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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게릴라의 개성만점 배낭여행⑭ 인도 누브라 계곡

상상 속 원시 자연, 살아 있는 이상향

  • 글·사진=전명윤

상상 속 원시 자연, 살아 있는 이상향

상상 속 원시 자연, 살아 있는 이상향

나닥으로 가는 고원지역의 풍경. 멀리 만년설산이 보인다.

인도 최북단 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mir) 주의 동쪽 지역에 ‘나닥’이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인도에 속하지만 과거에는 티베트 땅이었다. 옛 티베트 땅의 대부분은 중국이 점령하고 일부는 인도가 차지했는데, 나닥이 바로 인도가 점령했던 지역이다.

티베트의 번 왕국으로 번성했던 나닥 왕국은 17세기 이슬람교를 믿는 카슈미르 왕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크고 작은 수많은 나라들을 인도연방에 편입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카슈미르가 인도의 일원이 됐으며, 자연스레 나닥도 인도의 일원이 되었다.

나닥은 독립된 행정구역은 아니지만,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별도의 지역으로 인식된다. 해발 3000m 이상의 건조한 풍경이 마치 티베트에 온 것 같다. 고원지대의 황량함, 알록달록한 오색 깃발이 휘날리는 사원과 마을 모습을 나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나닥의 수도 레는 해발 3505m의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레로 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다. 관문 도시인 해발 2100m의 마날리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무려 24시간이나 이동해야 한다. 털털거리며 히말라야를 누비는 인도의 버스들은 낡아서 무척 위험해 보이지만 험한 고개를 잘도 오르내린다.

도로의 상황은 최악. 버스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며 달리기 때문에 짐칸에 올려놓은 가방이 언제 우르르 쏟아져내릴지 불안하다. 고산병 증세를 보이던 한 아낙이 구토를 일으키자 비위가 약한 몇 명이 뒤를 이어 구토를 했다. 이내 버스 바닥은 흥건해졌고 고약한 냄새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아아…. 감히 추천하기 어려운 여행길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꼭 가보라”며 등 떠밀고 싶다. 레에 가려면 고개를 숱하게 넘어야 한다. 그중 가장 높은 고개는 타랑 라(Taglang La). 해발 5328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해발고도가 높은 자동차도로’라는 타이틀을 자랑한다. 타랑 라에 오르면 구름은 저 아래 흐르고, 끝없이 펼쳐진 설산 봉우리들도 내 발치를 올려다보고 있다.

상상 속 원시 자연, 살아 있는 이상향

해발 5703m의 카르둥 라 풍경. 여행자의 안전을 기원하는 오색 깃발이 펄럭인다.

훈두르 마을은 ‘차마고도’의 한 구간

레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몇몇 여행자는 “상상 속의 오지와는 너무 다르다”며 툴툴거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레 관광이 나닥여행의 전부였지만, 최근에는 점점 더 깊은 오지까지 들어가는 추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중국 티베트자치구와 마주 보는 국경 지대에 위치한 누브라 계곡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곳으로, 원시 자연의 경이로움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타랑 라보다 해발고도가 높은 자동차도로는? 레와 누브라 계곡 사이에 있는 카르둥 라(Kardung La)로, 해발고도가 5703m다. 카르둥 라는 한여름에도 눈이 많이 내려 종종 길이 끊긴다. 지프를 타고 가던 우리 일행도 눈 때문에 애를 먹었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체인도 감지 않은 자동차 바퀴가 끝없는 낭떠러지 가까이에서 눈 속에 파묻혀 헛돌 때마다 인도에 존재한다는 4억8000만 명의 신들을 마음속으로 소리 높여 부르곤 했다. 카르둥 라를 넘으면 다시 완만한 평지-그러나 해발 4000m를 넘나든다-가 펼쳐지고, 이윽고 누브라 계곡과 작은 마을들이 나타난다. 황폐한 누런 대지 위에 사람 사는 마을만 녹색을 띤다.

누브라 계곡의 작은 마을 중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해발 3300m의 훈두르(Hundur)다.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에는 논과 밭에 물을 대는 작은 수로들이 나 있고, 여름에는 살구꽃과 복사꽃이 마을 전체에 만발한다. 여행자들이 훈두르에 매료되는 가장 큰 이유는 훈두르의 낙타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막이 아닌, 만년설로 뒤덮인 산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진 해발 3300m의 고원에서 낙타를 만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마땅한 식당도 없어서, 마을에 단 4개뿐인 작은 숙소에서 해주는 대로 먹는 수밖에 없다.

상상 속 원시 자연, 살아 있는 이상향

훈두르 마을 전경.리 만년설산이 보이는 모래언덕에서 낙타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위). 털털거리며 달리는 버스들의 휴게소(아래).

이곳의 강은 여름에만 흐른다. 날씨가 좀 더워져야 만년설이 녹아 강을 이루기 때문이다. 1년 중 9개월은 강이 메말라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강가에는 큰 모래언덕들이 있었다. 매년 3개월씩만 흐르는 강물과 거친 바람이 수천 년에 걸쳐 바위를 모래로 만들었으리라.

훈두르의 낙타가 여행자들을 이 마을로 끌어들이기 위해 도시에서 공수해온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훈두르는 오래전 인도와 중국의 상인들이 낙타의 등에 소금을 싣고 운반하던 ‘차마고도’(‘주간동아’ 544호 참조)의 한 구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과 인도의 국경을 마음대로 오갈 수가 없다. 과거에는 없던 국경이 생겼고, 양쪽 모두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인도와 중국은 수천 년 동안 누브라 계곡에서 살아온 사람들조차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훈두르에서 묵은 첫날 밤, 별을 보기 위해 사구로 가려 했지만 갈 수 없었다. 이곳에는 사흘 간격으로 전기가 들어온다는데, 마침 그날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었다. 플래시의 희미한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사구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숙소에서도 별은 잘 보였다.

열정이 남아 있다면,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할 만한 훈두르에 가볼 것을 권한다. 들릴 듯 말 듯 아련한 고대 상인 후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히말라야 고원지대의 아름다운 밤하늘을 마음속에 새겨보시길….



주간동아 554호 (p84~85)

글·사진=전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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