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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호 의혹’ 소문과 진실 사이

故 김선일씨 피랍 이후 행적 과도한 관심 … 혼자 해결하려다 기회 놓치고 문제 키워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김천호 의혹’ 소문과 진실 사이

‘김천호 의혹’ 소문과 진실 사이

가나무역 사장 김천호씨

감사원 조사 등을 받기 위해 6월30일 귀국한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사장은 미국 CIA에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정보원이다’ ‘KOTRA를 비롯한 우리 기관의 정보원이다’ ‘미국은 김선일씨 납치를 알고 있었다’ ‘가나무역은 온누리교회가 이라크 선교 목적으로 세운 회사다’등등….

이러한 의혹은 과연 사실일까.

1962년 경기 가평에서 태어난 김사장은 한양대를 중퇴한 후 열 살 위인 형 비호씨를 따라 중동으로 건너갔다. 91년 걸프전이 터졌을 때 비호씨는 미군에 납품하는 일을 했고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건설물자 납품하는 일 등을 하다 현재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한국산 건강물품 총판을 하고 있다. 김사장은 비호씨 밑에서 사업을 익혔다.

먼저 김사장이 CIA(미 중앙정보국)의 정보원이라는 의혹부터 살펴보자. 김선일씨는 캠프 리브지에 있는 AAFES(Army and Air Force Exchange Service)에 납품하고 돌아오다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 AAFES는 미군 PX를 운영하는 복지단이다. 주한미군에서도 AAFES가 매점과 ‘아리랑 택시’로 불리는 미군 택시 등을 운영하고 있다. AAFES는 지휘부에만 소수의 군인이 있고, 나머지 영업활동은 군무원이 담당한다(www.aafes.com 참조). 가나무역은 바그다드 공장이나 중국 인도 공장에서 제작한 T셔츠나 더플 백, 각종 배지 등을 구입해 이라크 전역에 있는 AAFES 매장에 납품해왔다.



이라크에서 가나무역이 접촉한 쪽은 AAFES의 군무원이었다. 김씨 실종이 확실해졌을 때 김사장이 “우리 직원이 실종됐다. 도와달라”고 한 것도 군무원이었다. 이에 대해 군무원들은 “그 문제는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고 했고, 이런 반응에 김사장은 납품업자로서 비애를 느꼈다고 한다. CIA와 접촉했다면 김사장은 AAFES를 움직이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AAFES가 CIA 방계조직이라는 의혹도 사실과 다르다.

“직원 실종 도와달라” 군무원에게 요청

가나무역은 ‘온누리교회가 선교 목적으로 세운 사업체다’라는 주장도 황당하다. 김사장이 기독교 신자이고 가나무역에 기독교적 열정을 가진 한국인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 직원은 국내 교회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모집했다. 매우 위험한 지역에서 일해야 하고 월급은 200만원 선에 불과했는데도 은행원 출판사 직원 등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이 지원했다.

가나무역 직원인 A씨는 “우리는 돈이 아니라 아직 남이 가지 않은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모험심 때문에 지원했다. 우리는 미개척지에서 일한 경험을 쌓아 장차 선교사가 돼보겠다는 비슷한 꿈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선일씨는 온누리교회와는 인연이 없는 다른 교회에 다니다가 가나무역에 입사한 경우다.

‘김천호 의혹’ 소문과 진실 사이

후세인 얼굴에 X표가 그려진 T셔츠 등 김선일씨 유품.

지난해 8월 바그다드에 있던 중동한국인실업회는 해외선교에 주력하는 온누리교회에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는데 이것이 가나무역과 온누리교회 간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였다. 온누리교회가 김사무엘 목사를 파송해 그해 10월 바그다드에 ‘한인연합교회’를 열자 가나무역 직원들이 출석해 신앙활동을 했다. 얼마 후 김목사는 지병으로 타계하고, 강부호 목사가 파송될 때 8명의 단기선교사가 함께 바그다드로 갔는데 이들 중 4명은 가나무역에 취직했다.

이라크라고 해서 이슬람교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 이전의 선지자를 따르는 원시기독교 ‘곱트교’ 신자도 있고, 현대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을 의식해 현대 기독교를 믿는 사람 중에서 경호원을 주로 선발할 정도였다.

올 4월 초 일단의 이라크인들이 미국 민간인의 시신을 훼손하고 이에 미군이 강력 대응하면서 팔루자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강목사 등은 요르단으로 철수했으나 가나무역 직원들은 바그다드에 남았다. 이 시기 가나무역 직원들은 김선일씨를 중심으로 이라크인인 이크람 목사가 이끄는 바그다드 장로교회에 모여 예배했다.

‘김천호 의혹’ 소문과 진실 사이

6월28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선일씨 유해.

김씨가 피살된 후 강목사는 김씨 부친을 만나 위로했다. 그러자 부친은 “우리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믿었느냐. 그렇다면 나도 교회에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한다. 김씨 매형도 부산 모교회 전도사이다. 이런 연유로 김씨 가족은 온누리교회에 장례를 의뢰해 기독교장이 치러졌고, 온누리교회는 신자인 이은경 변호사를 김씨 가족 대리인으로 내세워주었다. 그런데 이것이 부풀려져 ‘가나무역은 온누리교회가 세운 회사다’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라크 소문 모른 대사관 이해 안 돼

한국에 돌아온 김씨 유품 중에는 후세인 얼굴에 X표가 그려진 T셔츠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이렇게 위험한 T셔츠를 왜 선일씨가 갖고 있었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미군이 승리한 직후 바그다드에서는 종적을 감춘 독재자 후세인을 저주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때 T셔츠 제작 공장을 갖고 있던 가나무역은 재빨리 이 T셔츠를 만들어 AAFES에 납품하고 일부는 바그다드 시내에 내다팔아 수입을 올렸다. 선일씨는 그중 한 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김사장이 우리 기관의 정보원 노릇을 했다는 것도 매우 과장된 주장이다. 국가정보원이나 외교부 등 바그다드에 나가 있는 요원들은 현지를 돌아다니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사장은 오랫동안 중동을 누볐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고, 가나무역에는 이라크인 직원도 적지 않아 바그다드의 밑바닥 정보에 밝았다. 때문에 요원들은 이따금 김사장을 통해 바그다드의 밑바닥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것이 부풀려져 정보원설이 나돈 셈이다.

지난해 11월30일 티크리트에서 두 명의 직원을 잃은 오무전기와 바그다드에 진출해 있는 경호업체 예스컴, 가나무역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오무전기가 두 명의 직원을 잃고 매우 당황해할 때 김사장은 ‘기독교적 애정’으로 두 사람의 유해를 바그다드로 운구해 오게 하고 빈소까지 차려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오무전기는 가나무역과 매우 가까워졌고 바그다드 사무실도 가나무역과 가까운 곳에 냈다.

김씨 피살사건이 일어나자 오무전기의 서해찬 대표는 보답 차원에서 가나무역을 적극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예스컴은 팔루자 사건 때 가나무역과 함께 바그다드에 남은 유이(唯二)한 한국업체였다. 어려운 때 힘든 곳에서 함께 위기를 헤쳐나왔다는 의리 때문에 오무전기와 예스컴은 실의에 빠진 김사장을 돕고 있는 것이다.

김사장은 김씨가 실종된 후 처음 며칠을 기다렸고 이후는 이라크인 변호사를 통해 납치범을 찾다가 김씨 피살이라는 경천동지할 사고 소식을 들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은 “왜 대사관에 김씨 실종을 알리지 않았느냐”며 김사장을 비난한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대사관에 알리면 대사관은 바로 정부에 보고하고 정부는 이를 공개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 같다. 김씨 납치가 공개되면 납치범들이 김씨의 몸값을 올리거나 자이툰부대를 파병하지 말라는 등 정치적인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김사장은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해 혼자 해결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또 이라크 납치사건의 90%는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조용조용 접촉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런데 어찌된 이유인지 납치범들이 김씨를 알 자르카위 조직에 넘기면서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천호 사장을 둘러싼 의혹 중에는 근거 없이 부풀려진 내용이 많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에서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 있다. 현지 대사관을 비롯한 정부기관이 언제 김씨 납치 사실을 알았으며, 납치 사실을 알고 이를 은폐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점 등이다.

현재 외교부의 공식적인 대답은 6월21일 새벽 4시40분 알 자지라 방송이 카타르 한국 대사관에 김선일씨 테이프를 방송하겠다고 알려줌으로써 처음으로 김씨 납치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사장을 비롯한 가나무역 직원과 예스컴 직원 등 바그다드에 있던 일부 한국인들은 훨씬 전에 김씨 납치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입을 통해 바그다드에 출입하는 한국인 사이에 김씨가 납치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따라서 이라크 대사관도 첩보 차원에서라도 김씨 납치를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이 의혹을 분명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443호 (p40~4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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