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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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넘치는 天安, 몸살 앓는 治安

사실상 수도권, 가장 빠른 도시 팽창 … 급격한 인구유입, 범죄 등 부작용 속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6-06-14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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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넘치는 天安, 몸살 앓는 治安

    ‘하늘 아래 가장 평안한’ 천안이 요동치고 있다.

    “하늘 아래 가장 평안하다’는 충남 천안(天安)이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곳곳에서 고층아파트를 짓고 빌딩을 세우는 거대한 기중기의 거친 숨소리가 온 도시를 휘감고 있다. 도시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도로 건설은 흡사 신도시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논과 밭이 사라진 허허벌판에는 천지개벽을 알리는 콘크리트 냄새만이 가득하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6월5일, 취재팀은 ‘하늘 아래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 천안을 찾았다.

    행정도시 이전과 관련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고속철도와 전철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천안은 수도권으로 편입됐다. 사람들은 이제 천안을 ‘충남 천안시’가 아닌 ‘서울시 천안구’로 부른다. 서울 시청역에서 전철로 1시간 30분이면 닿는 거리니 그리 과장된 표현도 아니다.

    인구도 크게 늘었다. 2002년 초 43만7000여 명에 불과하던 인구는 3년 만인 2005년 말 51만8000여 명으로 8만 명 이상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도심의 확대로 이어졌다. 천안의 중심을 형성하는 신부동, 두정동 등 번화가는 이미 지방 소도시의 모습이 아니다. 전국에서 가장 큰 백화점 중 하나라는 갤러리아 백화점을 중심으로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는 신부동은 수도권에서도 유명한 유흥가로 급부상했다. 대학이 많다 보니 서울에서 통학하는 대학생들의 발걸음도 이곳에서 자주 멈춘다. 한 주민은 “지금은 그래도 많이 한산해진 편이다. 고급 유흥시설은 두정동과 성정동 등으로 많이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매일 수천 명 서울로 출퇴근

    천안의 변화는 역시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다. 특히 고속철도역 주변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아파트 바람은 서울 강남을 뺨친다. ‘천안 제1의 주거지역’으로 떠오른 불당지구와 쌍용동·신방동 주변 아파트는 평균 평당 분양가가 이미 1000만원을 넘기며 천안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지역 부동산 업소들에 따르면 천안 시내의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2002년에 450만원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05년 624만원, 2006년 1월에는 655만원으로 치솟았다. 최근 분양되는 아파트의 경우 50% 이상이 800만원대가 넘는다고 한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현재 천안에서는 분양가라는 게 사실상 의미가 없다. 유명 아파트의 경우 실거래가는 분양가보다 30~40% 이상 높다”고 말했다.

    3~4년 전만 해도 천안 지역 대부분의 전답과 나대지의 평당 가격은 100만~150만원을 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최고의 주거지역으로 꼽혀온 불당지구도 300만원 선이었다는 게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의 설명. 그랬던 땅값은 1~2년 사이에 1000만~2000만원까지 뛰었다. 게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와 달리 공급은 거의 없어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고 인근 부동산 업자들은 말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천안의 신흥 유흥가로 급부상한 두정동 일대의 상업지역은 평당 가격이 최고 2000만원을 넘어섰다. 공사가 한창인 한 모텔의 분양을 서두르고 있는 어느 업주는 전화통화에서 “부동산 업체에서는 이 인근 땅값이 2000만원 선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모르는 말씀이다. 3000만원에도 땅을 살 수가 없다. 일단 건물을 지어 가라오케, 안마시술소, 단란주점으로 분양한다는 소문만 나면 전국에서 돈을 싸들고 오는 곳이 바로 천안 두정동이다”라고 말했다.

    천안이 이렇게 변화한 데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먼저 행정수도 이전 특수와 고속철도 등 국책사업이 이 지역에 돈벼락을 내렸다. 그동안 토지 보상으로 풀린 금액만 1조원에 달한다. 한 부동산 업자는 “천안에서 100억원대 부자는 부자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행정중심 복합도시가 들어서는 연기·공주와 차로 20분 거리에 불과해 앞으로 행정도시의 관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온 도시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삼성 LCD공장을 축으로 하는 이른바 탕정지구 ‘크리스털밸리’도 지역 경기에 불을 댕겼다. 천안 서북쪽에 위치한 100만평 규모의 삼성 LCD단지는 2009년까지 자족형 기업도시로 만들어질 계획으로, 연일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말 새롭게 지정된 탕정지구 2단계 택지개발지구는 현재 규모의 3배가 넘는 510만평에 달한다. 양쪽을 합하면 분당(594만평)보다 더 큰 국내 최대 규모다.

    현재 탕정 LCD단지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3만5000명 정도. 2009년이면 5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들은 대부분 천안에 거주하면서 먹고 자고 마시며 돈을 쓴다. 탕정 LCD단지 인근에는 삼성 특수를 노리고 문을 연 ‘삼성특별시 부동산’ 같은 이름의 부동산 업소가 즐비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

    새로 유입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주택 건설로 건설경기는 전국 최고를 달리고 있다. 특히 아파트 시장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천안과 아산 지역에서는 올해 총 1만8000여 가구가 분양될 예정인데, 이 중 16개 단지에 1만1000여 가구가 천안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000여 가구가 늘어난 숫자다.

    갑자기 내린 돈벼락은 천안 시민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돈을 좇는 외지인들의 발걸음도 늘었다. 유흥업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백화점 매출은 매년 40% 이상 늘고 있다. 돈이 넘치고 사회가 복잡해지다 보니 각종 범죄도 덩달아 증가했다. 평안함이 사라진 ‘파라다이스’엔 어느새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5월12일 카지노에서 억대를 탕진한 사실을 알고 꾸중하던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천안에서 발생했다. 살인을 저지른 아들은 20대 강모 씨. 그는 사건 당일 오전 천안시 쌍용동 자신의 집에서 도박으로 1억2000만원을 탕진한 사실을 안 아버지가 꾸짖는 데 격분, 아버지를 흉기(아령)로 때려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하기 위해 승용차에 싣고 다녔다. 심지어 강 씨는 아버지의 시신을 승용차에 싣고 다니며 PC방 등지에서 게임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 아래 가장 평안하다’는 충남 천안에서 올해 들어 벌써 5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불에 탄 20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40대 여성의 토막 변사사건도 있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모 대학 경리부장 살인사건이 발생한 곳도 천안이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천안에서는 2004년 이래 살인사건만 총 18건이 발생했다. 폭력·강간 등 강력범죄도 매년 20% 이상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 1월의 경우 단 20일 만에 4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기록도 세웠다. 천안경찰서 형사과의 한 형사는 “이제 천안에서는 살인사건 정도는 돼야 강력사건 축에 든다. 강·절도나 단순 성폭행 사건에는 별도 수사팀도 꾸리지 못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그래도 최근에는 좀 잠잠해진 편”이라며 웃었다.

    돈 넘치는 天安, 몸살 앓는 治安

    탕정지구 삼성LCD공장 전경. 100만평에 달하는 ‘크리스털밸리’는 지역 경기에 불을 댕겼다.

    전문가들은 천안 지역에 살인사건 등 강력사건들이 집중되는 원인을 신도시개발과 인근 행정수도 건설 등으로 인한 부동산 가치 상승에서 찾고 있다. 거액의 보상이 이뤄지면서 갑작스럽게 목돈을 쥐게 된 주민이 늘어났고, 이들을 노린 범죄 및 돈과 치정에 얽힌 유사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부터 발생한 살인사건 11건 중 올해 1월 발생한 단 한 건을 제외한 10건이 모두 외지인에 의한 범죄였다. “최근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의 피의자를 조사해 보면 대부분 ‘천안에 돈이 많다는 말을 듣고 왔다’는 말을 한다”는 게 한 경찰 관계자의 설명.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급속한 도시 팽창과 이에 따른 연쇄살인 등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데도 경찰서는 단 1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치안 부재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속전철역 주변 범죄 사각지대

    특히 천안의 대표 유흥가인 두정동·성정동 주변과 부촌으로 불리는 고속전철역 주변 쌍용동은 범죄의 사각지대로 변해가고 있다. 두정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경옥(52) 씨는 “두정동은 전국 경찰에 찍힌 유흥가가 됐다. 외지인들이 대거 들어와 유흥타운을 만들고 있다. 폭력배들도 많이 들어온 것 같다”며 “지금도 7~8개의 모텔이 공사 중이고 올해 안에만 5~6개가 더 들어설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최근 두정동 지역에 신흥 조직폭력배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첩보를 입수, 내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 두정동 밤 문화는

    서울 뺨치는 유흥가 … 업소마다 손님 넘쳐나


    천안의 ‘유흥 중심’ 두정동의 밤은 화려했다. 취재팀이 두정동을 찾은 것은 6월5일 밤 11시경. 화려한 네온사인과 도로를 꽉 메운 고급 차량들은 이곳이 천안 제일의 유흥가임을 온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거리에 빽빽이 늘어선 차량의 절반 정도는 서울 번호판을 부착하고 있었다. 성인오락실도 10여 개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술과 도박이 판치는 ‘유흥의 천국’이 펼쳐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술집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가득했다.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어 그냥 나오기를 수차례. 어렵사리(?) 찾은 한 유흥주점에는 35명 정도의 ‘아가씨’가 일하고 있었다. 이 동네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고급스런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이곳에서 취재팀은 빈방이 나오기를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업소의 한 매니저는 기자에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왔는데도 술을 먹을 수 있는 걸 행운으로 알라”고 퉁기듯이 말했다. 지하에 단란주점, 1층에는 가라오케와 바를 갖추고 있는 이 빌딩에는 총 50개에 달하는 객실이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돈 넘치는 天安, 몸살 앓는 治安

    천안의 ‘유흥 중심’ 두정동의 밤 풍경.

    두정동의 ‘물값’은 생각보다 비쌌다. 서울의 여느 유흥가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업소는 손님들로 가득 찼고, 심지어 대기 손님들을 위한 휴게시설에도 손님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였다. 업소 매니저는 “이 동네에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의 80% 이상은 2차를 즐기러 온다. 술만 마시고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며 “요즘 천안에 돈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이 동네에 와보면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인근의 온양, 공주, 대전으로 가던 손님들이 이제는 모두 이곳으로 온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한 접대여성은 “손님은 천안 사람과 외지인들이 반반 정도다. 주말에는 서울에서 술 마시러 내려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자신이 한 달에 20일가량 일을 한다고 했다. 수입은 한 달 평균 500만~600만원. 그녀는 건강을 위해 골프를 즐길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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