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1

2007.04.17

인도 영어 ‘힝글리시’ 쿨한 대접

인도 TV 세련된 표현으로 자리매김 … 영국에서도 ‘새로운 언어’로 인정

  • 전원경 작가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07-04-11 1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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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영어 ‘힝글리시’ 쿨한 대접

    인도 출신 영국 이민자 감독 거린다 차다의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의 한 장면. 이 영화의 주인공 역시 인도계 영국소녀다.

    혹시 ‘배드매시(Badmash)’란 영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앙그레즈(Angrez)’는 어떤가? ‘데시(Desi)’나 ‘커디스(Chuddies)’는?

    위 단어들의 뜻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나쁜 사람, 영국인, 지역, 속옷. 그러나 이런 단어들을 모른다고 해서 영어를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위의 단어들은 ‘힝글리시 단어사전’에 실린 영어와 힌두어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힝글리시(Hinglish)가 인도계 영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쓰인다는 건 이제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흑인들이 사용하는 ‘이바닉스’가 슬랭 취급을 받는 것에 비해 힝글리시는 영국과 인도에서 당당한 새 언어로 대접받고 있다. 최근 영국 BBC TV는 더비에 사는 교사 밸진데어 마할이 학생들을 위한 힝글리시 사전 ‘퀸스 힝글리시(Queen’s Hinglish)’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마할은 “몇 년 전만 해도 힝글리시는 일부 아시아계 학생들끼리만 쓰는 언어였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학생들이 힝글리시를 쓰기 때문에 더는 단속할 수도, 단속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마할에 따르면 인도계 학생들뿐 아니라 영국인 학생들도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힝글리시 표현을 쓴다고 한다.

    “영어의 오염 아닌 발전과 진화”

    인도는 지구상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국가다. 11억명이 넘는 인도인이 인도와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다. 이들은 인도의 위성TV나 인터넷 등을 통해 인도산 힝글리시를 세계에 전파한다. 인도에서 힝글리시는 광고나 랩 등에 단골로 사용되는 세련되고 ‘쿨’한 표현이다. 인도 TV에 등장하는 아이돌 스타들은 의식적으로 힝글리시를 사용하곤 한다.



    힝글리시의 인기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아시아 경제의 부상, 특히 ‘친디아’로 표현되는 중국과 인도 경제의 약진이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언어학적으로 볼 때 인도처럼 독특한 위치에 있는 국가는 드물다”라고 말한다. 힌두어를 비롯해 여러 가지 고유 언어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의 표준 영어 중에는 인도에서 유래한 단어가 적지 않다. ‘샴푸’ ‘방갈로’ ‘파자마’ ‘캐러밴’ 등이 대표적인 인도산 영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 인도에 주둔해 있던 영국 군인들이 ‘수입’해 쓰면서 자연스레 영어 표현으로 정착됐다.

    마할 교사는 이 같은 힝글리시 논쟁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과거에는 하나의 언어만 유창하게 해도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가지 언어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영어 역시 이 같은 다문화 사회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거지요.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어와 현대 영어는 아주 다릅니다. 힝글리시는 영어의 오염이 아니라 발전과 진화입니다.”

    BBC TV 시청자들이 이 뉴스에 대해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시청자들은 BBC의 인터넷 게시판에 ‘새로운 언어가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늘어난다는 의미이므로 환영할 일’이라는 의견을 올렸다. 영국이 미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문화산업 국가로 부상한 것은 이 같은 다양성에 대한 관용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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