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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펀드는 진화 중

펀드 파워 CEO 목줄도 쥐락펴락?

의결권 행사 적극·경영 참여 가속 … 미국선 연금펀드가 CEO 축출하기도

  • 정철진 매일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ccjin@mk.co.kr

펀드 파워 CEO 목줄도 쥐락펴락?

펀드 파워 CEO 목줄도 쥐락펴락?

3월15일 서울 용두동 동아제약 본사에서 이 회사 임직원이 경영권 분쟁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국내 12월 결산 기업들의 2007년 주주총회(이하 주총) 시즌이 마무리됐다. 이번 주총의 핵심 이슈라면 단연 ‘펀드의 힘’을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동아제약, 샘표식품 등 경영권 분쟁 이슈가 싱겁게 끝나 생각만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펀드 자본주의’ 서막이 열렸음을 알리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 2004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펀드 투자 열풍에 기업 보유 지분이 커진 공모형 펀드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일각에선 “불특정 다수의 투자금을 모은 공모형 펀드가 경영 개입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는 시대 흐름을 모르는 ‘철부지’들이나 할 수 있는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현실은 이미 국내 대형운용사들의 입김이 세질 대로 세진 상태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일명 ‘장하성펀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와 우리투자증권 사모투자펀드(PEF) ‘마르스’의 출현은 상장기업 측에 더는 후진적 지배구조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평가다. 국민연금이 과거와 달리 내부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동아제약 극적 합의 … 시장 전문가들 “아쉽다(?)”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이하 미래에셋) 사장은 “1년 동안 기자들에게서 받을 전화를 2~3월 두 달에 다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과 아들 강문석 수석 무역대표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관심을 모았던 동아제약 주총과 관련, 미래에셋 지분을 어떻게 행사할지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미래에셋이 확보한 동아제약 지분은 8.42%. 강 회장 측 지분 6.94%보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의 치열했던 대결과 달리 결과는 싱겁게 끝났다. 주총을 앞두고 강 회장 부자가 합의를 이뤄 미래에셋이 누구 편을 들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1.66%의 지분을 확보했던 KB자산운용 측은 일찌감치 ‘섀도 보팅’(기존 찬반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하기)을 선언한 터였다.

구 사장이나 이원기 KB자산운용 사장 모두 내심 한숨 돌린 눈치다. 반면 시장 전문가들은 “‘펀드 자본주의’의 중요한 선례를 남길 기회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이 밖에 샘표식품 주총에선 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샘표 측과 ‘마르스’가 벌였던 표 대결이 샘표식품 측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 미래에셋자산운용 5% 이상 지분 보유 현황
자료: 금융감독원, 2007년 3월 현재
회사명 지분율(%)
호텔신라 14.49
대우자동차판매 14.01
다음커뮤니케이션 13.5
한진해운 11.97
웅진씽크빅 11.96
동양제철화학 11.88
제일모직 10.99
서울반도체 9.4
SKC 8.51
동아제약 8.42
유한양행 8.03
하나로텔레콤 7.99
대신증권 7.99
엔빅스 6.77
KCC 6.49
성우하이텍 6.33
SBS 6.12
LIG손해보험 5.66
현대해상 5.64
씨제이인터넷 5.58
금호산업 5.38
삼성물산 5.36
중외제약 5.21
삼성테크윈 5.03
티에스엠텍 5.01


이에 비해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투자고문을 맡고 있는 ‘장하성펀드’는 펀드 측 인사를 경영진에 대거 합류시키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장하성펀드’는 이번 상장사 주총에서 7곳의 투자기업 중 5곳에서 펀드 측이 추천한 인사를 사외이사 또는 감사로 선임함으로써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올렸다. 반면 벽산건설과 동원개발은 주총에서 ‘장하성펀드’ 측과 충돌하며 대립 양상을 보였다.

태광산업의 경우 ‘장하성펀드’ 측이 추천한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을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선임했고, 태광산업 계열인 대한화섬 역시 펀드 측 사외이사 후보인 김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를 주총에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밖에 화성산업, 크라운제과, 신도리코 등도 펀드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및 감사를 무리 없이 통과시켰다.

5% 이상 지분 보유, 미래에셋 25개, 한국투신 28개

현재 국내 ‘펀드자본주의’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은 공모형 펀드들이다. 즉 이들 공모형 펀드를 운용 중인 자산운용사가 선두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 수탁고가 50조원을 넘자, 자산운용사들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들도 급증했고 주총장에서 이들의 입지는 놀랄 만큼 커졌다.

예를 들어, 미래에셋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이하 한국운용)의 경우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 수가 25개와 28개에 이를 정도다. 이들 ‘큰손’들은 실제 올 주총에서도 나름의 소신을 밝혔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단 2개 사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과 달리, 올해는 196개 의결권 행사 기업 가운데 약 3%에 해당하는 6개 사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국운용도 143개 의결권 행사 기업 가운데 약 12%에 해당하는 17개 사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으며, 3개 사에 중립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해당 기업 경영진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반대 안건은 이사 선임, 이사 보수, 정관 변경 등 다양했다. 회사별로도 삼성중공업, 에스원 등 삼성그룹 계열사는 물론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KCC 등 현대가(家), SK가스, 고려아연, 하나금융지주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운용은 당초 0.1% 지분을 갖고 있는 두산중공업 박용성 전 그룹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의 두산중공업 이사 선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가 다시 찬성으로 돌아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시장이나 투자자의 기대와는 반대로 의사 표명을 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들었다.

외국계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은 동원F·B 주류사업 진출 반대, 한라공조 외국인 사외이사 선임 반대 등의 의사를 표명했으며, 우리CS자산운용이 2개 사에서 4건, SEI에셋이 3개 사에서 4건, 알리안츠와 칸서스자산운용도 각각 2개 사에서 3건의 반대표를 행사하는 등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활발한 의결권 표명 의지를 나타냈다.

▼ 국민연금 8% 이상 지분 보유 현황
자료: 금융감독원, 2007년 3월 현재
종목명 지분율(%)
엠텍비젼 13.23
풍산 12.66
에스엘 12.62
인지컨트롤스 11.84
신세계 I&C 11.83
한국금융지주우 11.47
한솔LCD 11.04
LS산전 10.85
한솔제지 10.66
FnC코오롱 10.62
평화홀딩스 10.50
동원F&B 10.40
한진 10.31
S&TC 10.00
한국제지 9.74
평화산업 9.69
세방 9.35
코디콤 9.27
한성엘컴텍 8.53
디씨엠 8.47
CJ CGV 8.40
유성기업 8.37
삼천리 8.34
고려제강 8.33
위닉스 8.22
범우이엔지 8.09
유한양행 8.06
성신양회 8.02
진성티이씨 8.00


“산업자본주의 → 금융자본주의 → 펀드자본주의”

상장사들의 이번 주총 결과와 관련,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한국의 산업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를 거쳐 펀드자본주의로 흘러가고 있다”면서 “펀드는 이제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며, 경제 전반을 책임지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펀드자본주의’에서의 펀드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특히 공모형 펀드의 경우, 운용사가 투자자 자금에 대해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남아 있다. 사모펀드나 헤지펀드처럼 특정 목적을 갖고 결성한 펀드라면 몰라도, 공모형 펀드 자금으로 의사를 표명한다는 게 과연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실제로 한 기업이 경영불투명 등의 이유로 기업가치가 하락할 경우 해당 주식을 팔면 그만이다.

하지만 최근엔 공모형 펀드라 할지라도 기업 지배구조나 배당 등 이익 배분 문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자산 매각이나 인수·합병(M·A) 등까지는 아니지만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운용사가 확실한 의사를 밝힐 수 있다는 주장이다.

펀드평가 전문회사 제로인의 허진영 과장은 “국내 펀드시장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자산운용사의 소임이 커지고, 이에 따라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해당 주식 매도에서 더 나아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2004년 미국 펀드업계에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최대 연금펀드인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이하 캘퍼스)이 월트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아이스너를 회장 자리에서 몰아낸 것. ‘펀드자본주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펀드가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높이긴 했지만, CEO 퇴출까지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74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펀드는 단순 연금펀드라고 하기엔 그 영향력과 위상이 막강하다. 예를 들어, 캘퍼스가 한 기업의 투자지분을 늘릴 경우 실적과 관계없이 주가가 상승하는 이른바 ‘캘퍼스 효과’는 펀드 행동주의를 설명하는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물론 한국의 국민연금이 캘퍼스만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하지만 2007년 한국의 ‘펀드자본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 한국투신운용 5% 이상 지분 보유 현황
자료: 금융감독원, 2007년 3월 현재
회사명 지분율(%)
호텔신라 13.31
무학주정 13.30
삼성정밀화학 12.45
신양 11.80
동원산업 9.69
화승알앤에이 9.49
한양증권 9.08
제우스 9.04
제일기획 8.93
롯데삼강 8.80
삼성엔지니어링 8.69
제일모직 8.34
신풍제약 8.30
코아로직 7.95
삼성전기 7.41
신성델타테크 7.13
동원F&B 6.78
에스원 6.30
삼성SDI 6.29
신흥증권 6.06
삼환까뮤 5.97
삼성증권 5.92
계룡건설 5.89
동양이엔피 5.79
매일유업 5.66
삼성테크윈 5.41
삼환기업 5.23
LG마이크론 5.09




주간동아 2007.04.17 581호 (p32~34)

정철진 매일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ccj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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