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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소설 ‘우동 한 그릇’

‘소바’ 먹는 날 왜 우동을 시켰을까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소바’ 먹는 날 왜 우동을 시켰을까

‘소바’ 먹는 날 왜 우동을 시켰을까
소설 ‘요코 이야기’로 말들이 많다. 책 내용이 전쟁 가해자 일본을 피해자(그것도 한국에 의한!)처럼 인식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그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전쟁 피해자라는 내용의 소설이 미국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있으니 말이다.

한편에서는 민족이나 국가를 떠나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인지를 고발한 훌륭한 ‘다큐멘터리’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소동 중에 나는 문득 오래전에 읽은 ‘우동 한 그릇’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요코 이야기’가 외국인들의 역사의식을 왜곡하고 있다면 ‘우동 한 그릇’은 일본인의 감성적 민족주의에 한국이 함께 눈물 흘리는 격이어서 한국인으로서는 더 경계해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우동 한 그릇’이 스테디셀러가 되는 한국의 이상한 풍토에 대해 언젠가 짧은 글을 썼더니 왜 그런 감동적인 동화에 민족감정을 덧입히느냐고 힐난했다.

한국 정서에 맞게 의도적 오역 가능성 매우 커

‘우동 한 그릇’의 신화는 이런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97년 2월 일본 국회 예산심의위원회 회의실에서 질문에 나선 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이 난데없이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대정부 질의 중 일어난 그의 돌연한 행동에 멈칫했던 장관들과 의원들은 낭독이 계속되자 그것이 한 편의 동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야기가 반쯤 진행되자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며 손수건을 꺼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더니 끝날 무렵에는 울음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우동 한 그릇’은 언뜻 보면 일본의 한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다. 해마다 섣달그믐이면 두 아이를 데리고 우동가게를 찾아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나눠먹는 가족이 있었다. 이를 딱하게 생각한 식당 주인은 연말이면 항상 빈자리를 남겨두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장성한 아이들이 성공해 어느 연말 이 식당에 나타난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그 속내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동화와 많이 다르다. 전쟁에서 패한 뒤 피폐한 경제상황을 이겨낸 일본인들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소설이다. 일본인들이 당시 그토록 울었던 것은 버블경제 붕괴로 온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던 상황에서 ‘전후의 가난도 이겨내지 않았느냐’ 하는 위안의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에서 이 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내겐 아이러니로 보일 뿐이다. 일본인들은 섣달그믐에 시절식으로 소바를 먹는다. 소바의 면발처럼 길게 오래 살자는 뜻에서 이날 소바를 먹어야 이듬해 복이 있다고 한다. 소설 원문을 본 적은 없지만 내용에서 유추해보면 소설 속 가난한 가족이 섣달그믐 식당에 와서 시켜 먹은 음식은 우동이 아니라 소바임이 분명해 보인다. 소바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메밀국수가 된다. 그런데 왜 우동이라고 번역한 것일까. 번역가의 잘못일까?

아마도 의도적인 오역이 아닐까 싶다. 소설 제목을 ‘메밀국수 한 그릇’이나 ‘소바 한 그릇’이라고 제대로 번역하면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 메밀국수나 소바는 우리에게 친근감이 없는 음식이다. 반면 우동은 따뜻한 국물에 든든함이 느껴지고 서민적인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때문에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 하나만으로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소설이 단지 이야기 전달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시대와 지역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면, 이런 오역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 될 수도 있다. 가령 한국의 소설 중 떡국을 주 소재로 해서 쓰인 책이 있다고 하자. ‘우동 한 그릇’과 비슷한 서정이 담긴 설날 아침, 온 가족이 떡국을 먹으면서 가족의 유대를 다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제목은 ‘떡국 한 그릇’. 그런데 일본에서 이 소설을 번역할 때 떡국은 일본인들에게 생소하니 좀더 친근한 한국 음식인 ‘삼계탕 한 그릇’이나 ‘불고기 한 접시’ 등으로 번역한다면 어떨까.

‘소바 한 그릇’을 읽고 일본인들이 눈물바람을 일으킨 것은 섣달그믐에 온 가족이 모여 복을 기원하며 소바를 먹는 문화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동 한 그릇’을 읽고 눈물바람을 일으킨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이런 문화적 정서를 공유하지 않고도, 줄거리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인 소설이라 그런 것일까. 혹 남이 우니까 자신도 덩달아 우는 감정의 전이에 따른 것은 아닐까. 속내야 어떻든, ‘요코 이야기’처럼 이야기 자체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인데 나의 감성이 유독 모자라 그럴 수도 있고.



주간동아 574호 (p116~116)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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