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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던 소녀, 과학계의 별이 되리

천체물리학도 박나희 씨, 남극서 우주 전파신호 잡고 탁월한 데이터 분석 ‘세계가 주목’

  •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별 헤던 소녀, 과학계의 별이 되리

별 헤던 소녀, 과학계의 별이 되리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어요. 시야에 들어온 풍경의 반인 아래쪽은 모두 새하얗고, 위쪽은 새파래요. 사방을 둘러봐도 같은 풍경이죠.”

남극에 대한 첫 느낌을 묻자 이화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박나희(29·사진)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박씨는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 남극에 다녀왔다. 천체물리학도인 그의 임무는 남극 하늘에 거대한 ‘풍선’을 띄우는 것.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신호를 받기 위해서다. 영화 ‘콘택트’에서 주인공인 천체물리학자 앨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분) 박사가 우주에서 오는 전파신호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남극 하늘에 풍선 뜨던 날

박씨는 2004년 12월15일을 잊지 못한다. 남극대륙 로스섬에 있는 맥머드 기지로부터 자동차로 20여 분 떨어진 윌리엄 필드에서 연구팀이 풍선을 처음 띄워올린 날이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를 찍는 것 같았어요. 우리 연구팀이 아닌 사람들도 풍선 뜨는 장면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죠. 손에는 저마다 카메라며 캠코더를 들고 말이에요.”



지름이 180m나 되는 초대형 풍선에 헬륨가스를 채워 완전히 부풀리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긴장한 탓에 캠코더를 든 박씨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다 부푼 순간, 풍선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뒤로한 채 남극 하늘 42km 상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풍선을 성공적으로 띄워올린 기쁨도 잠시. ‘떨어지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에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연구실로 달려갔다. 풍선이 남극 상공을 나는 약 한 달 동안에는 박씨의 연구팀이 조정을 맡았고, 그 이후에는 미국 텍사스에 있는 팔레스타인 기지와 메릴랜드대 기지가 맡았다.

풍선은 40여 일 동안 계속 하늘에 떠 있었다. 다른 연구팀이 세운 최장 기록은 32일. 박씨 연구팀의 실험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풍선에는 한국 연구팀이 개발한 검출기가 달려 있다. 이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우주입자를 찾아내기 위한 첨단장비다. 이화여대와 경북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천문연구원이 2003년 공동 개발한 것이다. 박씨도 물론 검출기 개발에 참여했다.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입자가 떠돈다. 이들이 지구로 들어와 대기 중의 성분과 충돌하면 수백 종류의 또 다른 입자가 생긴다. 지구상의 동식물은 이 같은 우주입자를 수초당 하나씩 맞으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땅 위에서 검출하기가 쉽지 않아 우주입자가 어디서 생기는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고에너지 우주입자는 서울 정도 면적에 1년에 한 번 떨어질까 말까 할 정도다.

그나마 지상에 떨어진 입자도 대부분은 부서진 상태다. 부서지기 전 원래 상태의 우주입자를 검출해야 정확한 연구를 할 수 있는데 난감한 일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우주입자 검출기를 풍선에 매달아 아예 입자가 많은 우주와 가까운 상공으로 띄워올리기로 한 것이다. 박씨는 “42km 정도 상공에서는 우주입자의 약 99%가 부서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남극에서 띄웠을까.

“남극에선 바람이 남극점을 중심으로 제자리에서 둥글게 돌면서 불어요. 풍선이 제자리에 머물기 때문에 오래 측정할 수 있고, 검출기도 회수할 수 있죠.”

반면 한국 상공에는 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풍선을 띄우면 동쪽으로 날아가버린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밤

별 헤던 소녀, 과학계의 별이 되리

박나희 씨는 남극에 풍선을 띄워 우주입자를 연구했다.

“남극 맥머드 기지는 하나의 마을 같아요. 세계 각국 과학자들은 이곳에 한번 오면 오래 머물다 가죠. 그래서 머무는 동안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숙사, 발전소, 식당, 체육관, 과학센터 등 각종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요.”

맥머드 기지의 과학자들은 아침 7시에 식당으로 나와 식사한 뒤 7시 반경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려 실험장소인 윌리엄 필드로 간다. 그때부터 오후 5시까지 풍선의 상태나 통신시스템 등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세우는 등 연구 일과가 진행된다.

여름에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니 처음 이곳에 온 과학자들은 잠을 청하는 게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그래서 기숙사에는 밤에 창을 가릴 수 있도록 굵은 천으로 만든 커튼이 준비돼 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게 연구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태양전지를 사용하면 풍선에 하루 종일 계속해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일부러 여름에 남극을 찾는 이유다.

맥머드 기지에 들어가면 한국과의 연락은 당분간 두절된다. 사방이 똑같은 풍경이니 길이라도 잃으면 큰일 아닌가. 언뜻 생각하면 제한된 공간에서 한 가지 일만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씨는 전 세계에서 온 남성 과학자들과 부대끼며 생활했다.

“원래 좋아하는 일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성격이에요. 좋아하는 천체물리 연구를 사람들이 가기 힘들다고 하는 남극까지 와서 마음껏 할 수 있어 오히려 들떠 있었죠. 언어가 다른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모였는데도 의사소통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별 동경하던 소녀에서 천체물리학도로

“한국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에 잠길 때면 파란 색종이를 붙여놓은 것 같은 남극 하늘에 풍선이 마치 흰색 작은 별처럼 보였던 순간이 떠올라요. 왜 이 연구를 하냐고요? 뚜렷한 이유는 없어요. 그저 순수과학이 좋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무척 별을 좋아했다는 그는 우주를 연구하면서 동심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셈이다.

그가 천체물리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건 대학 4학년 때. 이화여대 물리학과에는 졸업생들이 각 연구실을 견학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의 지도교수인 양종만 교수가 이끄는 천체물리학 연구실에서는 당시 우주입자 검출기를 한창 개발하는 중이었다. 비로소 ‘운명’을 만난 셈이다.

하늘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우주입자를 우리 기술로 검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세상에, 우주입자를 분석하면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은 우주의 생성과정과 구조를 밝혀낼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남극까지 가 거대한 풍선을 띄워서 말이죠. 이 매력적인 연구를 정말 내 손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렇게 해서 대학원에 진학한 박씨는 ‘풍선 띄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풍선 띄우기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크림(CREAM)’이다. ‘우주선(우주입자) 에너지와 질량 연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메릴랜드대학, 이탈리아 피사대학 등의 외국 과학자까지 합해 이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인원은 50여 명이나 된다. 그는 “크림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었다”며 웃었다.

별 헤던 소녀, 과학계의 별이 되리

크림 프로젝트에 사용된 장비.

#올해의 ‘젊은 과학자상’

크림 프로젝트 덕분에 상복도 터졌다. 올 2월19~24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빈 국제학회’에서 물리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NIM’은 박씨에게 올해의 ‘젊은 과학자상’을 수여했다. 이 학회에서는 매년 세계 여러 나라의 과학자 중 뛰어난 연구 성과를 이룬 35세 이하 젊은이를 선발해 상을 준다.

사실 박씨의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빈 국제학회가 박씨에게 초청강연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국제학회에서 대학원생이 직접 강연에 나서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박씨는 올해 석·박사 통합과정을 졸업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천체물리학을 연구해서 어떻게 먹고살 거냐는 얘기다.

“사실 좀 걱정이 되긴 해요.(웃음) 하지만 졸업한 뒤에도 천체물리 연구를 계속할 거예요. 외국에 있는 유명한 천체물리 분야 연구기관에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크림 프로젝트에서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막힘없이 답변이 쏟아졌다.

“고에너지 입자는 날아오는 빈도가 낮기 때문에 오랜 기간 측정해야 해요. 풍선을 계속 띄워야죠. 올 11월 남극에 가 세 번째 풍선을 띄울 계획이에요. 2004년 띄운 풍선에서 검출된 데이터도 아직 분석 중이니 곧 완료해야 하고, 에너지가 1015eV 정도 되는 우주입자가 실제로 검출될 때까지는 측정을 계속하고 싶고….”

밤마다 끈질기게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기다리는 영화 ‘콘택트’의 열정적인 앨리 애로웨이 박사가 떠올랐다.

“아쉬움요? 글쎄, 살아 있는 펭귄을 아직 보지 못한 것?(웃음)”

남극에서는 여름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야 펭귄이 간혹 맥머드 기지 근처까지 내려온단다.



주간동아 588호 (p26~28)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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