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4

2006.09.26

“해외 플랜트 건설, 젊은이 씨 말랐어요”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입력2006-09-21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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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플랜트 건설, 젊은이 씨 말랐어요”
    몇달 전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지인(知人)들과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들은 ‘에너지 안보’를 주제로 5월 초 카자흐스탄과 이란, 러시아 등지를 둘러보고 막 귀국한 참이었다. 한 사람이 한국 건설사가 진출해 있는 이란 남부지역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소감을 말했다.

    “지금까지 자식들이 올망졸망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직업에는 군인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대규모 가스플랜트를 짓는 현장에 나이 지긋한 한국 엔지니어들이 여럿 있었다. 황량한 공사 현장에서 손자들의 재롱을 보고 있을 연배의 분들을 만나니 ‘애국자가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에게 이 말은 무척 흥미롭게 들렸다. 애국자라…. 그런데 현시점에서 애국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애국이란 말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비근한 예로,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를 놓고 한쪽에선 ‘민족’과 ‘자주’의 이름을 내걸며 “이젠 돌려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군기지가 이전해갈 평택에서는 반대 시위가 연일 끊이질 않는다. 다른 한쪽에선 백발성성한 노(老) 장군과 전직 국방부 장관들까지 총출동해 “그러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고…. 모두들 ‘나라를 위해서’란다. 애국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가 더 애국하는 사람들일까.

    국가가 개인을 압도하던 시절은 적어도 공식적으론 막을 내린 지 오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 살 것, 즐길 것, 챙길 것을 따라가기에 바쁘다. 이런 와중에 무슨 운동과 시위를 업(業)으로 삼는 일부 사람들은 자기네가 세상의 온갖 선(善)과 당위(當爲)를 독점한 것처럼 행동한다. 월드컵 때마다 광화문 거리를 붉은 색깔로 메우는 젊은이들은 또 어떤가. 혹시 그들에게 애국이란, 태극기 문양이 들어간 일종의 ‘패션’ 같은 것은 아닐까?



    이제 애국은 국가주의가 횡행하던 시절에나 통했던, 내다버려야 할 덕목이 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흔히들 얘기하는 세계화와 포스트모던 시대에 걸맞은 애국의 새 정의(定義)가 필요한 건 아닐까.

    GS건설 강택성 부장을 만난 때는 9월11일, 4개월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2주일간의 휴가를 거의 끝내고 이란의 앗살루예 가스플랜트 건설 현장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이었다. 앗살루예는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500km 떨어진 어촌 마을. 주변에 놀러 다닐 만한 곳이라곤 전혀 없는 궁벽하고 황량한 마을이다. 더욱이 이란은 요즘 미국과 대립각을 잔뜩 세우고 있는 ‘위험한’ 나라가 아닌가. 편안한 서울 생활에 익숙해졌을 그의 몸과 마음이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가 먼저 궁금했다.

    집보다 편한 이란 앗살루예 공사 현장 … 사람 없어 정년 연장

    “서울에 와서 한 열흘쯤 지나니까 슬슬 몸이 근질거리고, 그곳 사정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공사는 제대로 돼가고 있는지, 공정에 무슨 문제는 없는지…. 집사람이랑 한방에서 자는 것도 좀 불편하고….”

    “해외 플랜트 건설, 젊은이 씨 말랐어요”

    공사 착수 전인 2004년 5월 이란 앗살루예 현장을 찾은 강택성 부장(왼쪽 사진 맨 오른쪽)과 동료들. 벌판이던 현장은 2년 사이 대단위 가스플랜트 단지로 변했다.

    그의 대답은 상식에 반(反)했다. 하긴, 어른이 된 후 삶의 대부분을 현장에서 먹고 자며 보내다 보면 거기가 집이고, 오히려 집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강 부장은 1949년생, 우리 나이로 58세다. 정년퇴직을 할 나이에서 2년이나 지났지만, 회사에서 정년을 연장해줘 현장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앗살루예 현장에는 그처럼 정년이 연장된 사람이 3명 더 있다고 한다. 모두 부장이다. 임원급인 현장 총책임자보다 고참 부장들의 나이가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

    강 부장은 플랜트 건설, 그중에서도 기계 쪽에서 평생을 보낸 베테랑 엔지니어다. 20대 후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해외근무 31년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두바이 등 중동지역에서만 장장 28년을 보냈다.

    - 정년이 연장된 이유가 뭔가요?

    “가장 큰 이유라면 젊은 세대 중에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회사 입장에서 보면 해외공사는 계속해야 하는데, 일할 사람은 없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젊은 세대가 힘든 일을 기피하는 풍조는 건설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만 근무한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신입사원이 있는가 하면, 해외현장 근무로 발령 나면 사표를 내고 나가버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건설사마다 기술 인맥이 끊길 위기에 빠졌다. 학교에서는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터득한 감(感)까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기업에도 젊은 세대를 가르칠 만한 노장들이 거의 퇴직한 상황. 강 부장처럼 30년 넘게 해외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국내 건설사 전체를 통틀어도 몇 명 안 된다고 한다.

    “걱정이에요. 앞으로 10년은 해외 플랜트 건설이 호황일 텐데, 이렇게 사람이 없어서야…. 현재 턴키(일괄수주) 방식으로 플랜트 수주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럽 몇 나라와 일본, 우리나라 등 몇 개국밖에 안 됩니다. 중국은 아직 그럴 수준이 안 돼요. 이 기회를 제대로 잡아야 할 텐데 말이죠.”

    - 현장 생활을 좀 소개해주세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6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기온이 40℃까지 올라가는 12시부터 3시까지는 휴식을 취하죠. 오후 3시부터 6~7시까지 일하고 숙소에 돌아온 뒤 헬스장에서 운동하거나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듭니다. 가끔 인터넷에서 영화를 내려받아 보기도 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활이에요.”

    - 젊은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수 있겠네요.

    “그럴 수 있죠. 앗살루예 현장에 나가 있는 한국 인력 30여 명 중 40대 밑인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렇다 보니 40대 아래 세대 중에는 플랜트 건설현장에서 장비소요 등 전체 계획을 세우고, 그때그때 목표치를 정해 스케줄대로 이행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죠.”

    “우리 사회 왜 이래야 하는지 이해 안돼”

    그는 아들 둘, 딸 하나를 키웠다. 아들들은 장성해 각자 사회의 일꾼으로 제 몫을 하고 있고, 딸은 외국 항공사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노후생활을 위한 경제적 준비는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평생 강북에서 살고 있지만, 은퇴 후 자식들에게 부담 되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열사(熱沙)의 나라들을 떠도는 사이에 국내의 부동산 투기 바람에 편승할 겨를도, 여유도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그에게 뜬금없이 “애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정치적인 논쟁에는 관심도 없고, 별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제가 해외현장에서 회사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애쓰는 것도, 크게 보면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은 가끔 듭니다.”

    그는 해외에서 일하다 보면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절실하다고 느낄 때가 참 많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반 중동에 국내 항공사가 취항하고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됐을 때, 90년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국가 위상이 오르내리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4시간 넘게 그와 나눈 대화를 여기에 일일이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평생 해온 플랜트 일을 얘기할 때는 눈에서 광채가 났고, 어수선한 국내 분위기로 화제를 옮겨갈 때는 “우리 사회가 왜 이래야만 하는지…”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강 부장은 우리가 가난했던 30여 년 전부터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산업화 세대’의 일원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가족을 온전히 건사했고, 결과적으로 나라 경제를 이만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사건건 목청만 높이는 사람들보다 그가 훨씬 훌륭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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