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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이라도 마음껏 땔 수 있으면…”

에너지 빈곤층의 힘겨운 겨울나기 … 난방시설 설치·연료비 감당 못해 발 동동, 마음 꽁꽁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연탄이라도 마음껏 땔 수 있으면…”

“연탄이라도 마음껏 땔 수 있으면…”
서울 동작구 사당5동. 독거노인 박모(79) 할머니가 사는 1500만원짜리 전세방은 2층짜리 벽돌주택에 ‘기생’한 가건물이다. 주택 외벽에 슬레이트 패널을 덧붙여 두 평 남짓한 방이 된 것. 이 좁은 방에서 박 할머니는 보일러도 없이 방바닥에 깔아놓은 전기패널에 의지해 추운 겨울을 난다. 남편과 큰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타지로 나간 둘째 아들마저 오래전 연락이 끊어졌다. 박 할머니에게는 이 전세방이 유일한 재산이다.

전기패널이 지나가지 않는 쪽은 발이 시리도록 차갑다. 박 할머니는 자꾸만 뜨끈한 쪽에 앉으라고 자리를 권한다. 전기패널을 켜놓아 방바닥은 따뜻할지 몰라도 방 안 공기에는 한기가 서려 있다. 슬레이트가 외풍을 온전하게 견뎌내진 못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박 할머니는 “한기는 없다. 제법 따뜻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보일러 없는 덕분에 기름값 안 들지. 전기료는 한 달에 1만~2만원이면 돼요. 설거지 물은 끓여서 쓰고, 목욕이야 목욕탕 가면 되니까.”

약 120만 가구 에너지 빈곤층 추산

박 할머니를 오랫동안 돌봐온 사당종합사회복지관 이민성 사회복지사는 “참 낙천적인 성격이라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라며 “전기료 아끼느라 전기패널도 약하게 틀고 그마저도 자주 꺼놓고 지내신다”며 안타까워했다.



에너지 빈곤층과 에너지 복지. 아직까지는 낯선 이 새로운 용어가 앞으로는 자주 쓰일 예정이다. 2006년 2월 제정된 에너지기본법이 국가에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공급 지원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

에너지 빈곤층이란 에너지 구입을 위한 지출이 소득의 10%가 넘는 가구를 뜻한다. 현재 약 120만 가구가 에너지 빈곤층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한 해에만 전국적으로 12만4000가구가 전기료를 납부하지 못해 단전됐다. 이들 가구는 전류제한기를 통해 매달 220W를 공급받아 생활하고 있다.

최근 설립된 에너지재단(이사장 이세중)이 정부를 대신해 올해부터 에너지 빈곤층 지원사업에 나선다.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9000~1만 가구를 선정해 고효율 보일러로 교체 또는 개보수, 창호·단열 공사 등 난방시설 지원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박 할머니와 같은 에너지 빈곤층은 요즘 같은 한겨울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역시 혼자 살고 있는 강모(83) 할머니도 보일러 대신 전기패널에 의지해 겨울을 난다. 강 할머니는 일찍 남편과 자식들을 여의고 파출부, 식당 종업원 등 갖은 일을 전전하며 손자를 키웠다. 그리고 5년 전, 직업군인이 된 손자가 집을 떠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항상 일만 해온 까닭에 친구도 없고 양로원도 낯설어 가지 않는 강 할머니는 추위가 매서운 한겨울에도 전기패널에만 의존한 채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다.

“연탄이라도 마음껏 땔 수 있으면…”

공덕동 강 할머니(위)와 사당5동 박 할머니는 보일러 시설 없이 전기패널에 의지해 겨울을 난다.

두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는 딱 절반만 전기패널이 깔렸다. 원래는 석유보일러가 설치된 집이었지만 재작년 고장이 나고 말았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둘러보고는 워낙 오래된 보일러라 고쳐 쓸 수 없다고 했단다. 대신 전기패널을 깔아줬다. 그나마 강 할머니는 나머지 절반의 방에 전기장판을 깔고 작은 전기히터를 갖춰 박 할머니 집보다는 좀더 따뜻했다.

“석유보일러 쓰던 때가 훨씬 훈훈했지. 하지만 이 동네가 재건축될 지역이라 주인이 새로 뭘 해주려고 하질 않아요. 이 집에서 4년 살았는데 주인만 네 번이나 바뀌었거든.”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거의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단층주택에는 정신장애인인 정모(59·여) 씨와 노모 김모(86) 할머니, 정씨의 오빠와 고등학생 딸, 이렇게 넷이 살고 있다. 방 세 칸에 거실과 부엌, 화장실까지 갖춘 꽤 넉넉한 크기의 집이지만 난방시설이라고는 연탄보일러 세 대가 전부다. 그마저도 방 두 칸과 부엌에만 연탄보일러가 연결되고 거실과 나머지 방 한 칸은 난방시설이 아예 없다. 거실에서는 입김이 나올 정도. 재작년 정씨의 부친은 차가운 방에서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전기장판 지원해도 요금 걱정 탓 무용지물

정씨 가족이 잘 아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빌린 이 집에서 산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집주인은 외국에 나가 있어 연락도 잘 안 되고, 설사 연락이 닿는다 해도 집 고쳐달라고 할 면목도 없다. 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30만원 남짓한 생활비가 수입의 전부인 정씨 가족은 난방시설을 새로 갖출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가장 따뜻한 방에 네 식구가 모두 모여서 자요. 우리 아버지가 면장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 다 복 없는 팔자 탓이죠.”(김 할머니)

웬만큼 온기를 유지하려면 하루 6장의 연탄이 필요하다. 장당 320원씩 하는 연탄이 한 달에 180장이 필요한 셈인데,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5만7600원. 김씨 가족의 가계에는 무척이나 부담되는 액수다.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의 정재연 사회복지사는 “연탄값도 큰 부담이지만 언제 가스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는 상황이다”라며 염려했다.

에너지 빈곤층 가정마다 난방시설이 설치된다면 좀더 따뜻하고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복지관 사람들은 “난방비를 절약하느라 난방시설을 충분하게 가동하지 않을 것이 불 보는 뻔하다”고 입을 모은다.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의 이강호 재가복지팀장은 “재작년 임대아파트 저소득층 가정에 전기장판, 전기히터 등 난방기구를 전달하는 사업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사당종합사회복지관 윤영숙 관장은 “에너지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난방시설 설치에만 머물면 안 된다. 저소득층에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가스와 전기를 공급하는 요금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주간동아 570호 (p36~37)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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