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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공포영화 속의 악마

괴물로, 사람으로 ‘천의 얼굴’

  • 이서원 영화평론가

괴물로, 사람으로 ‘천의 얼굴’

괴물로, 사람으로 ‘천의 얼굴’

‘오멘’

영화 주인공을 놓고 신과 악마가 캐스팅 대결을 벌인다면 아마 대부분 악마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감독 입장에서 신을 다룰 때는 신성모독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악마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이 ‘십계’나 ‘천지창조’ 같은 작품에서 굵직한 남자 목소리만 빌려줄 때, 악마는 온갖 모습으로 변신한다. 어떤 때는 사악한 괴물로, 어떤 때는 친절한 친구로, 또 어떤 때는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로.

가장 무서운 악마가 등장한 영화는 역시 ‘엑소시스트’다. 어린 소녀의 몸에 들어가 온갖 흉측한 짓을 다 하는 얼굴 없는 사악한 존재. 우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악마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지만, 린다 블레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느낀다.

실화를 소재로 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도 비슷한 유형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도 악마보다 주인공 에밀리 로즈가 느끼는 고통에서 더 큰 공포가 전달된다.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에밀리 로즈를 통해 전달되는 기독교적 환영일지 모른다.

괴물로, 사람으로 ‘천의 얼굴’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666의 표식을 달고 태어난 적그리스도를 다룬 ‘오멘’ 시리즈는 공력이 조금 딸린다.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어린 소년을 악마로 내세운 건 색다른 시도였으나 전체적으로 스토리에 허구가 심하고, 666이라는 숫자를 다루는 수비학(數秘學)적 매력도 떨어진다. 악마 데미안이 어른이 된 뒤를 다룬 3편은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나온 리메이크 버전에서도 특별한 발전은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포기하면, 악마의 모습은 더욱 변화무쌍해진다.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변호사 악마가 대표적인 예다. 영화 속의 악마 존 밀튼은 카리스마 넘치고 교활하고 야비한 동시에 친절하며 지독하게 인간적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보는 진짜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이다. 당연하겠지. 존 밀튼은 악마라기보다는 종교의 규칙을 거부하는 인간적 욕망의 총체이니 말이다. 엄격한 교회의 지붕 밑에서 살아가던 중세 유럽인들이 그런 악마 이미지에 매료된 것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어떤 경우 악마는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해럴드 레이미스의 ‘일곱 가지 유혹’에서 악마는 엘리자베스 헐리가 분한 섹시한 미녀다. 물론 그 악마가 유혹하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캐릭터는 여전히 일편단심으로 짝사랑하는 프랜시스 오코너의 캐릭터에게 매달리지만, 과연 관객들도 그럴까? 이 영화에서 악마는 관객들의 시선을 통째로 사로잡는 미모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꽤 자상한 친구이자 조언자며, 규칙에 엄격한 프로페셔널이기도 하다. 이 정도라면 한번 영혼을 맡기고 게임을 벌여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주간동아 2006.06.27 541호 (p79~79)

이서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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