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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촛불, 역사로 타올랐다

민심 없는 기성 언론 out 인터넷으로 뜨겁게 通했다

촛불집회 생중계와 난상토론의 場 … 여과장치 없이 자극적 역기능 지적도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민심 없는 기성 언론 out 인터넷으로 뜨겁게 通했다

민심 없는 기성 언론 out 인터넷으로 뜨겁게 通했다

대안 공론의 장으로 떠오른 미디어다음의 ‘아고라’.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우리 다 머리에 구멍 나요. 막아주세요.”

인터넷에 처음 이런 이야기가 올라왔을 때 정부와 언론은 괴담, 선동 정도로 생각해 공론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버’ ‘미디어다음’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포털을 통해 이 같은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는 사안으로 커졌다.

흩어진 개개인 하나로 묶는 구실 톡톡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앞두고 인터넷은 흩어진 개개인을 하나로 묶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 현장에 나간 누리꾼(네티즌)들은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로 촛불집회 현장을 밀착 취재해 인터넷에 생중계했다. 누리꾼들은 인터넷에 생중계되는 집회 현장과 전경이 촛불집회 중 쓰러진 여학생을 군홧발로 짓밟는 동영상을 보며 분노했다. 이 같은 분노는 다시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됐다.

2008년 5, 6월 대한민국의 민심은 인터넷을 통해 요동치고 있다. 네이버에 올라온 광우병 관련 기사에 댓글이 달리면서 누리꾼들은 의견을 공유해나갔고, 미디어다음의 아고라에서는 누리꾼들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올려 여론을 주도했다. ‘조용한 가족들이 뿔들이 났네요’ ‘촛불집회를 다녀온 어느 초등학교 4학년의 일기’ 등 누리꾼 글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닌 공론이 됐다.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둘러싼 공론의 장(場)으로 기성 언론이 아닌 인터넷을 택한 까닭 가운데 하나는 기성 언론들이 국민의 불만과 우려를 제대로 공론화하지 못해서라는 지적이 거세다.

촛불집회 참가자 김준영(29) 씨는 “정부나 언론이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경청하고 반영했다면 이처럼 문제가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집회 참가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데다 일부 언론이 ‘불법시위다, 무법자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니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공간만의 고유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설명도 있다. 김경달 네이버 정책담당수석은 “인터넷은 접근성이 뛰어나다. 예전처럼 광장에 모여 대화를 주고받지 않아도 네트워크상에서 정보교류를 활발히 해나갈 수 있다. 주고받는 의견들이 이어져 하나의 공론으로 성장할 용이성이 있다”면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우리 모두가 유저(user)가 돼 쉽게 소통할 수 있는데, 이는 인터넷이 가지는 중요한 특성”이라고 말한다.

기성 언론이 수많은 독자의 의견을 반영하기엔 좁은 공간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이끄는가’의 저자 고경민 씨는 “기성 언론은 지면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공론의 장을 만들어 일반인의 의견을 다 수렴하는 데 제한적”이라며 “더욱이 언론은 쌍방향 의사소통보다 일방통행식으로 의견을 전달했고, 그 결과 공론장이 인터넷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이 공론장의 대안공간으로 주목받는 데 대해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대학생 정문선(27) 씨는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촛불집회 광경을 보고 기사에 댓글을 남겼다”며 “관련 댓글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고, 실시간으로 다른 누리꾼들과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네이버 김 수석도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단 지금도 논의가 많이 되고 있지만, 인터넷 윤리와 네티켓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좀더 성숙한 대안공간이 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민심 없는 기성 언론 out 인터넷으로 뜨겁게 通했다

5월14일 서울시청 앞에서 중·고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포털 권력화 여론 호도 가능성도 커

인터넷을 통한 소통 공간 마련이 디지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경희대 송경재 교수(인류사회재건연구원)는 “인터넷을 통한 공론이 감성적으로 흐른다는 편견도 있지만, 이번 쇠고기 파문의 경우 이슈는 감성적이었지만 대응논리는 이성적이었다”며 “인터넷을 통한 여론 조성이 정책결정에 반영되는 선순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인터넷이 건전한 대안공간으로 기능하기엔 한계를 지닌다는 지적도 있다. 숭실대 김민기 교수(언론홍보학)는 “인터넷을 통한 공론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다”며 “최근 일부 신문에 광고를 싣는 업체들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사실 확인은 뒤로한 채 자극적인 제목으로 글을 올리는 것 등이 그런 예”라고 설명했다.

실제 누리꾼들이 미디어다음의 아고라와 인터넷에 게재된 기사 댓글에 일부 신문에 광고를 싣는 회사들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았고,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해당 회사에 ‘광고를 싣지 말라’고 항의전화를 했으며, 자신들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회사 홈페이지를 다운시키기도 했다. 결국 중앙일간지에 광고를 실으려던 M제약사는 누리꾼들의 항의로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처럼 포털이 권력화됨에 따라, 정치적 관점에서 포털이 원하는 기사만을 올리고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숭실대 김 교수는 “포털은 모든 매체의 평등화를 가져왔다. 인터넷상의 포털 메인 화면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주장이 담긴 블로그나 UCC(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가 주류 언론의 기사와 동등하게 취급된다”면서 “포털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할 여지가 적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기성 언론이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고 공론장의 구실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경희대 송 교수는 “기성 언론과 인터넷은 대체관계가 아닌 보완관계”라면서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된 여론이 합리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언론이 공론장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학자들은 언론이 갖는 힘이 독자에게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공론의 장을 인터넷에 빼앗겼다는 사실은 언론 스스로 뼈저리게 아파해야 할 문제다. 언론이 잃어버린 공론의 장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인터넷 공론장의 역기능을 상쇄하는 객관적 공론장으로서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주간동아 2008.06.17 640호 (p38~39)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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