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0

2006.06.20

월드컵 열풍 독일, 신나치 역풍 불라

외국인·유색인에 대한 극우세력 폭력 빈발 ... 당국 뚜렷한 대책 없어 ‘전전긍긍’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6-06-14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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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독일은 손님맞이 채비로 부산하다. 또 들떠 있는 분위기다. 독일 사회는 월드컵을 계기로 그간의 침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그러나 우려되는 바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 급증하는 극우세력의 폭력사건은 독일정부를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있다. 월드컵 기간 중 1972년 뮌헨올림픽 때와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라도 일어난다면 독일의 국가 이미지는 땅에 떨어질 게 분명하다. 과거 나치시 절의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독일로서는 ‘독일은 외국인에게 적대적’이라는 이미지의 고착화야말로 가장 큰 모욕이 될 것이다.

    독일 안전기획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1만5361건의 폭력사건이 극우세력에 의해 자행됐다. 2004년보다 3000건이나 증가한 수치다. 올해 들어 언론에서 크게 다룬 극우세력의 폭력사건만 해도 벌써 여러 건이다.

    2005년 한 해 동안 1만5361건 자행

    1월9일 작센안할트 주에서 12세 에티오피아계 소년이 4명의 극우청년에게 둘러싸인 채 1시간이나 이른바 ‘스킨헤드 춤’에 시달렸다. 스킨헤드 춤이란 여러 명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돌아가면서 구타하는 것을 말한다. 이 소년은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국적 또한 독일이었다. 그럼에도 극우청년들은 소년의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소년을 ‘발로 찼고, 맥주병으로 내리쳤으며, 담뱃불로 눈가를 지지고, 칼로 위협하면서 그들의 장화를 혀로 핥도록’했다.



    4월 중순에는 브란덴부르크 주에서 박사 논문을 갓 제출한 35세 에티오피아 청년이 전차 승강장에서 극우청년 2명에게 폭행당해 한 달가량 의식을 잃었다. 5월 중순 쿠르드계 사민당 의원인 기야세틴 사얀은 베를린에서 2명의 스킨헤드로부터 “빌어먹을 터키인”이라는 욕설을 듣고 병으로 머리를 맞아 현재 입원 중이다.

    이처럼 외국인 내지 유색인들에 대한 적대적 행위와 폭행사건이 빈번히 언론에 보도되는데도 독일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정치권에서는 경찰에게 치안 대책 강화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극우파 문제는 경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슈뢰더 정부의 대변인이었던 우베카스텐 하이에가 5월17일 도이칠란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또다시 독일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는 월드컵 관광객들에게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주에는 가지 말라며 “아마도 유색인들은 이 지역을 살아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하이에는 현재 반극우 단체의 회장이므로 그의 말은 외국인들을 배려한 선의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의 발언은 해당 지역 극우 폭력세력을 공인한 것처럼 해석됐다. 정치인들은 하이에에 대한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오직 연방의회 내무위원장 세바스찬 에다티만이 하이에의 발언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 자신이 인도계인 에다티는 “옛 동독인 브란덴부르크 주에서는 서독인 라인란트팔츠 주보다 극우 폭력사건이 8배나 더 많이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유색인인 나 자신도 밤에는 베를린 트렙토 구 방향의 전철을 타지 않는다”고 했다. 트렙토 구에는 대표적 극우 정당인 독일민족당(NPD) 당사가 있다.

    인구비례로 따져볼 때 옛 동독 지역에서의 극우 폭력사건 발생률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동독 지역에서는 극우세력이 견고히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독일민족당은 작센 주에서 무려 9.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정당 설립 이후 최초로 주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베를린 트렙토 주에서는 11.4%를 득표했다. “아메리칸인디언들은 이주민들을 막지 못해서 현재 보호구에 갇혀 지낸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운명을 선사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저항하라”는 독일민족당 당수 파스퇴르의 호소는 많은 동독 주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과거 사회주의의 보루였던 동독 지역에서 극우파가 어떻게 이처럼 세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범죄학 전문가 빌헬름 하이트마이어는 동독 지역의 불안한 사회구조를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인정을 필요로 하는데, 동독 지역 주민들은 사회적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외국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괴롭힘으로써 자신의 불안감을 잊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동독 지역 마을들이 지나치게 동질화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통일 후 조금이라도 능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서독의 대도시로 떠났다. 그 결과 동독 지역에는 경제적 형편과 사고방식이 엇비슷한 사람들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질적인 외국인들에게 반감을 품기 마련이다.

    극우세력 주로 동독지역에서 활개

    극우파는 월드컵 행사를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는 도구로 삼으려 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나라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정당했다”고 발언한 이란 지도자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이란의 경기가 열리는 6월21일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시가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월드컵을 맞아 세계의 손님을 환영한다는 구호가 무색하게, 현재 독일에서는 옛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반(反)외국인, 강경 민족주의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강경한 대응방침을 천명했지만 이는 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통독 이후 전환기의 패배자로 전락한 옛 동독 주민들의 절망과 불안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세계와의 교류가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극우테러 같은 불행한 사건은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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