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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예상 삼진 먹인 ‘金여우 용병술’

현대 김재박 감독 확실한 신상필벌… “번트도 실력” 빅스타 없이 신나는 2위 질주

  •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꼴찌 예상 삼진 먹인 ‘金여우 용병술’

매년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야구 전문가들은 그해의 판도를 예상한다. 그런데 시즌이 끝날 무렵이 되면 전문가들의 예상은 전문가라는 명칭이 무색하리만큼 빗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 시즌 전문가들을 부끄럽게 만든 팀은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현대 유니콘스다.

현대는 지난해에 7위를 했다. 심정수, 박진만, 박종호(이상 삼성), 박경완(SK) 등 과거 현대의 영화를 일구었던 주축 멤버들은 모두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터. 딱히 전력 보강도 없었다. 누가 봐도 작년보다 나아질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의심 없이 ‘현대=꼴찌’를 예상했다. 유일하게 후한 점수를 준 전문가조차 잘 해야 7등이라고 했을 정도.

꼼꼼·철저 … 한국시리즈 4회 우승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규 시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9월 말 현재 현대는 당당히 2위를 달리고 있다. 그것도 선두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말이다. 차포(車包)도 모자라 마(馬)와 상(象)까지 내놓은 현대를 지탱시키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김재박 감독을 빼놓고선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96년부터 현대의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98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벌써 4차례나 일군 명장이다. 그러나 이전까지 그의 능력은 다소 과소평가됐다. 앞서 언급한 뛰어난 선수들을 데리고 편하게(?)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올해야말로 감독 김재박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해라고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국민감독’으로 떠오른 김인식(한화) 감독 같은 덕장(德將)은 아니다. 오히려 세밀하고 꼼꼼하고 철저한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김 감독을 믿고 따른다. 아니, 믿지 못하더라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는 유격수 박진만이다.

박진만은 1996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현대에 입단했다. 박진만의 유격수 능력을 한눈에 알아챈 김 감독은 자신의 선수 시절 등번호이던 7번을 선뜻 그에게 주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주전 유격수로 기용했다.

방망이 솜씨도 뛰어나지 않은 고졸 내야수에겐 파격적인 일이었다. 안타를 못 쳐도, 실책을 저질러도 김 감독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박진만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그가 2004년을 끝으로 삼성으로 떠나기 전까지 9년간 계속됐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항상 박진만을 아끼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시범경기 때였다. 어느덧 9년차가 된 박진만이 다소 느슨한 플레이를 했던 모양이다. 경기가 끝나자 김 감독은 박진만에게 포구 장구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는 직접 펑고(내야수에게 쳐주는 땅볼 타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엔 기자들도 있었고, 경기장을 떠나지 않은 팬들도 있었다. 김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박진만은 땀범벅이 됐다. 어찌나 독하게 펑고를 쳤던지 김 감독의 손에서도 피가 배어 나왔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던 박진만의 입에서 “XX”이란 욕이 튀어나왔다. 김 감독도 그 소리를 들었다. 여느 감독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한 번 씩 웃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그래, 바로 그렇게 독기를 가져야지.” 그해 현대는 혈투 끝에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믿는 선수에겐 무한 기회 제공

올해 현대의 약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 감독은 믿는 선수에겐 무한한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잡고 일어선 선수가 만년 후보에서 3할 타자로 우뚝 선 이택근이고, 지난 4년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투수에서 마무리 투수로 화려하게 일어선 박준수다.

반면 원칙을 벗어난 선수에겐 절대 용서가 없다. 느슨한 플레이를 하거나,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는 다음 날 곧바로 2군행을 각오해야 한다. 어떤 선수를 2군에 보낼 때 김 감독이 하는 말도 한결같다. “원당(현대의 2군 연습장이 있는 곳) 가서 소똥 냄새 좀 맡고 와야지.”

이렇듯 신상과 필벌이 확실하다 보니 선수들은 좋고 싫고를 떠나 김 감독의 야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희생 번트를 많이 대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올 시즌 현대는 1996년 쌍방울이 세웠던 한 시즌 희생 번트 기록(143개)을 가볍게 넘어섰다. 물론 대부분이 김 감독의 사인에 따른 희생 번트였다. 그러나 가끔은 선수가 미리 알고 스스로 희생 번트를 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 감독의 야구 색깔이 선수들의 플레이 구석구석까지 얼마나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김 감독은 “예전에 좋은 선수들이 있을 때는 점수를 얻기 위해 번트를 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수들이 약하기 때문에 번트를 대서라도 점수를 내야 한다. 내 생각을 선수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말한다.

흔히 하는 얘기지만, 야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각자 플레이를 하는 좋은 선수 9명보다 평범한 선수 9명이 하나가 되는 것이 더 나은 게 야구다. 스타플레이어가 별로 없는 현대는 지금 후자의 야구를 하고 있다. 그 중심에 ‘여우’ 김 감독의 머리가 숨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주간동아 555호 (p152~153)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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