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유리 보석 ‘빛과 신비’ 볼수록 매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7-08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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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보석 ‘빛과 신비’ 볼수록 매력

    체코의 수호성인인 성 웬세스라스와 체코를 상징하는 3개의 문장이 그려진 로메르잔.

    크리스털에 대해서는 잠시 잊자. 6월25일부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프라하의 빛-보헤미아 크리스털 대전’은 투명하고 찬란한 크리스털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아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5세기 무렵 유럽의 어느 귀족 가문에서 사용했을 법한 잔금이 잔뜩 간 구식 크리스털 잔부터 높이가 1m를 훨씬 넘는 현대의 기하학적 조각상까지, 색깔과 크기가 천양지차인 182점의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크리스털 하면 떠오르는 값비싼 유리 장식이나 화려한 식기 세트들은 찾아볼 수 없다. 전시회의 주제가 ‘크리스털’이 아니라 ‘프라하의 빛’이기 때문이다.

    체코의 부침·예술성 ‘물씬’

    프라하는 널리 알려져 있듯 유럽을 풍미한 낭만주의자 ‘보헤미안’들의 고장.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세기의 지성 프란츠 카프카의 고향이기도 하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일 정도로 유서 깊은 이 지역 특유의 낭만성과 인문적 풍토는, 전시장 곳곳에 자리잡은 크리스털 작품 안에 깊이 배여 독특한 빛을 발산해낸다.

    특히 이번 전시가 화제를 모으는 까닭은 체코 국립 프라하 예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국보급 크리스털 작품들과 현대 유리예술의 대표적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기 때문.

    유리 보석 ‘빛과 신비’ 볼수록 매력

    1. 제누시스,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제작해온 야로마르 리박의 작품이다. 2.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체코 친구인 뷰코이 백작에게 영감을 주어 제작된 중국풍의 컵과 받침. 3. 뒤집어진 낙하산 모양을 해 절박하게 넘어갈 듯한 모습으로 보이게 디자인된 꽃병.

    보헤미아 왕국이 황금기를 맞은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거인단 행렬이 그려진 크리스털, 비운의 황녀 마리 앙트와네트의 어머니이자 오스트리아 여제로 근대 법치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이 담긴 잔, 체코의 수호성인인 성 웬세스라스와 3개의 문장(紋章)이 담긴 ‘로메르잔’ 등의 작품을 통해 유럽에서 펼쳐졌던 역사의 소용돌이와 왕가의 부침들을 생생히 돌아볼 수 있다.



    독일의 시인 괴테가 절친한 친구인 체코의 뷰코이 백작에게 권유해 제작했다는 검은 크리스털 잔은, 금박을 입혀 만든 중국풍의 독특한 찻잔과 받침 모양을 통해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프라하 크리스털의 예술성을 증명해 보인다.

    현대 유리예술의 거장인 스타니슬라프 리벤스키의 작품 등 현대 작가들의 크리스털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스타니슬라프 리벤스키는 생전에 유리예술 분야에서 ‘유리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

    유리 보석 ‘빛과 신비’ 볼수록 매력

    피라미드의 초록눈, 스타니슬라프 리벤스키와 아로슬로바 브리흐토바의 작품(왼쪽). 매끈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크리스털 향수병(오른쪽).

    그가 아내 야로슬로바 브리흐토바와 공동 제작한 ‘피라미드의 초록 눈’ ‘공간 2’ 등은 빛의 방향과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뿜어내는 크리스털의 질감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수작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오렌지 과육이 뚝뚝 떨어질 듯한 이바나 호우세로바의 ‘오렌지’, 일상적인 오브제를 팝 아트적으로 재해석한 밀루셰 로우비츠코바의 ‘케이크’, 야로마르 리박의 ‘낙원 과일’ 등도 예전의 유리 공예 전시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개성적인 작품성으로 눈길을 끈다.

    유리 보석 ‘빛과 신비’ 볼수록 매력

    헤드1, 체코 유리 예술의 선구자인 스타니슬라프 리벤스키와 야로슬로바 브리흐토바의 초기작품(왼쪽). 마리아 테레지아, 전면의 원형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18세기 크리스털 잔(오른쪽).

    ‘모래와 재로 만들어진 보석’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크리스털이 300여년간의 식민지 체험과 현대사의 각종 부침을 겪은 체코에서 화려하게 꽃피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전시장에 배치돼 있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구하면 크리스털 안에 담긴 작품의 역사성과 매력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9월5일까지. 문의 02-582-7795



    문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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