨진 검은 줄무늬는 그 부분의 암석이 물을 잘 흡수해서 이끼와 규소가 침전해 생긴 것이다. 바람과 비가 사암이라는 거대한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놓은 자연 조각품이다.

벙글벙글을 산책하다 보면 특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작은 것은 몇 미터부터 큰 것은 해발 578m 높이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위 사이에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걷다 보면 진정한 아웃백(호주의 오지)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색도 무척이나 찬란하다. 대낮에는 오렌지 빛과 까만색의 줄무늬가 독특한 패턴과 색감을 자랑하다, 해가 질 때 강렬한 빛을 받으면 마치 공연을 하는 무용수처럼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고 춤춘다.

하루 동안 벙글벙글을 돌아볼 경우, 대부분 카테드랄 고지(Cathedral Gorge)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게 된다. 협곡 안의 물웅덩이가 보여주는 반영은 너무 현실적이라 어떤 것이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다. 벙글벙글은 4월에서 10월 사이에만 관광객에게 개방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또 벙글벙글을 여행할 때 명심해야 할 한 가지. 바위에 마구 올라가거나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자연유산이니까.

달리는 바위 파도, 웨이브 록

바위야? 파도야?

오랜 시간 표면 밑의 부드러운 바위가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웨이브 록.

서호주 여행을 하면 한 번쯤 보게 되는 포스터가 있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 위에서 서핑하듯 손을 양쪽으로 벌리고 있는 사진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바위는 마구 달려오는 파도처럼 생겼다.

이곳이 바로 퍼스에서 동쪽으로 350km를 달리면 나오는 웨이브 록(Wave Rock). 서호주에 가면 왕복 700km의 거리를 이 바위 하나를 보기 위해 달린다. 힘들게 가서 바위 하나만 보고 온다고 허무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바위 자체도 놀랍지만 주변 동굴에 있는 애보리진의 흔적, 흙먼지 날리는 아웃백 길들, 오며 가며 들르는 자그마한 도시들을 생각하면 웨이브 록으로의 여행은 강력 추천할 만하다.

웨이브 록은 길이 110m에 높이 15m의 거대한 바위. 지층이 압력을 받아서 물결 모양으로 변형된 것으로, 27억년부터 계속 풍화작용을 거치고 있다. 오랜 시간 표면 밑의 부드러운 바위가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것. 놀라운 것은 이 바위가 여러 개의 작은 바위가 모인 게 아니라 하나의 화강암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경이롭다는 말은 웨이브 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웨이브 록을 따라 가면 파도의 끝,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 위에 서면 서호주의 아웃백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눈이 시원하다. 주변에 하마가 하품하는 모습과 닮은 하마의 하품(Hippo’s Yawn)을 비롯해 애보리진의 흔적이 있는 멀카스(Mulka’s Cave) 등 동굴과 바위가 남아 있다.

사막 위에 펼쳐진 바람의 조각품, 피너클스

벙글벙글, 웨이브 록과 함께 꼭 들어가야 할 곳이 피너클스(Pinnacles)다. 피너클스는 국내외 영화와 CF 촬영지로 유명한 여행지. 흰개미 집을 생각나게 하는 이 돌기둥들을 보노라면, 이곳이 지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피너클스에는 기괴하게 생긴 석회암 바위가 모여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리가 상상하는 우주의 표면 같다.

무려 1만5000여 개의 석회암 기둥이 반짝거리는 황금빛 사막 위에 울쑥불쑥 솟아오른 모습이라니. 피너클스에 있는 개성 넘치는 바위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수만 년 동안 불어온 강한 바람이 사막의 모래를 실어와, 이 부근에 있는 식물 뿌리 주변의 석회암 덩어리가 드러난 것이라 한다. 이 석회암이 비바람을 맞으면서 계속 변해가는 것. ‘피너클스’라는 지명의 뜻이 ‘바람 부는 강’이라는 말을 들으니, 삭막해 보이던 사막이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새파란 하늘과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그 사이에 있는 신기한 바위들은 어떤 곳에서도 만나지 못할 놀라운 경험이다. 서호주의 지형과 바위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세상. 이래서 여행은 언제나 떠나볼 만하다.



주간동아 2009.06.09 689호 (p88~89)

채지형 여행작가 www.traveldesign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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