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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제 홍역 앓는 인도 대학가

“기존 입학 정원에 27% 추가” 소식에 발끈 … 최하위 카스트 계층 배려 근본적 문제 제기

  •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anmail.net

할당제 홍역 앓는 인도 대학가

사회 구성원의 성분이 다양하고 다민족으로 이뤄진 나라일수록 취업이나 교육의 혜택을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할당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말레이시아, 피지처럼 아예 헌법에 할당제를 명시해놓은 나라도 있다. 민족, 종교, 언어 등에서 다양성이 매우 큰 인도도 그렇다. 영국 통치시절부터 할당제를 도입해 소수파들이 의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놓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는 공무원 고용, 대학 입학정원 등을 사회적으로 열악한 계층에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인도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열악 계층이란 누구인가. 카스트제도 최하위에 속하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다. 법률상 명칭은 ‘지정카스트’. 이들 외에도 지리적인 격리와 민족, 종교, 관습상의 차이로 주류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지정부족’이라는 계층도 있다. 이 두 집단이 전통적으로 할당제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할당제 혜택을 받는 집단은 헌법에 별첨되어 있고,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대상 집단을 조정 중이다. 이러한 특혜는 어디까지나 임시조치다. 사회적 차별이 사라지면 폐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독립 후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할당제는 폐지되기는커녕 그 대상 집단이 점점 더 커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폐지는커녕 점점 느는 기현상

최근 인도에서는 할당제 논란이 일어 전국에 파업과 시위 물결이 번졌다. 문제의 핵심은 할당제 대상집단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법안 상정이었다. 인도 정부는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에게만 국한돼 있던 대학입학 특혜를 ‘기타 후진계층’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 기타 후진계층이란 천민이나 부족민에 속하지는 않지만, 역시 낮은 카스트로 분류되는 이들로서 사회·경제적으로 다른 카스트에 비해 현저히 낙후된 삶을 살고 있다.



기존의 대학 입학정원에 주어진 할당 이외에 27%를 추가로 기타 후진계층에 할당한다는 인적자원개발부 장관의 발표가 있자, 뉴델리를 비롯한 전국의 도시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인도의과대학을 비롯한 여러 의대들, 인도공대, 인도경영대 등 세계적으로도 권위와 실력을 인정받으며 전문직 종사자를 배출하는 이른바 엘리트 대학들의 반발이 컸다. 이들 대학은 높은 경쟁과 반드시 ‘실력’에 의거하는 학생 선발기준을 긍지로 삼고 있다. 이들은 할당제로 학생을 뽑는 일은 실력 제일주의에 어긋나 학교의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대학은 지정카스트 출신들에 대한 할당제도 최근 들어서야 받아들였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미증유의 병원파업 사태로까지 번졌다. 인도의과대학의 학생들과 부속병원 의사들은 기타 후진계층에 대한 입학정원 할당에 반대하며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일부 학생들은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인도공대와 네루대학 학생들도 이에 동조하며 파업과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또한 델리 시내의 국·공립 병원들도 동맹파업을 개시, 한동안 병원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후 환자들과 시민들의 반발로 20여 일 만에 파업이 끝났지만 인도의과대학과 부속병원 내의 갈등은 여전하다. 캠퍼스 한쪽에는 할당제 반대파들의 운동캠프가, 반대 쪽에는 할당제에 찬성-주로 지정카스트와 부족 출신 의사와 학생들-하는 운동캠프가 차려져 있다.

할당제를 사이에 둔 카스트 갈등은 이후 학장인 베누고팔 교수의 해임 사건으로 더욱 증폭돼 이제 정당 간의 대결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할당제 반대시위가 일어나자 지정카스트와 하위카스트 단체들은 할당제를 적극적으로 도입, 강화하라는 지지 시위를 조직하여 맞서기도 했다. 병원 파업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기타 후진계층에 할당되는 인원만큼 대학 정원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카스트’ 중심에서 ‘클래스’ 중심으로 다변화 과정 진통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갈등의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할당제 혜택을 받는 집단이 지정카스트냐, 혹은 기타 후진계층이냐 하는 부분보다는 과연 이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즉, 지정카스트나 기타 후진계층이라는 카테고리는 단순히 어느 출신이냐는 문제이지 개개인이 정말 혜택이 필요할 만큼 낙후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말해줄 수 없다는 것. 실제로 오랫동안 할당제를 적절하게 활용해온 집안은 이미 고위공무원, 학자, 정치인 등으로 성공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 더 이상 할당제의 혜택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할당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바로 이미 기반을 닦은 하위 카스트 출신인 상황이다. 할당제가 정말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다는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아예 카스트에 의한 할당제를 폐지하고 경제적 상황만을 할당제의 자격 조건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할당제가 단시일 내에 폐지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리고 할당제가 주는 이득, 즉 오랜 세월 동안 억압받던 하위 카스트들의 수준 향상이라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카스트’ 중심에서 ‘클래스’ 중심으로 급속히 다변화되어 가는 인도 사회를 볼 때 기존 할당제도 변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간동아 555호 (p114~116)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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