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2006.04.04

승리지상주의, 그 추한 뒷모습

  • 최성욱 스포츠 칼럼니스트 sungwook@kr.yahoo-inc.com

    입력2006-03-29 18:1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Winning isn’t everything. It’s the only thing(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오직 유일할 뿐이다).”

    이 말은 1959년 미국의 전설적인 미식축구 감독 빈스 롬바르디가 남긴 것으로 스포츠에 대한 미국인의 가치관을 함축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과정이야 어찌됐건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미국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수사다.

    최근 폴 햄(체조)이나 안톤 오노(쇼트트랙)와 같은 ‘치사한’ 미국 스포츠 선수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도 승리지상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햄과 오노에겐 공통점이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체조 경기에서 심판의 잘못(당시 심판은 난이도 점수를 잘못 채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으로 행운의 금메달을 딴 햄은 “어찌됐건 내가 금메달리스트”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청소년 선수들 약물 남용 부모들조차 방조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을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오노. 그 역시 반칙이건 뭐건 승리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오노는 올 토리노올림픽 1500m에서 메달을 놓치자 “나는 여전히 챔피언”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부정 출발 논란 끝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는 “내가 원래 출발이 좀 빠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햄과 오노의 사례는 스포츠맨십보다 승부에 더 집착하는 미국식 승리지상주의의 일면을 보여준다.



    한국의 체육 교육이 ‘이기는 법’만 가르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심하다. 오로지 결과에만 집착하는 승리지상주의는 미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네 축구에서도, 유소년, 중·고교는 물론 대학 스포츠에서도 ‘승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야 할 대상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수들의 약물 남용이다. 메이저리그 스타급 선수들의 약물 복용은 널리 알려진 사실. ‘왕년의 강타자’ 호세 칸세코는 지난해 자서전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스테로이드 상습 복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승리에 대한 염원이 어린 선수들에게까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10대 선수들도 “운동을 잘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거나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가고 싶다”면서 금지 약물 복용을 꺼리지 않는다. “인조인간이 되더라도 우승하고 싶다”는 한 스테로이드 복용 청소년의 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금지 약물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10대 선수가 적어도 30만명에 달한다.

    ‘승리의 대가가 너무 클 때(When winning costs too much)’라는 제목의 저서(2005년)를 통해 미국 스포츠계의 약물 남용을 경고한 존 맥클로스키와 줄리언 베일리스는 미국에서 12~17세 운동선수 가운데 금지 약물을 복용한 이들이 100만명에 육박한다고 우려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어린 선수들의 약물 남용을 감독, 코치, 심지어 부모들조차 방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선수들의 약물 남용은 미국인들의 승리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승리한다면 그 어떤 과정도 합리화할 수 있다’는 미국식 사고가 칸세코, 오노, 햄 등 추한 스포츠맨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승리에만 매몰돼 저질러지는 약물 남용은 화려한 미국 스포츠의 일그러진 뒷모습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