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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에버랜드 여자 사육사 이영원

“호랑이·사자도 제 눈엔 순한 양이에요”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호랑이·사자도 제 눈엔 순한 양이에요”

“호랑이·사자도 제 눈엔 순한 양이에요”

이영원 사육사가 암호랑이 강호에게 닭고기를 먹이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와일드사파리’(이하 사파리)의 이영원(22) 사육사는 무척 앳돼 보였다. 소녀티를 갓 벗은 2년차 사육사가 다루기에 맹수는 버거워 보인다. 아침부터 눈을 치우느라 손이 발갛게 달아오른 이 사육사에게 “호랑이, 사자가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맹수를 키우는 사람에게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눈을 흘긴다.

사육사 일은 고되다. 맹수들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사육사의 하루는 오전 7시 반 똥오줌을 치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밤사이 우리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점검하고 맹수들의 건강 상태를 살핀 뒤 사파리에 방사될 ‘컨디션이 좋은’ 사자와 호랑이를 고른다. 그러고 나서도 ‘밥 때 식당’처럼 바쁘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눈이 녹은 바위 언저리는 포근했다. 바위 냄새를 맡던 암사자 키아라가 무료했던지 호랑이에게로 향한다. 키아라를 따라 수사자 투스가 으르렁거리며 다른 암컷들을 이끌고 떼로 호랑이에게 덤벼든다. 이 사육사의 ‘패트롤카’가 날렵하게 유턴해 싸움이 벌어진 곳으로 내달린다.

“싸움을 막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보통의 싸움은 주먹질로 끝나지만, 상대가 큰 타격을 입으면 힘이 센 놈이 이빨을 밖으로 드러낼 때가 있어요. 작정하고 이빨로 숨통을 조이면 살아남을 수 없죠. 하지만 초기에 싸움을 제압하기 때문에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육사를 꿈꿨다.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서도 동물자원학을 전공했다.

여성 사육사를 바라보는 주변의 눈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미녀와 야수’를 찍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은 “고된 일을 뭐 하러 사서 하느냐”고 걱정한다. 남자 친구도 “얼굴 보기 힘든 데다(이 사육사는 에버랜드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이따금 투정을 부린다. 그럼에도 이 사육사는 ‘맹수 돌보기’를 천직으로 여긴다.

“유치원 때로 기억해요. 에버랜드 사파리에 놀러 갔었는데 한눈에 호랑이, 사자에게 매료됐어요.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무섭지 않냐고요? ‘호감’(매력적인 대상을 나타내는 누리꾼 은어) 그 자체예요. 맹수는 착하고 순수하며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암호랑이 강호는 겁이 없다. ‘지프’에도 제멋대로 오르고 사자들과의 눈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깡~!” “깡~!” 강호를 부르는 이 사육사의 목소리가 여리면서도 우렁차다. 방문객 앞에서 호랑이를 지프 보닛에 태우는 ‘묘기’를 보여주려는데 강호가 말을 듣지 않는다. ‘깡~!’ 하고 부르는 이 사육사의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주인’의 심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는지, 강호가 뒤늦게 몸을 일으킨다.

“이름을 부르면 곧장 달려오는데 오늘은 이상하네요. 강호가 오늘 속이 안 좋은 가봐요. 아침부터 풀만 먹더라고요(육식동물인 호랑이는 위에 문제가 있을 때 풀을 뜯는다).”

“호랑이·사자도 제 눈엔 순한 양이에요”

이영원 사육사(왼쪽)와 김혜진 사육사가 아기 사자를 품에 안고 있다.

보닛에 올라탄 강호에게 ‘닭다리’를 연신 권하는데도 강호가 사양하자 이 사육사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그는 동물들이 아프면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늙어가는 맹수를 보는 것도 안쓰럽다. 여덟 살(사자와 호랑이의 나이는 사람 나이에 5를 곱하면 된다. 예컨대 다섯 살짜리 맹수는 사람으로 치면 스물다섯 살이다)이 넘은 맹수는 방사할 수 없어 우리에서 지낸다. 젊은 맹수들과의 영역 다툼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좁은 우리에 갇혀서 늙어가는 사자, 호랑이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신나게 사파리를 달리고 싶을 텐데…. 늙은 맹수들이 불쌍해 보일 때면 ‘젊은 녀석들에게 따돌림 당하면서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우리에서 지내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고 자위하곤 합니다.”

이 사육사가 ‘스페셜카(손님을 태우고 사파리를 도는 RV)’에 오른 가족 단위 손님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호랑이-사자 싸움의 승자’. 호랑이와 사자가 ‘맞장을 뜨면’ 둘 중 힘이 센 놈이 이긴다는 게 정답이다. 덩치가 큰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와 1대 1로 다투어 이길 수 있는 사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사파리에서 호랑이는 사자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사자는 고양잇과 동물로는 특이하게 집단생활을 합니다. 사자들은 호랑이와 시비가 붙으면 떼로 몰려가 호랑이를 윽박지릅니다. 아무리 힘이 좋은 호랑이도 서너 마리가 동시에 덤벼들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지요.”

“호랑이·사자도 제 눈엔 순한 양이에요”

우리를 청소하고 있는 사육사들 .

맹수들이 교미하는 모습을 보고서 어린이들이 “지금 뭐 하는 거예요”라고 물으면 맹수를 호령하는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사랑하고 있는 거야”라고 답해주는데, 짓궂은 아이들은 “사랑을 왜 저렇게 해요” 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으샤 으샤’ 하고 있다”고 둘러대도 아이들의 호기심은 멈출 줄 모른다.

“배운 것보다 배워야 할 게 더 많아요. 정이 가는 ‘친구’가 있고,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 있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사육사가 되기에는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익혀서 베테랑 남자 선배들을 앞지를 거예요.”

넓은 사파리가 어스레해진다. 맹수들이 우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호랑이는 으르렁거리고 사자는 포효한다. 좁은 우리에 갇히는 게 싫은 눈치다. 패트롤카로 능숙하게 맹수들을 모는 사육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사자, 호랑이에게 토끼·돼지고기를 먹이는 앳된 사육사의 뒷모습에선 ‘모성(母性)’이 느껴진다. 호랑이 한 마리가 대(大)자로 누워 보드라운 속살을 보여주며 그의 손길을 기다린다.



주간동아 2006.02.28 524호 (p72~7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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