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1

2007.04.17

북극항로 방사능·자기장 ‘아슬아슬’

대한항공, 위험 가능성 승객들에게 ‘쉬쉬’ …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꺼리는 ‘비행 노선’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04-11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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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항로 방사능·자기장 ‘아슬아슬’

    북극에 가까운 미국 알래스카주 팔머 지역의 밤하늘에 펼쳐진 오로라. 오로라는 태양에서 날아온 전기 입자가 지구 자기장과 만나 극지방의 상층 대기권에서 방전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지는 않지만 폴라루트 상공을 비행할 때는 기도합니다. 제발 아무 일 없이 그곳을 빠져나오게 해달라고요. (비상공항에) 비상착륙해서 활주로를 개방하지 못하면 구조 비행기도 못 내립니다.”

    “(폴라루트) 거기 비행 끝나고 이틀을 쉬어도 힘들게 느껴집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도 그렇다고 하네요.”

    “저 지난달에만 두 번 건너왔습니다. 정말 괜찮은지 원….”

    최근 한두 달 사이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8월부터 북미노선으로 이용하고 있는 ‘북극항로(Polar Route·폴라루트)’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도 항공기 비행을 책임진 조종사들에 의해서다.



    폴라루트는 뉴욕과 시카고 등 북미 동부에서 북극을 경유해 아시아로 이어지는 노선으로 현재 4개 루트가 개발돼 있다(그림 참조). 대한항공이 이용하는 북극항로는 이 가운데 캄차카반도 쪽에 가까운 2개 루트.

    치명적인 위험성 내포 농후

    북극항로의 장점은 아시아와 북미를 이어주는 기존 루트(캄차카반도와 태평양 루트)에 비해 30분 안팎의 시간을 단축해준다는 것. 대한항공으로서는 그만큼 유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차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승객들에게 받는 항공료는 내리지 않았다.

    북극항로 방사능·자기장 ‘아슬아슬’

    ‘홍콩-뉴욕’간 폴라루트. 대한항공은 3, 4번 루트를 이용한다. 더 아래쪽 2개 노선은 캄차카반도 루트로 북극을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북극항로의 치명적인 위험성들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에 따르면 북극항로는 우주방사선의 노출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통신장애와 항법계기 오작동 등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이 다른 루트보다 높다.

    북극항로의 우주방사선 문제는 지난해 대한항공의 북극항로 취항을 전후한 시점에 한 차례 논란이 있었다. 항공조종사 노조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

    대한항공 측은 이에 대해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조사한 북극항로의 방사선량을 근거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FAA가 제시한 북극항로의 우주방사선량은 0.07~0.09mSv(밀리시버트, 방사선량 측정단위). 이는 FAA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권고한 방사선 연간 기준치인 20mSv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조종사들의 우려는 막연한 두려움일 뿐인가? 북미노선을 자주 오가는 조종사들에 따르면 FAA는 매일 북극항로의 기상과 바람, 우주방사선량을 점검해 루트 개방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북극항로의 우주방사선량이 일정치 않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인체에 치명적인 수준까지 오르내린다는 방증이다.

    항공기가 FAA의 허가를 받아 북극항로를 비행하던 중 우주방사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시로 급변하는 성층권의 기상 상황처럼 우주방사선량도 완벽하게 예측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항공 측은 항공기가 북극항로를 운항했을 경우 어느 정도 우주방사선에 노출됐는지 실측하지 않고 있어 조종사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조종사노조 한 관계자는 “현재 회사 측은 FAA에서 제시한 수치를 일정한 방정식에 도입해 우주방사선량을 이론상으로만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측할 경우 그에 필요한 고가 장비를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공기 승무원들도 우주방사선 노출 위험으로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 승무원은 “폴라루트를 이용할 때 두통약을 찾는 승객이 많았다. 그게 우연인지, 아니면 폴라루트와 연관 있는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걱정된다. 폴라루트를 자주 오간 승무원이 코피를 흘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승무원이 특별히 피곤했을 수도 있지만,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폴라루트와 연관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건교부 “외국 항공사 볼 때 충분히 안전”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항공사에서 북극항로 이용 시 우주방사선의 위험성을 승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것. 특히 임신한 여성의 경우에는 1mSv 정도 소량의 우주방사선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알고 타는 승객이 얼마나 될까?

    한 승무원은 “우주방사선에 기준치 이상 노출됐을 때 기형아 출산이나 유산, 두통은 물론 암이나 백혈병 등에 걸릴 수 있지만 승객들에게 굳이 알리지 말도록 직·간접적으로 통보를 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승무원은 “회사 입장에서는 알아서 좋은 것도 아닌데 일부러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승무원들조차도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북극항로로 가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북극항로의 또 다른 위험요소는 통신장애와 항법장치의 혼선이다. 북극을 통과할 때 급증하는 자기장 때문에 지상과의 통신이 두절되거나 자동항법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한 조종사는 “극지방을 통과하는 데 1~2시간 걸리는데, 이때 통신이 두절되는 문제는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통신기기인 ‘SA-TCOM’으로 해결했다”면서 “그러나 항법장치 문제는 기계적 해결이 어려워 조종사가 직접 지도를 보면서 비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조종사들 처지에서 북극항로가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해 비교적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다른 노선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노선임은 분명한 것 같다. 북극지역의 열악한 비상공항 환경도 조종사들로서는 우려스러운 부분.

    대한항공 측은 이에 대해 “UAL(유나이티드항공) 등 세계 유수 항공사들이 5~6년간 운항을 했지만 현재까지 안전이나 기술상 문제점은 제기되지 않았다”면서 “이들 항공사의 운항 경험을 벤치마킹해 1년여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측은 또 “일반 승객과는 달리 북극항로를 빈번하게 운항하는 승무원들의 안전관리를 위해 ‘우주방사선 승무원 보호절차’를 수립해 운용하고, 북극항로 운항 항공기들에 대한 방사선량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극항로의 비상공항들은 북극항로 운항 이전부터 다른 항로의 비상공항으로 설정, 운영돼온 공항들로 비상착륙 시 승무원과 승객들이 현지에서 최대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현재 에이전트와 특별서비스 지원계약을 맺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폴라루트 비행을 허용한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 건설교통부 담당 사무관의 이야기다.

    “이미 운항 중인 캐세이패시픽 등 다른 항공사의 경우를 볼 때 충분히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개설을 인증해준 것이다.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데 아직은 설만 있을 뿐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그러나 이 사무관은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가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우주방사선 문제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고 자료도 찾고 있다. 극지방이어서 오존 문제도 있고….”

    아직은 아슬아슬한 북극비행, 좀더 철저한 안전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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