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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방사선 쬔 김치, 마취된 고등어, 질소 먹은 사과… 맛도 과학이다

신선도 유지 위한 기법 갈수록 첨단화

  • 김원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sboys@donga.com

방사선 쬔 김치, 마취된 고등어, 질소 먹은 사과… 맛도 과학이다

방사선 쬔 김치, 마취된 고등어, 질소 먹은 사과… 맛도 과학이다
우주로 배달된 김치와 수정과

“아마 매울걸요?”

“매콤하군요. 맛있네요.”

4월13일 지구로부터 350km 떨어진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우주인 이소연 씨와 러시아 우주인이 최초로 만찬을 즐겼다. 먹을거리는 밥과 볶은 김치, 된장, 수정과였다. 김치 없이는 못 사는 우리나라 사람을 위한 식단은 역시 김치에 밥이다.

한국식품연구원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한국형 우주인 식단을 마련했다. 우주김치는 물론 청국장, 당근즙, 된장, 고추장, 인삼 음료까지 개발했다. 한국식품연구원 김성수 박사는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기 때문에 체내에 저장된 칼슘이 하루 1% 정도 빠져나가는데, 우주김치는 부족한 칼슘을 채워 골다공증을 막는 건강식품이 된다”라고 밝혔다. 우주로 김치를 공수하기 위해서는 영하 70℃로 냉동 건조해야 한다.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냉동 건조된 우주김치에 물을 조금 넣으면 먹을 준비는 끝난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이주운 박사가 개발한 우주김치에는 방사선을 쬔다. 코발트 60에서 나오는 감마선을 쬐면 멸균도 되고 신선도가 오래 유지된다. 또 미생물에 의한 변질을 막기 위해 질소가스를 넣는데, 이 방법이 김치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 박사는 “김치 이외에 쇠고기죽, 갈비, 수정과도 개발했다”고 밝혔다.

만약 6개월 이상 우주여행을 한다면 먹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식량을 무한정 많이 실을 수는 없다. 우주선에서의 자급자족은 긴 우주여행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소다.

미국항공우주국과 유럽우주기구는 남조류의 일종인 스피룰리나를 장기 우주여행의 기본적인 식량으로 개발하고 있다.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스피룰리나는 8㎛(마이크로미터, 1㎛ = 10-6m) 굵기에 300~500㎛의 길이로 녹색을 띤다.

우주식량으로 스피룰리나가 각광받는 이유는 극한 환경에서도 스스로 단백질이나 비타민, 인체에 유용한 미네랄을 합성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열대지방의 소금호수에서 사는 스피룰리나는 pH 7~8의 중성 환경에서 영양소를 가장 활발하게 합성하지만 pH 11.5의 강알칼리성 환경에서도 살 수 있을 만큼 생존력이 강하다.

오래전 병조림과 통조림이 개발돼 괴혈병에 시달리던 선원들을 살렸듯, 스피룰리나가 우주식량으로 개발되면 오랜 기간 우주를 여행할 우주인의 먹고사는 문제는 한시름 덜게 될 것이다.

신선도 비결은 마취

방사선 쬔 김치, 마취된 고등어, 질소 먹은 사과… 맛도 과학이다

한국형 우주식량.

이제 지구로 내려와보자. 먹을거리의 생명은 신선도에 달렸다. 원산지에서 식탁까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대형 마트에 유통되는 농수산물은 온통 과학으로 포장돼 있다.

꽃게는 저온으로 마취한다. 바닷물을 오존으로 살균처리하면 물속 용존산소량이 크게 늘어난다. 그 상태로 영하 5℃를 계속 유지하면 꽃게는 마취된 채 신선도를 유지한다. 이마트의 임대업 수산 바이어는 “이런 오존 살균해수 기법으로 마트에서도 활꽃게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침 맞는 고등어도 등장했다. 고등어는 바다에서 건져내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지 못한다. 산지에서 유통업체로 전달되면 5~6시간밖에 살지 못한다. 등푸른 생선으로 주목받는 고등어도 신선도가 떨어지면 그만큼 인기 또한 떨어지게 마련이다. 고등어의 수명 연장을 위해 ‘침술수면요법’이 등장했다. 김석 이마트 수산 바이어는 “고등어의 특수부위에 침을 놓으면 마취가 되면서 아가미와 같이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관만 움직여서 오래 산다”고 설명한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기가 떨어진 달걀도 애지중지 다뤄지기는 마찬가지. 양계장에서 도착한 달걀은 항상 시원한 여름을 보낸다. 단백질이 가득한 달걀이 고온에 노출되면 금방 상하거나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양계장을 떠난 달걀은 10℃ 이하 저온으로 소비자의 손에 닿을 때까지 냉장 보관된다.

방사선 쬔 김치, 마취된 고등어, 질소 먹은 사과… 맛도 과학이다

미국, 러시아의 우주식량(아래)과 전복. 전복은 바닷물에 담가 기포발생기를 달아서 신선도를 유지한다.

포장에 기체를 이용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 부분에 사용되고 있다. 돼지고기, 쇠고기는 산소로 포장한다. MAP 산소포장법이라는 방법으로, 탄산가스와 산소·질소를 포장하려는 식품의 종류와 저장기간에 따라 다른 비율로 넣으면 신선도가 연장된다.

사과나 딸기 같은 과일도 마찬가지다.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보관할 때는 산소량을 최대한 줄이고 질소를 넣어준다. 일종의 질소로 마취하는 효과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전복에는 기포발생기를 달아준다. 산지에서 수확한 전복을 바닷물에 담가 기포발생기를 달아서 꾸준히 생명을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기체로 신선도를 유지하는 식품에는 맥주도 포함된다. 네덜란드 맥주브랜드인 하이네켄이 내놓은 가정용 5ℓ 생맥주는 30일 동안 김 빠지지 않는 포장용기에 담았다. 비결은 압축 이산화탄소. 용기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달아 맥주를 개봉해 따르면 빈 공간에 압축돼 있던 이산화탄소가 나오면서 채워진다. 맥주를 오래 두면 김이 빠지는 현상은 외부 공기와 접촉하면서 맥주에 녹아 있던 기체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압축 이산화탄소는 빈 공간을 이산화탄소로 채워 공기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 원리다.

식품 이외의 제품도 눈길을 끈다. 동아사이언스에서 만든 초등과학 실험 교재인 미션키트에는 요오드용액, 시온잉크, 구연산 등 특수재료가 들어간다. 재료의 변질을 막기 위해 PVC 계열의 용기가 아닌 강도 높은 유리용기를 사용하고 탄성력이 높은 스펀지로 이중보호 장치를 했다.

대형 마트가 유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포장 및 유통 방법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런 방법을 기능성 포장 또는 액티브 포장(active packaging)이라 부른다. 기능성 포장은 가스 제거, 활성물질 방출, 가스 조절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냉동 건조시키는 우주김치는 포장 내부의 산소나 에틸렌, 수분을 제거하는 가스 제거 방법이고, 맥주에 이산화탄소를 불어넣는 방법은 활성물질 방출 기술이다.

이 밖에도 항균성 포장, 향기성분 방출 포장, 식용색소 함유 포장, 항산화제 방출 포장, 자외선 차단 포장, 효소저해제 함유 포장, 정전기 방지 포장, 방담 포장(anti-fogging), 이물질 투입방지 포장(temper proof), 절취방지 포장(pilfer proof), 생분해성 포장 등 각종 기능성 포장재가 개발 중이거나 이미 출시됐다.

신선한 먹을거리를 원하는 것은 생물의 기본적인 욕구다. 포장은 제품을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 포장과 제품이 서로 반응해 신선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포장은 과학이다.



주간동아 2008.06.17 640호 (p60~62)

김원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sbo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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