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2006.08.22

크면서 붉은빛 띤 것 ‘0순위’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8-16 18: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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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면서 붉은빛 띤 것 ‘0순위’
    올해는 피서 가기 힘들 것 같다. 무슨 일이 이다지도 많은지…. 8월 들어 해외출장이 2건이나 잡혔고 하루 걸러 상담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내 사정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휴가 떠날 때마다 한 마디씩 던진다. “동해로 피서 가는데, 어디서 뭘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원한 동해바다가 내 눈앞에 어른거린다.

    동해라…, 일단 먹을거리가 참 많은 곳이다. 속초 중앙시장의 지하 어물전에 있는 싱싱한 광어와 놀래미, 문어, 개조개, 홍게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고성 백촌 막국수 맛은 여전한지 궁금하다. 그리고 불판 위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벌어지는 명주조개 향이 아직 코끝에 남아 있는 듯 생생하다. 하지만 그 많은 먹을거리 가운데 동해 하면 너나없이 첫손에 꼽는 것이 바로 오징어다. 일단 싸서 좋다. 그러나 동해에서 ‘오징어 요리’를 찾으면 곤란하다. 오징어볶음이라든지 오삼불고기니 하는 것은 없다. 싱싱한 오징어는 생으로 먹는 게 가장 좋기 때문이다.

    어? 아니다. 오징어 요리가 하나 있기는 하다. 오징어순대! 그러나 이것도 오징어를 맛있게 먹기 위해 개발한 요리는 아닌 듯하다. 오징어순대는 오징어라는 재료보다는 순대라는 음식 요리법에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북녘 지방에서는 소나 돼지의 창자, 명태, 오징어 따위로 순대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 음식이 6·25전쟁 이후 동해안 지역에 정착한 북녘 피난민들에 의해 번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초 아바이마을에 가면 오징어순대가 주요 음식으로 팔리고 있는데 드라마 ‘가을동화’가 인기를 얻기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8년 전만 해도 이 동네에는 아바이순대를 내는 음식점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오징어를 별다르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씀? 꼭 그렇지도 않다. 오징어회도 칼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동해안으로 피서를 가면 오징어회를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고 싱싱하게 먹기 위해 인근의 어항을 찾게 마련이다. 수족관이나 ‘고무 다라이’에서 쉭쉭 고개를 내미는 오징어들! 오징어를 고를 때는 일단 붉은빛을 띠는지 살펴본다. 싱싱한 녀석은 도마에 올려놓았을 때 번쩍번쩍 제 몸 색깔을 바꾼다. 오징어는 크기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 보통 작은 것이 연하고 맛나다고 생각하는데, 잔챙이들은 살이 무르고 고소한 맛이 덜하다. 큰 오징어를 얇게 채를 쳐야 맛이 난다. 작은 오징어밖에 없다면 큼직큼직하게 써는 것이 요령이다.

    얇게 채 쳐서 채소와 버무려 먹으면 ‘맛 그만’



    오징어회를 먹을 때는 그냥 초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오이, 상추 같은 채소들과 버무려 먹는 게 더 맛있다. 한 입 가득 넣고 자근자근 씹어 먹는 맛이라니! 여기에 시원한 물을 부으면 물회가 되는데, 난 꼭 밥을 말아 먹는다. 밥이 초장의 자극적인 맛을 순화시키기 때문이다. 요즘 오징어막회나 물회에 콩가루를 넣는 집이 간혹 있다.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해서인 듯한데, 그럴 경우 고소함은 더해질지 몰라도 콩가루의 텁텁함 때문에 본래의 맛이 오히려 사라진다. 차라리 땅콩가루나 아몬드 가루를 넣는 게 나을 듯하다.

    크면서 붉은빛 띤 것 ‘0순위’

    동해안 항구에서 한 상인이 오징어 횟감을 썰고 있다.

    말린 오징어도 있다. 약간 꾸덕하게 말린 오징어를 피데기라고 하는데, 상인들이 파는 피데기구이 중에는 완건 오징어를 물에 불려 쓰는 것도 있으므로 바닷가 덕장에서 어민과 직거래하는 것이 좋다. 말린 오징어 중에 정말 맛있는 것은 배에서 잡아올리자마자 내장을 빼고 갑판에서 말리는 ‘배오징어’다. 배오징어는 색깔이 거무스레한 것이 특징이다. 뭍에서 말리는 오징어들은 대부분 냉동 수입품을 녹여 건조한 것이므로 오징어 특유의 향이 배오징어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배오징어보다 한 수 위의 맛을 내는 게 ‘울릉도 당일 오징어’다. 밤새 잡은 오징어를 새벽녘에 부두에서 배를 딴 뒤 건조한 것이다. 그날 잡아서 말리는 것이라 포장에 ‘당일’이라고 써 있다.

    오징어와 비슷해 속아 사는 것 중 하나가 한치다. 오징어보다 다리가 짧다는 점을 빼면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한치는 작은 것은 맛이 약하고 씹는 촉감이 좋질 않다. 그러나 큰 것은 오징어보다 낫다. 시장에서 큰 한치가 보이면 한 마리 사다가 양념구이를 해 먹어보라. 정말 맛있다. 숯불 바비큐이면 더할 나위 없고.

    피서도 못 가면서 동해 오징어 타령이나 하고 있자니 심사가 꼬인다. 늦여름에라도 동해안에 가서 오징어물회 한 대접 먹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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