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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수수께끼 ‘모아이’의 수난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887개 거대 석상 … 부식되고 쓰러지고 인간 손에 파괴

  • 전원경 작가 winnejeon@hotmail.com

영원한 수수께끼 ‘모아이’의 수난

영원한 수수께끼 ‘모아이’의 수난
이스터 섬. 남태평양에 떠 있는 이 외딴 화산섬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일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섬과도 2000km나 떨어져 있고 ‘본토’인 칠레와의 거리 또한 무려 3800km에 이른다.

칠레 소유이기는 하지만 섬의 주민은 인종적으로 라틴계가 아닌 폴리네시아계다. 과거에는 섬의 고유 언어도 있었다. 섬 사람들끼리는 이 섬을 ‘큰 섬’이라는 뜻의 ‘라파 누이(Rapa Nui)’라고 부른다.

1722년 부활절에 발견됐다고 해서 ‘부활절(Easter·이스터)’이라는 이름이 붙은 넓이 166km2의 이 섬이 유명해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섬 군데군데에 서 있는 거상, 모아이 덕분이다. 현재 887개가 남아 있는 거상들은 한결같이 바다를 등진 채 서 있다. 높이최고 10m에 무게가 82t까지 나가는 모아이 덕분에 이스터 섬은 세계 많은 여행기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소개되곤 한다. 이 섬을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 제독 야코프 로헤벤은 엄청난 덩치의 군인들이 섬을 지키고 서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를 놀라게 했던 ‘거인 같은 군인들’은 물론 모아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작은 섬은 모아이를 보러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일까? ‘유에스에이 투데이’지 기자가 찾아가본 섬의 풍경은 인기 있는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날씨는 연중 온화한 편이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호텔이 낡았으며 몇 군데 안 되는 식당의 음식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온전한 모습 유지한 것 400여 개 불과



이 섬에는 야생마가 많다. 섬 주민이 4000여 명인데 말의 수는 2000마리가 넘는다. 이 말들이 도로와 언덕을 마구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관광객을 상대로 급조한 호텔과 여관, 식당이 자리잡은 모습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별다른 놀거리가 없어서인지 섬에서는 술과 담배가 굉장히 많이 팔린다고 한다.

이 황량한 풍경 속에 우뚝 서 있는 모아이들은 과연 누가 세운 걸까.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모아이들은 부식되거나 쓰러져 있고, 사람들의 손에 파괴되기도 했다. 현재는 400여 개만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과학자들은 11세기에서 17세기에 모아이가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뿐, 더 자세한 연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모아이에 관련된 사실들은 대부분 수수께끼다.

무엇보다 모아이들은 하나같이 높은 언덕의 제단 위에 서 있는데, 제단 위까지 무거운 현무암을 운반한 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대략 다섯 가지 가설로 설명되는데, 그중 썰매를 사용했거나 수레로 돌을 옮겼다는 가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학자들의 의문에 대해 섬 원주민들은 확고한 어조로 대답한다. “모아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까지 걸어갔다”고.

이스터 섬이 이렇게 황량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터 섬의 60%는 칠레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개발이 전면 금지돼 있다. 더구나 섬 주민은 19세기에 만연한 천연두로 거의 절멸하다시피 했다. 1870년대에는 섬의 전체 주민 수가 11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신비로운 존재로만 인식돼왔던 이스터 섬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한 해에 한 번씩 오갔던 수송선이 이제는 40여 일에 한 번씩 섬을 찾아온다. 매주 여덟 번씩 비행기도 오간다. 교통편이 늘어남에 따라 관광객도 1992년의 4700명에서 지난해 5만2000명까지 늘어났다. 이 섬에 처음으로 미술관을 세운 인류학자 세르지오 라푸는 “전체가 박물관이나 다름없는이곳에도 이제 세계화의 물결이 조금씩 밀어닥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늘어나는 관광객들 “모아이 훼손 안타까워”

90년대 후반, 이스터 섬의 페테로 에드먼드 지사는 섬을 호화로운 관광지로 만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별 다섯 개의 호텔과 골프 코스, 카지노 등을 지어 부유층 관광객을 유인한다는 계획이었다.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모아이는 바람이나 비, 이끼 등에 쉽게 부식하는데 이를 수리하기 위한 비용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계를 뒤흔든 9·11 테러 이후 에드먼드 지사는 자신의 개발 계획을 수정했다. “호화로운 관광지보다는 이 섬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맨발로 흙을 밟아볼 수 있고 원주민의 옷을 입은 채 낚시할 수 있는 관광지로 말이죠.”

사실 이스터 섬은 90년대에 큰 전기를 맞았다.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한 영화 ‘라파 누이’(1994년) 덕분이다. 영화 흥행 결과로 섬에는 800만 달러(약 75억원) 정도의 수익금이 굴러들었다. 덕분에 적지 않은 섬 주민들이 자동차와 냉장고를 사들였고, 그때까지 없었던 ‘경제적 계급’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때 라파 누이, 아니 이스터 섬의 변화는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섬의 호텔들은 아직도 로비에서 이 영화를 무한정 반복 상영하고 있다.

멀리서 이스터 섬을 찾아온 관광객들은 이 섬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관광객 리타 후앙과 데이먼 나가미는 “머물면 머물수록 슬퍼지는 섬”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여 세웠을 석상들이 점점 폐허가 돼가고 있다는 게 슬픕니다.”

베일에 가려진 모아이 석상이 우뚝 서 있는 절해고도의 섬. 그러나 섬 주민들은 조금씩 변화하는 섬에서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 칠레에 머물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돌아왔다는 섬 토박이 차이나 파카라티는 모아이를 보면 볼수록 “우리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모아이를 연구했지만 아무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이 섬이 특별한 이유가 바로 수수께끼를 안은 모아이의 존재이니까 말이죠.”



주간동아 570호 (p56~57)

전원경 작가 winn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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