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2006.06.27

책 읽기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과

텍스트 뜻 연구, 언제나 실천방략 생각 … ‘소학과 사서오경’ 기본 교과서로 권장

  •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입력2006-06-26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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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기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과

    율곡 이이의 초상화와 율곡이 쓴 격몽요결(왼쪽).

    한국사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퇴계 이황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사상적 차이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둘은 오십보백보다. 모두 주자대전(朱子大全)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바탕으로 성리학이 조선의 이데올로기로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지난번에 퇴계를 다루었으니, 이제 당연히 율곡을 언급할 차례다.

    한때 독서는 한국인들의 ‘취미’였다. 취미란에 쓸 마땅한 것이 없으면 누구나 ‘독서’라고 적어넣지 않았던가. 한데 따지고 보면 독서는 복잡한 문제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이 간단한 물음은 사실 ‘학문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은 거창한 문제다. 율곡은 특이하게도 독서론(讀書論)을 남기고 이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다.

    율곡의 독서론은 자신을 반성하는 문장, 곧 자경문(自警文)에 피력돼 있다.

    -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나절 할 일을 생각하고, 아침밥을 먹고 나면 낮 동안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 아무 일이 없으면 마음을 내려놓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생각을 하여 일 처리에 마땅한 방도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 독서를 한다. 독서란 옳고 그름을 분변(分辨)하여 일을 행하는 데 실천하는 것이다. 만약 일을 살피지 않고 오뚝 앉아 독서만 한다면, 무용한 학문이 된다. -

    사림 의식화한 격몽요결



    독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다. 일과는 일과 독서로 구성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이 율곡의 일과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 옳고 그름을 분변하고, 그 분변은 일상의 일에서 실천돼야 한다. 율곡에게 독서는 곧 인간 행위의 윤리성을 판단하는 준거였던 것인가.

    자경문에 간단히 언급된 독서의 원리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더욱 상세히 언급된다.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비결’로 번역되는 격몽요결은 율곡의 대표적 저작이다. 율곡은 왜 이 책을 썼던가? 중종, 명종대의 사화(士禍)를 겪으면서 선조(宣祖)대에 와서 마침내 정치권력을 장악한 사림(士林)들은 스스로를 의식화하기 위한 교과서를 필요로 했던 바, 격몽요결은 바로 이 요구에 부응하는 책이었다. 격몽요결은 입지(立志), 혁구습(革舊習), 지신(持身), 독서(讀書), 사친(事親), 상제(喪制), 제례(祭禮), 거가(居家), 접인(接人), 처세(處世)의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보다시피 4장이 독서다.

    4장에서 율곡은 독서에 대해 상세히 논하고 있다.

    - 배우는 사람은 늘 이 마음을 보존하여 사물의 유혹에 져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치를 따져보고(窮理), 선(善)을 밝힌 뒤에야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눈앞에 드러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道)로 드러내는 데는 이치를 따지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이치를 따지는 데는 독서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현(聖賢)들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거나 경계해야 할 선과 악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성리학이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라고, 곧 궁리(窮理)하라고 말하면서 왜 다시 책을 읽으라 하고, 성현들이 책에 모든 것을 다 말해놓았다고 하는지 늘 궁금했다. 자연과학의 이치는 성현들의 책에 나와 있지 않다. 선입관 없이 사물을 직접 관찰할 때 이치는 발견된다. 내 의심의 골자는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율곡의 말이 겨냥하는 바는 다른 데 있다. 그 이치란 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닌 윤리·도덕적 원리였던 것이다.

    성현이 책에 모든 이치를 다 밝혀놓았다면, 성현의 그 책이란 어떤 책인가. 그는 성현의 책을 예거한다. 먼저 ‘소학(小學)’을 읽어 부모, 형제, 임금, 어른, 스승, 벗과의 관계에서 윤리적 실천을 가능케 하는 방법과 힘을 얻을 것이다. 다음에는 사서(四書)를 읽어야 한다. ‘대학(大學)’과 ‘대학혹문(大學或問)’을 읽어 궁리(窮理)·정심(正心)·수기(修己)·치인(治人)의 도리를 알고 실천할 것, ‘논어(論語)’를 읽어 인(仁)에 대해 배울 것, ‘맹자’를 읽어 의(義)와 이(利)를 가리고, 인욕(人欲)을 막고 천리(天理)를 보존하는 공부를 할 것, ‘중용(中庸)’을 읽어 성정(性情)의 덕과 천지 만물의 원리를 음미하여 깨달음을 얻을 것 등이다.

    사서 다음에는 오경(五經)이다. ‘시경(詩經)’을 읽어 마음의 정(正)과 선을 칭찬하고 사(邪)와 악을 나무라는 도리에 대해 공부할 것, ‘예기(禮記)’를 읽어 예(禮)의 절차와 정신에 대해 깨칠 것, ‘서경(書經)’을 읽어 유가(儒家) 정치철학의 기원을 밝힐 것, ‘주역(周易)’을 읽어 인간과 존재의 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기를 것, ‘춘추(春秋)’를 읽어 역사에 대한 도덕적 판단력을 기를 것 등이 율곡이 주문하는 바다.

    율곡은 소학과 사서오경을 인간이 읽어야 할 기본 교과서로 들고 있다. 사서란 논어·맹자·중용·대학(여기에 대학혹문을 더함. 대학혹문은 대학에 대해 혹자-어떤 사람의 물음에 대해 주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엮은 책)이고, 오경은 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다. 유학자가 사서오경을 필수적인 서적으로 읽으라는 말은 당연한 주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경전의 주해라는 미묘한 문제가 끼어든다.

    계속해서 독서 목록 추가

    경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적·문화적 코드가 달라지면, 어휘와 센텐스의 의미 역시 달라진다. 곧 시간의 퇴적 속에서 경전의 화자(話者)가 말하고자 했던 원래의 의미는 모호해지고, 급기야 실종되기도 한다. 주해는 모호해진 혹은 실종된 의미를 찾는 행위다. 하지만 주해는 궁극적으로 오해다. 주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원래 화자의 견해가 아니라 주해자의 견해일 뿐이다. 주자(朱子)의 사서에 대한 주해에서 드러나는 것은, 공자와 맹자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가 아니라 주자의 생각일 뿐이다.

    율곡이 읽으라고 한 사서오경은 중국 영락제(永樂帝, 成祖, 재위기간 1402~1424년)의 명으로 만든 사서대전(四書大全), 오경대전(五經大全)이다. 사서대전은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 주를 채택했다. 모시대전(毛詩大全, 곧 詩經大全)도 주자의 주를, 주역대전은 정자(程子)와 주자의 주를, 상서대전(尙書大全, 곧 書經大全)은 주자의 제자인 채침(蔡沈)의 주를 채택했다. 춘추대전(春秋大全)은 좌구명(左丘明)의 전(傳)을 채택했고, 예기대전(禮記大全)은 송나라 진호(陳澔)의 집설(集說)을 채택했다. 보다시피 가장 중요한 사서삼경은 주자와 주자학파의 주해본이었다. 율곡이 읽으라고 한 것은 이 사서오경 대전의 주해였다. 그것은 주자의 경전 해석만을 정통 해석으로 인정한다는 말이 된다.

    이 ‘대전’에는 말들이 많다. 워낙 졸속으로 만들어졌고 또 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국가권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자의 주해를 채택한 것 역시 국가권력이었던 것이다. ‘대전’은 세종 1년 12월7일 성리대전과 함께 들어온다. 정확한 연도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른 시기를 취하면 ‘대전’은 세종 3년부터 인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종 17년이면 사서오경 전체의 인쇄가 끝난다. ‘대전’이 조선에서 정통의 권위를 갖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사림 정권 이전에는 정통의 지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절대적 지위를 차지한 것은 사림 정권 이후, 곧 율곡 이후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주자와 그 학파가 주해한 사서오경 대전만 읽으면 끝인가? 그렇지 않다. 율곡은 계속해서 독서 목록을 추가한다.

    - 오서(五書)와 오경을 돌려가며 익숙하게 읽고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아 의리(義理)가 절로 밝아지게 만들어야 하되, 송대(宋代)의 선현(先賢)들이 저술한 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심경(心經)·이정전서(二程全書)·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 등을 틈틈이 정독하여, 어느 한순간도 끊어짐이 없이 의리가 항상 내 마음에 젖어들게 해야 한다. 여유가 있으면 역사책을 읽어 고금의 역사적 변화에 통달하여 식견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단 잡류(雜類)의 책은 한순간이라도 펼쳐 보지 않아야 한다. -

    책 읽기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과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자운서원. 율곡 이이를 추모하기 위해 1615년 제자들과 유림이 만들었다.

    주자의 주해가 지배하는 사서오경의 ‘대전’뿐만이 아니었다.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류는 모두 주자와 정자, 그리고 주자의 우익들이 저술한 서적이었다. 율곡은 사서오경 이외에는 이 책만 읽을 것을 요구했다.

    텍스트 고정으로 편협한 사유 불러

    율곡이 격몽요결에서 고정시킨 텍스트들은 조선조 말까지 변함없이 유지됐다. 지식인이면 주자와 주자학파가 주해한 사서오경과 주자대전, 근사록 등의 텍스트를 벗어날 수 없었다. 누구도 이 책을 읽지 않고, 혹은 이 책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는 지식인 행세를 할 수 없었다. 텍스트의 고정과 절대화는 당연히 다른 텍스트들을 배제했다. 유교의 경전과 성리학 서적이 아닌 타자들은, 이단이 되거나 잡류가 됐다. 이것은 지식과 사유의 폭을 제한하고 자유로운 지식과 사유의 분출을 잡도리하는 것이었다. 이단 잡류의 서적은 잠시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성종 때까지는 학문의 다양성이란 것이 존재했다. 하지만 사림 정권 이후 다양성은 사라지게 됐다.

    주자에 의해 모든 진리가 밝혀졌기에 더 이상 밝혀야 할 큰 덩어리의 이야기는 없었다. 한층 더 상세한 이해와 약간의 보충으로 주자학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일만이 남은 과제였던 것이다. 설사 부분적으로 주자와 주자 학설을 달리한다 해도 그 역시 주자가 만든 범주 속에 있는 것이었다. 주자는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학문체계였으며, 그중 자연인 주자의 학설을 일부 공격, 비판한다 해도 주자학이란 학문체계는 멀쩡하게 작동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율곡의 텍스트 고정은 실로 인간의 사유를 편협하게 만들었다.

    독서는 율곡에게 근엄한 행위였다.

    -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꿇어앉아 공경스런 자세로 책을 대해야 할 것이다. 마음과 뜻을 한데 모아 골똘히 생각하고 푹 젖도록 읽어 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로되,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만약 입으로만 읽고 몸에 체득하여 직접 실천하지 않는다면, 독서는 독서고 나는 나일 뿐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

    단정히 앉아 엄숙한 자세로 텍스트의 뜻을 연구하고, 언제나 실천의 방략을 생각할 것! 요즘의 독서와 크게 다른 모양이다. 현대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독서의 자세다.

    율곡 시대의 독서는 양반만의 일이었다. 양반의 시대는 지나갔다. 율곡의 독서론이 그대로 통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곱씹어봐야 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율곡이 정한 책의 목록과 저 근엄한 독서 자세에는 찬동하지 않지만, 그의 진지한 책 읽기에는 찬성해 마지않는다. 적어도 책 읽기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무다. 책 읽기가 무너짐에 따라 한국 사회의 교양층이 무너지고 있다. 정녕 어떻게 할 것인가. 율곡의 독서론을 읽고 복잡한 심회(心懷)를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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