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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어른들은 몰라요

초등생의 性 어른들은 몰라요

유해매체에 노출 심해 저학년 때부터 왜곡된 성에 눈떠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초등생의 性 어른들은 몰라요

초등생의 性 어른들은 몰라요
#1. 열두 살 여자아이 예빈(가명)은 키 크고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쏙 빼닮은 같은 반 친구 지성(가명·12)을 4학년 때부터 좋아했다. 사랑을 고백하라는 친구들의 말에 몇 번을 망설이다 고백했고, 친구들이 인정하는 ‘공인 커플’이 됐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일을 나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예빈은 혼자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성을 만나면서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함께 만화책을 보고 인터넷도 하면서 자연스레 스킨십도 늘어갔다. 손잡고 키스하고 결국 성관계로까지 이어졌다. 무섭긴 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성관계를 했다며 자랑까지 했을 정도다.

할머니에게 둘의 관계를 들킨 그날도 예빈과 지성은 집에 함께 있었다. 여느 때처럼 둘은 옷을 벗고 한 이불에 누워 스킨십을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이른 할머니의 귀가에 예빈과 지성, 할머니 모두 당황했다. 예빈은 할머니에게 혼난 뒤 학교의 처벌이 두려워 무작정 가출했다. 하지만 당장 갈 곳이 없던 예빈은 친하게 지내던 중학생 언니들을 따라 PC방을 전전했고 당장 돈이 필요해 인터넷 채팅을 통한 ‘조건 만남’을 시작했다. 성관계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었던 예빈에게 조건 만남으로 번 시간당 10만원은 큰돈이었다. 얼마 뒤 예빈은 경찰의 인터넷 성매매 단속에 의해 적발됐고 현재 청소년쉼터에서 치료받고 있다.

#2. 철이(가명·12)는 친구 사이에서 ‘야동(야한 동영상) 킬러’로 불린다. 안 본 야동이 없을 만큼 야동에 대해 해박함을 자랑하며 친구들이 원하면 파일을 구해 보내주는 일도 도맡아 한다. 철이의 야동 공급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의 컴퓨터. 형이 숨겨놓은 야동을 발견해 보다가 이제는 P2P를 통해 직접 다운받는다. 야동을 볼 때마다 철이는 야동에 나온 장면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야동을 함께 보는 친구와 서로 성기를 만져주고 자위행위도 해봤지만 실제로 여자와 하면 기분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철이는 동네에서 함께 잘 놀던 후배 미영(가명·10·여)을 집으로 불러 야동을 보여줬다. 신기해하는 미영에게 철이는 “우리도 저것처럼 해보지 않을래?”라며 슬쩍 말을 건넸다. 싫다는 미영에게 “그럼 앞으로 너랑 안 놀 거야”라며 위협했고, 결국 야동 장면들을 흉내내며 성관계까지 맺었다. 이후에도 철이는 몇 번씩 미영을 불러내 성관계를 맺었다. “엄마, 나 오줌 누는 데가 아파”라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미영 엄마는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철이를 전학 보내는 것으로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 했지만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미영은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상담소의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음.)



성관계, 성매매, 야동, 동성애, 성폭력. 어른에게도 버거워 보이는 일들이 앞선 사례들에서 보듯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초등학생 간 성행동 문제는 학교에서 인지하고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보다 학교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인지했더라도 공식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초등학생 상호간 성추행 및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초등학생은 형사책임을 질 나이가 안 되기 때문에 고소장이 접수돼도 피의자 신분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다”며 “민사책임을 묻는 것과는 별도로 초등학교 내부적으로 학교폭력방지대책회의에서 성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사이에서의 키스나 애무 같은 성접촉과 성교행위(섹스)를 의미하는 성경험 등 성행동은 많은 어른들의 관심거리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중·고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에 대한 성매매, 성폭력 사건은 종종 사회적 이슈가 되긴 했어도 초등학생 상호간 성접촉과 성경험은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였다. 어른 시각에서는 “아직 엄마 젖도 안 뗀 초딩 녀석들이 무엇을 알겠느냐”는 인식이 팽배했다.

성 상담 사이트에는 초등생의 성 고민 글 가득

초등생의 性 어른들은 몰라요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 접촉은 초등학생의 성 인식을 왜곡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은 이 같은 고정관념에 매서운 주먹을 날린다. 초등학생 성문제를 단지 소수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초등학생의 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미 어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실제로 청소년기에 성접촉 및 성경험을 하는 나이대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내려가고 있다(커버스토리 두 번째 기사 참조). 성접촉이나 성경험이 없다 해도 성에 대한 초등학생의 관심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 자녀가 어른의 인식 수준을 벗어난 성행동을 해 충격에 휩싸인 부모도 적지 않다. 한서가정상담센터 이종석 센터장은 “초등학생 남매가 성행위를 흉내내는 모습을 보고 놀라 게시판에 상담글을 올린 부모도 있었다”며 “부모는 ‘내 자식은 아닐 거야’라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초등학생이 성에 관심을 보이고 성접촉 및 성경험이 급증하는 원인은 음란사이트, 성인 영상물 등 유해매체에 노출되기 쉬운 데다 이를 무방비 상태에서 모방하기 때문이다. TV를 켜면 케이블 채널은 물론, 심지어 공중파에서도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이 나올 정도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애실(38·여) 씨는 “드라마를 좋아해 자녀들과 TV를 함께 보는 경우가 많은데 같이 보기에 낯 뜨거운 장면이 너무 많다”며 “그래도 예전에는 밤 9시 뉴스 하기 전까지는 애들과 함께 TV를 봐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슬아슬한 수위의 장면들이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여러 채널에서 쉴새없이 나온다”고 불만스러워했다.

게다가 발달된 인터넷은 초등학생들이 이성친구를 만나고 음란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된다. 기자가 직접 한 여자 초등학생의 아이디(ID)로 버디버디 메신저와 하늘사랑 채팅사이트에 접속하자 ‘오빠랑 ㅈㄱ(조건 만남)할래?’ ‘야동 같이 보고 싶은 사람’ 등의 쪽지가 1분에 수십 개씩 날아들었다.

현실성 있는 성교육의 부재도 문제다. 부산 안진초등학교 김숙희 보건교사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중학생에 버금간다”며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성지식의 양극화가 나타나 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학생들에겐 2차 성징이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미 다 아는 학생들에겐 남녀 간 성행위도 시시하게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초등학교 성교육의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초등학생의 성을 터부시하면서도 이성관계를 부추기는 듯한 어른들의 이중적 태도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초등학교 3학년 안모(9) 양은 “어른들이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볼 때가 많다”며 “이성친구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잘나가는 정도가 달라진다. 친구 사이에서도 남자친구가 없으면 왕따 당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물론 예전에 비해 초등학생의 성접촉 및 성경험 사례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전체적으로는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초등학생이 성에 눈뜨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박모(12) 군은 “초등학생도 성에 관심이 많고, 알 건 다 아는 작은 어른”이라면서 “우리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른들은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의 성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전성폭력상담소 이현숙 소장은 “초등학생이 성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하지만 아직 성에 대한 가치관이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의 성행동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성행동에 대한 적절한 판단 기준이 없다 보니 일 대 다수, 물리적 힘, 인식의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성폭력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성문제 관련 상담글만 한 달에 600건씩 올라오는 인터넷 사이트 ‘구성애의 아우성’(http://www.9sungae.com). 초딩게시판에는 월경, 몽정 등 신체적 변화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지만 성접촉, 성경험 등 성행동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이들의 고민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초등학생에게도 성은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바야흐로 초등학생들이 성에 눈을 뜬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른이 이런 점을 인정해야만 초등학생의 성행동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초등학생의 성행동은 그동안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누적된 부분들이 곪아 터진 것입니다. 그릇된 성문화가 국가의 멸망을 초래하지는 않지만,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 이 시대와 한국 사회의 빛이 돼야 할 한 개인은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의 성행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바로 우리 어른의 몫입니다.”(우둠지누리 아동청소년 성문화센터 황정희 소장)



주간동아 2008.10.21 657호 (p36~38)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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