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2007.06.05

피프틴 레스토랑, 런던 명물 됐네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설립…불우 청소년 자립 꿈 맛있게 요리

  • 런던=전원경 작가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07-05-29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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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프틴 레스토랑, 런던 명물 됐네

    ‘피프틴 런던’은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런더너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런던의 레스토랑 ‘피프틴(Fifteen)’은 음식점치고는 좀 엉뚱한 곳에 있다. 시티 지역 올드스트리트와 시티스트리트가 교차하는 지점, ‘무어필드 안과병원’ 맞은편 골목에 숨어 있다. 허름한 4층 벽돌건물. 처음부터 레스토랑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님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내부는 바깥과 달리 사뭇 활기찬 분위기였다. ‘피프틴 런던’에는 두 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하나는 격식 있는 메뉴를 서빙하는 레스토랑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층의 입맛에 맞춘 트라토리아다.

    두 홀 모두 손님이 가득하다.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평일 오후 2시15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간에 예약했다. 그런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동행한 영국 친구 이블린에게 물었더니, 런더너들에게 워낙 인기 있는 식당이라 그렇단다.

    피프틴이 인기 있는 까닭은 명백하다. 레스토랑 설립자가 바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32)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다. 영국 음식은 유럽에서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영국인들은 새로 나온 요리책을 사고 TV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직접 요리하는 데는 서툴면서도 요리를 하나의 레저나 취미로 생각하는 것이다.

    제이미는 이런 요리 열풍이 탄생시킨 스타 요리사다. 신선한 재료로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내는 제이미 특유의 명쾌한 요리법은 ‘네이키드 셰프’ ‘제이미의 키친’ 등 7개 TV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며 수백만명의 시청자를 열광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케이블TV가 제이미 프로그램을 방영해 그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아마도 제이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토니 블레어 총리만큼 유명한 영국인일 것이다.



    그러나 제이미가 뛰어난 이유는 그가 단순히 ‘쿨’한 요리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모든 음식을 튀겨 내는 영국의 질 낮은 학교 급식에 반기를 들고, 신선한 채소와 고기로 만든 음식으로 급식의 질을 개선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그는 또 요리를 통해 불우 청소년에게 살길을 찾아주겠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피프틴은 바로 이 같은 제이미의 꿈이 실현된 레스토랑이다.

    분위기, 음식맛 훌륭 놀라운 체험

    2002년 문을 연 ‘피프틴 런던’의 직원은 모두 불우 청소년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거리를 떠돌던 이 문제아들은 하나같이 요리해본 경험이 없었다. 제이미는 이런 청소년 열댓 명을 모아 요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요리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그는 레스토랑 피프틴을 열고 이들을 실전에 투입했다.

    ‘요리를 통해 불우 청소년을 자립시킨다’는 백일몽 같은 계획은 놀랍게도 성공을 거뒀다. ‘더 타임스’ ‘인디펜던트’ ‘이브닝 스탠더드’ 등 런던의 일간지들이 모두 이 레스토랑의 음식을 “훌륭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더 타임스’는 “(이 레스토랑을 연 공로 하나만으로도) 제이미는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피프틴은 런던 외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호주 멜버른, 영국 콘웰에 분점도 냈다. 피프틴 홈페이지(www. fifteenrestaurant.com)에는 이들 레스토랑에서 일할 불우 청소년을 선발한다는 모집공고가 늘 실려 있다.

    “불우 청소년의 의미는 광범위합니다. 일단 직업이 없어야 하고, 집이 없거나 가난한 환경이라면 대환영입니다. 학교를 중퇴한 사람도 좋습니다. 경찰서에 잡혀간 경험이 있거나 교도소를 다녀온 사람도 물론 환영합니다.” 피프틴 홈페이지에 실린 요리훈련생 모집공고의 한 구절이다.

    피프틴에 채용된 불우 청소년은 1년간의 도제식 수업을 통해 요리사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된다. 특히 농장과 밭, 어시장 등을 직접 찾아가 식재료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한다고 한다. 이는 물론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재료’라는 제이미의 철학 때문이다. 한 사람의 요리사로 성장한 청소년들은 ‘졸업’ 후에도 계속 피프틴의 후원을 받으며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다. 졸업생 중에는 런던은 물론 유럽과 미국의 레스토랑에까지 진출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트라토리아를 예약한 우리는 자리로 안내받아 메뉴판을 펼쳤다. 이곳의 모든 요리는 이탈리안 스타일을 표방한다. 가격은 메인 메뉴가 15~18파운드(3만~3만6000원), 와인은 한 잔에 5파운드(1만원) 수준이다. 한 사람이 점심을 먹는 데 드는 비용은 25파운드(5만원) 정도. 런던의 음식값과 비교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피프틴 런던의 주방은 제이미의 친구인 18년 경력의 요리사 스티븐 룰리가 총괄하고 있다.

    우리는 립아이 스테이크와 오리다리구이, 로제 와인을 시켰다. 제이미의 철학처럼 요리 재료는 아주 신선했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낸 솜씨도 훌륭했다. 와인 리스트는 무난했고, 서빙은 숙련된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깔끔했다. 최근 피프틴 런던은 요리전문 월간지 ‘올리브’ 6월호에서 10점 만점에 9점을 받았다. 신분을 숨기고 피프틴을 방문한 여섯 명의 평가단은 “요리 수준이 완벽했으며 서빙도 격의 없이 진행됐다. 동화 같다고 생각했던 제이미의 꿈이 실제로 이뤄지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평가했다.

    요리로 좀더 나은 세상 만들기

    피프틴 레스토랑, 런던 명물 됐네

    제이미 올리버(위 가운데)가 불우 청소년 출신인 피프틴 요리사들과 포즈를 취했다.

    네 곳의 피프틴 레스토랑에서 거둬들인 수익금은 모두 ‘피프틴재단’으로 들어간다. 말하자면 피프틴의 주인은 제이미가 아닌 피프틴재단인 것이다. 제이미는 피프틴재단 이사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이제 피프틴은 제이미의 이름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피프틴의 성공은 제이미 올리버라는 셀레브리티를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백만장자 제이미가 불우 청소년을 돕는 일도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피프틴의 성공은 여전히 경탄할 만한 일임이 분명하다. 이 식당은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음에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제이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불우 청소년에게 무조건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준다는 것 역시 피프틴이 이뤄낸 성과다. 자신의 요리로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제이미. 런던의 한 모퉁이에서 그의 동화 같은 꿈은 조용히, 그러나 차근차근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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