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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차이밍량 감독의 ‘흔들리는 구름’

파격·기발한 상상력 뉴웨이브 거장 ‘이름값’

파격·기발한 상상력 뉴웨이브 거장 ‘이름값’

파격·기발한 상상력 뉴웨이브 거장 ‘이름값’

수박은 차이밍량의 주제를 일관되게 보여주는 시각적 이미지다.

이번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감독상을 받은 대만의 리안 감독이 무협·시대극·블록버스터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감독이라면, 역시 대만 감독인 차이밍량은 언제나 근대화와 도시화 속에서 매몰되고 단절돼가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붙박이 감독이다. 대개의 차이밍량 감독 영화 주인공들은 차마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텅 빈 허무와 진공의 늪 속을 헤맨다. 대만의 콘크리트 응달에 숨겨진 인간 군상의 고독과 외로움이 피할 길 없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차이밍량 감독의 고독과 외로움의 수로에는 늘 물이 돌아다닌다. ‘청소년 나타’에서 아쯔의 집 하수구에서 솟구쳤던 물은 ‘하류’에서는 샤오강의 집 천장에서 떨어지다 마지막 바닥을 뚫고 넘쳐나 ‘구멍’에서 양귀매의 집을 침수시켰다. 갈증을 달래주던 물, 외로움을 식혀주던 물, 성적인 물, 질병을 불러일으키는 물, 몸을 씻는 물. 그러나 그 많던 물은 다 어디로 갔는가.

메마른 도시, 사랑에 빠진 두 영혼 감각적으로 그려

전작 ‘구멍’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 홍수의 상황은 이제 ‘흔들리는 구름’에 이르러서는 가뭄이라는 정반대의 지점으로 주인공들을 내던진다. 갈증을 넘어 기갈의 욕망으로 허덕이는 인간들은 물을 훔치고, 자신의 자궁과 아스팔트와 목욕탕 수도꼭지 모두에서 물이 솟아나길 원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파격·기발한 상상력 뉴웨이브 거장 ‘이름값’
이제 대만은 극심한 가뭄으로 버썩버썩 말라간다. 그리고 역시 두 개의 메마른 영혼이 있다. 싱차이는 공중화장실에서 몰래 물을 길어 나르고, 포르노 배우인 샤오강은 몰래 아파트 옥상 물탱크에서 샤워를 즐긴다. 적막한 거리에서 만난 두 사람. 둘은 사랑에 빠지고, 함께 요리를 해 먹는다. 하지만 싱차이는 샤오강이 포르노 배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싱차이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샤오강과 함께 일하는 여배우가 탈진해서 쓰러져 버리고, 그녀를 돕는 과정에서 싱차이는 샤오강이 찍는 포르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흔들리는 구름’이 비록 ‘구멍’과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할지라도 영화는 그 연장선상에 있기보다 그의 전작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차이밍량표 종합선물세트로 콜라주를 형성하고 있다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미 샤오강과 싱차이가 서로를 알고 있다고 상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전작 ‘거기 몇 시니?’에서 샤오강은 노점에서 시계를 팔았고 그녀는 그 시계를 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가 되는 시각적 이미지, 수박과 열쇠는 이미 전작에서도 충분히 강렬하게 차이밍량의 주제를 대변하는 것들이었다.

영화에서 싱차이는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 아스팔트를 두리번거리고, 이윽고 샤오강이 그것을 파준다. 역시 ‘애정만세’에서 차이밍량은 어느 아파트 문에 꽂힌 열쇠를 클로즈업하면서 시작했고, 그것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뽑아 가는 소강은 열쇠가 꽂혀 있던 빈집에 몰래 들어가 생활했다. 이렇게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열쇠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파랑새와 같은 것이다. 또한 ‘애정만세’의 소강은 ‘흔들리는 구름’에서 싱차이가 그랬듯 자신이 사온 수박에 키스를 퍼붓고, 벽에 부딪혀 깨진 수박을 허겁지겁 먹는다. ‘하류’에서 포르노 비디오업자를 애인으로 갖고 있는 어머니는 ‘흔들리는 구름’의 싱차이가 그렇듯이 집에 들어오면 방에 틀어박혀 포르노 비디오만 본다.

파격·기발한 상상력 뉴웨이브 거장 ‘이름값’

영화 ‘흔들리는 구름’.

그러나 전작의 색채들이 깊은 심연에 가라앉은 어둠의 색과 비슷했다면 ‘흔들리는 구름’은 차이밍량의 영화 중 가장 환한 대낮에 어느 때보다도 현실과 꿈을, 견고한 상징과 본래의 의미에서 미끄러지는 그물망을 벗어난 기호들로 가득 찬 이중의 세계를 오간다. 일례로 이 영화는 여자의 다리 사이에 얹어놓은 수박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마치 물기 많은 자궁처럼 보였던 그 수박은 섹스 후 (주인공 샤오강은 포르노그래피를 찍고 있는 중이다) 샤오강이 머리에 뒤집어쓰자 모자로 변해버린다. 그 후 수박은 싱차이에게 갈증을 식혀주는 생수의 대용이자 옷 속에 집어넣었을 때는 그녀가 잉태하지 못한 태아로, 누군가에게 키스하고 싶은 얼굴로 변모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변용과 의미의 다층성은 영화가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포르노그래피와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형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흔들리는 구름’은 첫 장면부터 포르노그래피의 내용을 찍지만, 카메라는 관음의 욕망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는 것’, 즉 포르노그래피를 찍는 카메라를 다시 차이밍량의 카메라가 찍어내는 방식으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하여 여자의 교성과 수박 파는 소리가 몽타주가 되고, 폐소공포증적인 엘리베이터와 텅 빈 광장이 연결되고, 포르노그래피를 찍는 화장실과 장제스 동상의 가랑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태 어린 뮤지컬이 이어질 때, 극단의 시각적 이미지가 한껏 부풀려진 꿈의 세계, 환한 대낮조차도 뮤지컬 본연의 기능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구김살이 모두 펴진 과장된 꽃과 수박과 우산의 시각적 이미지들은 가슴이 미어질 듯한 고독으로 기어나와서,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꿈의 파편으로 떠다닌다. 항상 공간과 관계의 예각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차이밍량식 카메라에 얹힌 ‘흔들리는 구름’의 뮤지컬들은 더 깊은 어둠의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흔들리는 구름’은 ‘그레이스 창의 노래가 있는 2000년을 보고 싶다’고 엷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구멍’보다 훨씬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차이밍량의 귀환을 예감케 한다. 기실 영화는 넘쳐나는 성적인 메타포들로 포화를 이루지만, 어떤 리얼한 성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샤오강과 싱차이의 음식 먹기(상징적 성관계)는 그림자로 처리되어 있고, 섹스는 남자에게 직업이며,
파격·기발한 상상력 뉴웨이브 거장 ‘이름값’
심영섭
‘주간동아’와 함께 격주로 영화 탐구를 떠나는 심영섭 교수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임상심리학으로 박사를 취득했으며, 인제대 백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199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인생의 진로를 바꿔 현재 영상응용 연구소 ‘사이’ 대표와 대구 사이버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여자에게는 꿈일 뿐이다. 그리하여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싱차이가 내지르는 소리가 신음인지 비명인지 (아마도 둘 다이겠지만) 알 길이 없다.

그리하여 흔들리는 떠돌아다니는 구름들은 어떻게 비를 만드는가. 만남이 스쳐감이 되고, 퉁퉁 불어터진 꿈이 도시의 하수구 밑바닥을 돌아다닐 때, 이제 감독은 떠돌아다니는 구름의 그림자 밑에서라도 쉬고 싶었던 인간들의 욕망을 다 증발시켜 버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만 무지화면. 유쾌한 노래는 흘러나오지만, 이제 인어는 뭍으로 나와 자신의 비늘에 있는 물기를 죄다 말려버렸다.



주간동아 529호 (p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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