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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지금은 연애시대

사랑의 장애물 ‘신분 차이’서 ‘성격 차이’로

문학 속 연애 변천사 … ‘헌신적 연애’ 줄고 ‘의도적 접근’ 늘어

  • 정경남 숙명여대 교수·문학이론

사랑의 장애물 ‘신분 차이’서 ‘성격 차이’로

사랑의 장애물 ‘신분 차이’서 ‘성격 차이’로

G. 클림트의 작품 ‘러브(1895)’의 부분, 비엔나역사뮤지엄 소장. 육체와 정신을 넘어선 영혼의 결합을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 상대의 장점과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장점으로 보였던 부분이 오히려 단점으로 바뀌면서 상대는 더 이상 ‘나의 천사’ ‘나의 기사’가 아닐 뿐 아니라 ‘웬수’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은 이러한 현상을 ‘결정화(結晶化)’와 ‘탈(脫)결정화’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작가가 독일 잘츠부르크 근교 소금광산의 물웅덩이에 앙상한 나뭇가지를 던져놓고 2, 3개월이 지난 뒤 꺼내 보았더니 눈부시게 반짝이는 소금 결정체들이 마치 수정처럼 나무에 덧입혀져 있더라는 것이다. 즉 소금 ‘결정체’들이 앙상한 가지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아름답게 꾸며주듯, 사랑을 하면 상대를 자신의 환상으로 덧입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성을 되찾게 되면서 이른바 ‘탈결정화’ 단계가 시작된다.

하긴 고대 플루타르코스(플루타르크)는 사랑을 ‘광란’이라고 표현하고,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병’이라고 하면서 사랑에 빠진 자들의 실수를 용서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으니 사랑 앞에선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에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도대체 연애란 무엇인가’를 고민해왔다.

그리스신화에서 프시케는 운명의 남자가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를 선택하지만, 그 괴물이 사랑의 신인 에로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남편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녀는 시어머니인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그녀가 주는 모든 과제를 완수하고 에로스와의 사랑을 다시 이룬다. 프시케는 남성 위주로 구성된 그리스신화에서 여성 주도의 연애관을 개척한 최초의 주인공이다.

17세기 남성 자유연애, 19세기엔 여성 자유연애 사상 반영



중세 유럽을 휩쓴 연애는 ‘우리의 사랑은 운명’이라는 마치 신파극 대사와 같은 감정이었다.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 운명’, 즉 ‘모이라이’적인 운명과 ‘내 안의 무엇인가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이끌어가는 운명’, 즉 ‘다이몬’적인 운명의 연애가 합쳐진 것이다. 이러한 연애의 특징은 당사자들을 더할 나위 없이 대담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사회적인 모든 통념과 관습은 그들이 내세우는 ‘운명’에 의해 무용지물로 변하고 만다. 물론 그것이 ‘불륜’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연애는 더욱 극적으로 꽃을 피운다. 그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인데, 기사 트리스탄은 삼촌 부인인 이졸데를 사랑하게 된다. 연인은 점점 대범해지고, 연애 효과를 극적으로 높이기 위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심지어 두 연인이 나란히 누워 잠을 자는 중간에 ‘칼’을 놓아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연애는 ‘죽음’이라는 또 다른 함정을 담고 있어서 결국 ‘운명’과 ‘죽음’을 동일선상에 놓게 되어 죽음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세가 지나고 17세기가 되면 살롱 문학의 귀족 부인들은 사회적 규범을 거역하는 ‘운명적 사랑’을 거부하고 연애도 ‘귀족적 명예, 너그러움, 자질, 존경, 품위’를 지키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마담 드 라파예트’의 작품인 ‘클레브 공작부인’이 대표적이다. 아직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나이인 16세에 클레브 공작과 결혼한 샤르트르는 누므르 공작이라는 젊은 미남자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샤르트르는 이 사실을 어머니와 남편에게 고백하고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 몰리에르는 17세기 당시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남성 자유연애’ 사상을 펼쳐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나는 사랑의 자유를 원해. (…)나의 마음은 모든 여자들 것이야. 그러니까 내 마음을 차례대로 갖고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여자들의 몫이지”라고 외치는 주인공 돈 주앙의 모습은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바탕으로 사랑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인물의 전형이었다.

사랑의 장애물 ‘신분 차이’서 ‘성격 차이’로

영화 ‘마담 보바리’

이러한 연애 사상은 19세기 작가 메리메의 ‘카르멘’을 통해서 여성 돈 주앙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돈 주앙과 마찬가지로 카르멘은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여인이며, 한 남성에게 구속되는 것을 죽음보다 싫어하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이 남성 돈 주앙과 여성 돈 주앙의 모습을 동시에 담은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영화 ‘스캔들’로 만들어졌던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은 모두 돈 주앙의 극단적인 모습으로, 연애는 자신과 주변을 파멸로 몰고 간다.

연애에 대해 모든 사람이 가진 불안감 중 하나는 ‘사랑하는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결혼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를 서슴지 않고 시도해본 것이 18세기의 연인들이었다. 작가 마리보는 ‘사랑과 운명의 장난’이라는 작품에 두 명의 남녀 주인공과 두 명의 남녀 하인을 등장시켜 사랑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했다. 여자 주인공인 실비아는 자신의 신분을 하녀인 리제트와 바꿔치기해 집안이 정해준 정혼자인 도랑트에게 접근하는데, 도랑트도 실비아와 똑같은 생각을 하여 자신의 하인인 아를르깽과 신분을 바꿔치기한다. 결국 자신들의 생각은 하인-주인, 하녀-주인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파악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주인-주인’, ‘하인-하인’끼리 만나서 연애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로의 신분을 알게 되고 사랑의 진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은 운명이 아니라 ‘철저한 두뇌게임’을 통해 진실된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의 맛을 알게 됐다.

많은 작품들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결론으로 ‘죽음’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한다. 아베 프레보라는 작가의 ‘마농레스코’에 등장하는 마농과 데 그리유가 그런 경우이고, 이 작품을 모델 삼아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쓴 ‘춘희’,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그리고 1970년대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같은 헌신적 연애와는 반대로, 사랑하는 나의 남자가 단지 우리 집안의 부와 권력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면, 이것도 ‘연애’일까?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자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꾀하려고 한 남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실태를 고발한 작품이 스탕달의 ‘적과 흑’이다. 작가는 머리는 좋으나 신분이 비천해 출세할 가망성이 없는 쥘리앵 소렐이 어떻게 사랑을 미끼로 출세를 꾀했는가를 그리는데, 이런 주제는 지금도 꽤 인기가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매개체로 ‘죽음’ 단골 등장

사랑에는 언제나 ‘환상’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하고,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을 현실에 맞추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환상 속의 연애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플로베르’의 유명한 소설 ‘마담 보바리’가 그런 경우다. 꿈 많은 소녀 에마는 별볼일 없는 시골 의사인 보바리와 결혼을 하는데, 보바리는 에마가 가진 연애에 대한 환상을 채워줄 능력이 없어 그것을 충족시켜줄 인물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다.

문학이 시작된 이후 수많은 연애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학작품 속의 연애에는 필연적으로 ‘장애물’이 놓이고, 적당한 장애물은 연애의 불을 댕기는 촉매 구실을 했다.

일반적으로 신분의 차이, 부의 차이, 지식의 차이와 같은 ‘차이’는 중세와 근대까지 연애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이와 같은 외적 조건들은 장애물로서 별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 그러기에 이러한 이유로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어졌다.

그러나 사회적, 외적 장애 요소가 사라지자 현대인은 이제 ‘성격 차이’라는 내적 장애물을 만들어 자청해서 연애의 길을 험난하고 비극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연인들은 ‘진정한 연애와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성격 차이’를 들어 헤어진다. 도대체 왜? 이것이 오늘날의 작가들이 골몰하는 연애의 주제다.



주간동아 2006.06.20 540호 (p36~37)

정경남 숙명여대 교수·문학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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