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50년대만 해도 비누·치약은 사치품

‘애경 50년사’ 통해 본 국내 세제史 … 56년 비누, 66년 트리오, 73년 샴푸 첫 생산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7-08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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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대만 해도 비누·치약은 사치품

    1977년 애경의 중성분말세제 ‘써니’를 판매하던 써니센터 부녀 판매원의 모습.

    25년 전, 처녀들은 샴푸가 아닌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머릿결이 유난히 탐스럽던 한 친구는 아예 빨래판을 이용해 머리카락을 ‘빨았다’. 긴 머리 감기기가 쉽지 않았던 친구 어머니가 색다른 아이디어를 낸 것. 딸아이를 수돗가에 무릎 꿇린 후 빨래판으로 머리카락이 쏟아지게 해, 두 손으로 흰 양말 빨듯 박박 문질러댔다. 그래 봤자 크게 별날 것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에 와선 그 존재가 너무 당연한 생활필수품 중에는 이처럼 20~30년 전에야 겨우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적지 않다. 1955년에는 세숫비누가 없었고, 65년에는 주방세제가 없었으며, 72년에는 샴푸가 없었고, 85년에는 효소세탁세제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최초의 ‘국산’을 만들어낸 회사는 지난 6월 창립 50주년을 맞은 애경산업이었다. 때를 맞춰 출간한 ‘애경 50년사’에는 우리나라 생활용품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50년대만 해도 비누니 세제, 치약 등속은 사치품에 속했다. 1878년 프랑스 선교사 훼릭스 리델 주교에 의해 근대적 비누가 처음 소개됐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양잿물이나 겨비누를 사용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긴급 구호물자인 우지(牛脂)로 전국의 약 200개 영세업체가 조악한 품질의 비누를 생산, 공급했으나 질과 양 모두 턱없이 부족했다.

    50년대만 해도 비누·치약은 사치품

    66년 흰색 비누 시대를 연 ‘우유비누’ 지방설명회에 나선 애경 직원들.

    첫 비누 ‘미향’ 한 달에 100만개나 팔려

    그 가운데 등장한 것이 최초의 국산 미용비누인 ‘미향’이다. 56년 애경유지가 생산한 ‘미향’은 58년 들어서는 월 100만개가 팔려나갈 정도로 대단한 붐을 일으켰다. 당시 인구나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기록이다.



    61년 락키화학(지금의 ‘LG생활건강’)과 평화유지가 세탁비누로 유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62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두 회사의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신설 업체라 원료인 우지를 충분히 확보해놓지 못한 때문이었다. 도매상에 이어 주부들 사이에도 비축 심리가 발동했다. 사재기로 세탁비누 가격이 2배 넘게 폭등했다. 주무 부서인 상공부 장관의 사퇴론이 제기될 정도였다. 이를 ‘비누 파동’이라 부른다.

    50년대만 해도 비누·치약은 사치품

    ‘유아비누’(1975년)

    50년대만 해도 비누·치약은 사치품

    ‘포인트 비누’(81년)

    66년 락키화학이 국내 최초의 합성세제 제품인 ‘하이타이’를 내놓았다. 6개월 후 애경도 ‘크린 엎’을 내놓으면서 세탁세제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판매 초창기 분말세제는 주부들한테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주부들이 세탁비누로 물빨래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업체들은 ‘(세제 푼 물에) 세탁물 한 시간 담그기 운동’ 등을 전개하며 어렵게 시장을 확대해나갔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들어 세탁기가 대중화하기 시작하면서 ‘애경 스파크’ ‘옥시 파워크린’ 등의 효소세제가 일반화하게 됐다. 90년대 들어서는 LG ‘한스푼’, 제일제당 ‘비트’, 애경 ‘퍼펙트’ 등 농축세제 시대가 열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삶는 효과’에 도전하는 고기능성 세제가 주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합성세제 판매가 부진하던 60년대 중반, 애경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주방용 세제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66년 우리나라 최초의 주방세제 ‘트리오’가 등장했다. 락희화학의 ‘에이퐁’이 경쟁자로 나섰다. 분말세제 시장에선 ‘하이타이’가 ‘크린 엎’을 눌렀지만, 주방세제에서는 ‘트리오’가 시장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세제 시장 역시 선점효과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특이한 사실은 ‘트리오’가 발매 초기 5년간 ‘한국기생충박멸협회’ 추천품으로 선정된 것. 야채, 과일 등에 묻은 기생충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요즘은 경제성이나 세척력보다 친환경성, 피부 보호 등을 컨셉트로 한 제품이 많이 팔리고 있다.

    ‘트리오’는 장수 제품이다. 2004년 4월 현재 7억8000만병이 팔려나갔다. 8t 트럭 8만1385대 분량, 제품 용기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5바퀴 돌고도 남을 양이다. 애경 홍보실 송경신 과장은 “가정용 판매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요식업소에서 가장 많이 쓰는 세제는 여전히 트리오”라고 말했다.

    50년대만 해도 비누·치약은 사치품

    주부들의 인터뷰로 구성돼 화제를 모았던 ‘스파크’(90년) 광고

    국내 샴푸 시장선 다국적 기업 열세

    그렇다면 국산 샴푸가 처음 생산된 해는 언제일까. 73년 애경의 ‘로맨스 샴푸’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린스까지 일반화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 들어서는 샴푸와 린스를 하나로 통합한 ‘2 in 1’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비듬샴푸, 트리트먼트 삼푸 등 기능성 제품을 지나, 지금은 이른바 프리미엄 샴푸라 할 수 있는 고기능성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샴푸 시장의 경우 애경, LG생활건강, 태평양 등 국내 업체가 다국적 기업인 P&G, 유니레버 등을 제치고 시장을 선도하는 상황이다.

    치약 시장은 LG의 선전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분야다. LG생활건강 자체가 치약 생산에서 출발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 2위 업체인 애경이 판매한 치약은 160g 기준으로 약 3000만개.

    50년대만 해도 비누·치약은 사치품
    1위인 LG는 6000여만개에 이른다. 그러나 매출액은 두 회사 합쳐 ‘고작’ 1050억원. 팔린 숫자에 비하면 많지 않아 뵈는 액수다.

    애경 측은 “치약 판매는 칫솔 매출까지 선도한다. 예를 들어 ‘2080’ 치약이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다면, 같은 브랜드인 칫솔 또한 아무 광고 없이도 그 10~20% 수준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래 전 알루미늄 튜브였던 치약 용기는 라미네이트 튜브를 거쳐 스탠드 업 튜브로 발전했다. 이 역시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하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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