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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 회담? … 제 갈 길 가는 한-미

對北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갈수록 이견 … ‘동맹의 현대화’는 동맹 해체의 완곡한 표현?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말장난 회담? … 제 갈 길 가는 한-미

“현재 한-미 동맹은 겉으로는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갈등 요인들이 남아 있다. 한-미 동맹은 기로에 서 있다.”(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9월21일 선진화포럼 강연에서)

“북한을 6자 회담장으로 끌어내려는 한국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주변 4강에 대한 외교도 총체적인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정인 연세대 교수, 9월21일 세종연구소 주최 ‘국가전략포럼’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는 이 시점에 왜 전시 작통권의 단독행사를 요구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 철없는 짓거리를 하다가 동맹을 잃는 일이 벌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다.”(김희상 명지대 초빙교수, 9월21일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에서)

“정부에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명칭까지 썼는데 실체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 우리 정부는 합의했다고 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합의한 흔적이 없다.”(서동만 상지대 교수, 9월19일 MBC 라디오에서)

깨지기 쉬운 ‘유리병 성과’ 홍보



9월15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긍정적인 평가는 드물고 ‘한-미 양국 정상이 노골적인 이견 노출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이 대부분이다. 비판 대열에는 노무현 정부 초기 시절에 외교안보 진영에 몸담았던 사람들도 끼여 있다. 한승주 교수는 주미 대사, 김희상 씨는 국방보좌관을 지냈고 문정인(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서동만(전 국정원 기조실장) 교수는 정권인수위 시절 외교안보 분야의 골격을 짜는 데 참여했던 핵심 인사들이다.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활약하던 사람들까지 공공연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설 만큼 정부의 나라 밖 행보가 위태로워 보인다는 의미다.

한-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의혹’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노 대통령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의 9월13일 면담 내용을 놓고, 정부 당국자 간 서로 다른 발표를 내놓은 게 비근한 예다. “노 대통령이 폴슨 장관에게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에 대한 조사와 관련해 미 측에 조기 종결을 요구했다”고 한 이태식 주미 대사의 말(9월18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 대해 청와대가 즉각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하고 나선 것.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노 대통령은 BDA 조사에 대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사 속도는 어떤지 관심을 표명했을 뿐, 조기 종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9월19일 언론재단 초청 포럼)고 해명했다.

언뜻 사소한 표현의 차이로 넘길 수도 있는 사안을 놓고 정부가 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내놓은 것이 깨지기 쉬운 유리병 같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산하 연구기관에 몸담은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정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로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내놓았지만, 사실 그것은 지극히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말의 포장에 불과하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실패하지 않는 데 성공했다’는 일각의 평가가 딱 들어맞는 행사였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가 큰 마당에, 두 나라가 이번에도 북한 문제에서 충돌했다는 말이 나오는 게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정부는 이에 대해 “앞으로 한-미가 협의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천영우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방미해 9월20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회담을 가졌다.

정부가 생각하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일종의 주고받기식 거래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6자 회담 재개와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진전을 위해 참가국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조합하고 틀을 짜는 문제”라고 설명한 송민순 실장의 설명에서 이 같은 해석을 유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BDA 문제,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대북 경제원조, 북-미 관계 개선 등 개별 사안들을 포괄적으로 엮은 ‘패키지’를 통해 북-미 양측이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북한의 6자 회담 참가를 이끌어내자는 구상이다. 일차적으로는 북한이 영변의 5MW 원자로 가동을 중단할 경우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했다. 미국은 한국과 정상회담을 끝내자마자 대북 추가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도 ‘선(先)제재 해제’라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쿠바 비동맹 정상회의에 참석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미국이 제재를 유지하는 한 6자 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9월17일)고 못박았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노 대통령의 대미(對美) 발언은 며칠 지나지도 않아 빛이 바랜 셈이다.

미국은 한결 자유로운 전략 구사

“한-미 양국이 빠른 시일 내에 대북 입장에서의 의견 차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조만간 상징적 차원에서 추가 대북 제재를 실천에 옮길 것이고, 한국은 개성공단 확대 등 기존의 대북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이란 극단적으로 말해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반도 전문가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사무소 피터 벡 소장의 말이다.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의 또 한 가지 ‘성과’로 내세운 것은 두 나라가 ‘동맹의 현대화’에 합의했다는 점.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해서도 회담 이후 이렇다 할 후속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이 정부는 앞으로 ‘자주’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관변 국방연구기관 A박사의 말이다.

“미국은 전시 작통권 문제에서 노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50년 동맹으로서 교활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 가능성에 대해선 조그만 힌트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미국은 한반도에 상징적인 규모의 지상군만 남겨놓고 해-공군 위주로 주한미군을 운용할 생각이라는 것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를 클린턴 행정부 때 도입됐던 이른바 ‘동아시아전략구상(EASR)’의 부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군말 없이 전시 작통권을 돌려주겠다는 미국의 태도로 볼 때 이 같은 움직임은 빠른 시일 안에 가시화될 것이다.”

한승주 교수도 최근 강연에서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전시 작통권 이양은 현재 한국과 미국이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인데, 한국에서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전시 작통권 공동행사를 회복하려 할 경우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 풀이하면, 미국은 노 대통령의 전시 작통권 환수 요구를 기화로 기존 동맹의 고리에서 벗어나 한결 자유로운 전략을 구사하려고 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동맹의 현대화’는 ‘동맹의 이완 내지는 해체’의 완곡한 표현일 수 있다.

한-미 정상은 ‘표면상’ 좋은 낯으로 이번 정상회담장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선 직후부터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데 바쁘다. 우리 국민이 알고 있던 ‘피를 나눈 동맹’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주간동아 555호 (p36~38)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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