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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충격’ 테러방지법 부활하나

우리당, 김씨 피살 뒷북 대응 실망 재추진 … “국정원 권한 강화 불 보듯” 시민단체 반발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김선일 충격’ 테러방지법 부활하나

‘김선일 충격’ 테러방지법 부활하나

6월28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회의. 이날 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31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회의실. 국무조정실 기획심의관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제안한 테러방지법안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각 부처 관계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테러 예방과 관련한 제안 법안이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와 국방부 관계자뿐 아니라 정보통신부 관계자까지 나서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때 뒤쪽에 ‘배석하고’ 있던 국정원 관계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는 정통부 관계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대검 관계자는 “국정원 측이 말도 안 되는 법안을 제정하기 위해 국무조정실과 짜고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회의가 끝날 즈음 일어서서 ‘국민의 정부에서 이런 식으로 해서 되겠느냐’고 지적했는데, 다른 부처 관계자들이 회의가 끝난 뒤 ‘좋은 말 해주셨다. 속이 다 후련했다’며 격려해주더라”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나온 각 부처 실무자들의 반응은 이미 테러방지법안의 사산(死産)을 예고한 것이었다. 테러방지법안은 이후 일부 내용의 수정을 거쳐 2001년 11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끝내 법제화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14일 국회 정보위원회가 야당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수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도 있는 심의를 위해 소위원회에 회부했다가 올 5월 16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테러단체에 의해 납치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을 계기로 이 법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이 6월28일 상임중앙위원회를 열어 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상임중앙위에서는 “그동안 테러방지법이 없어 김선일씨 피살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당의 이런 방침은 김씨 피살사건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외교통상부의 무력함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안영근 의원은 “김씨 사건은 외교부가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교섭을 주도했지만 정보라고 해봐야 언론 보도 수준이었고, 완전히 뒷북치기로 일관했다”면서 “결국 테러방지법을 제정해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리당의 이런 방침에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참여연대 장유식 협동사무처장(변호사)은 “테러방지법의 본질은 한마디로 국가정보원 강화법”이라면서 반대 방침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동당 김배곤 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테러방지법 제정 추진은 김씨 피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파병반대 여론을 외면하고 파병을 강행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9·11테러 후 추진, 16대 국회가 폐기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김씨 사건을 계기로 테러방지법 제정이 재추진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면서 “해외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의 경우는 결국 국정원 해외파트가 제대로 구실을 했는지 먼저 검증한 다음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동 폐기된 테러방지법안은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국가정보원장과 각 부처 장관 등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 대(對)테러 대책회의’를 설치하고, 국정원장 산하에 대테러 센터를 신설해 테러 정보 수집과 기획조정 업무를 맡도록 한다는 게 골자였다. 앞서의 경찰 고위관계자는 “국내 테러의 경우 경찰이 ‘몸으로’ 막는 일을 하는데, 국정원은 몸에 흙도 안 묻히고 권한만 강화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선일 충격’ 테러방지법 부활하나

2002년 4월5일 국가인권위원회 김창국 위원장(왼쪽 사진 왼쪽)과 유시춘 당시 상임위원이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가운데)을 방문, 테러방지법안 반대 청원서를 전달하고 있다.

물론 이번 김씨 피살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나름대로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가나무역 직원들은 열렬한 기독교 신자들이어서 현지에서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찍부터 제기돼 현지 대사관도 주시하고 있었고, 국정원 현지 파견관도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에게 여러 차례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실 해외에서 벌어지는 테러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다. 미국과 달리 테러단체에 대해 직접 군사공격을 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역시 미국 등 동맹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구하는 것 외에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국정원의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국정원 해외파트 요원도 외교관과 마찬가지로 중동 등 위험지역을 기피해왔는데, 이 지역 테러단체 등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우리당은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당 안영근 제1정조위원장은 “테러방지법이 있었다고 해도 김씨 사건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안위원장은 이어 시민단체 등의 비판을 의식한 듯 “자동 폐기된 테러방지법은 참고만 할 뿐 원래 법안대로 다시 제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국토안보부 창설 미국 효율성 논란

‘김선일 충격’ 테러방지법 부활하나

경찰 특공대는 테러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간다.

국정원 측은 그동안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88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1982년 제정된 대통령 훈령 47호 ‘국가 대테러 활동 지침’으로는 9·11과 같은 새로운 테러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적 근거 확보 차원에서 법 제정이 절실하다는 것. 국정원 측은 “현재 17개 정부 부처가 각기 하고 있는 대테러 업무를 총괄적으로 기획 조정할 필요가 있는 데다, 2002년 6월 유엔 안보리에 테러방지법 입법 추진을 약속한 만큼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우리당의 테러방지법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 안위원장은 “시한을 정해놓지 않고 충분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핵심은 대테러 센터의 기능과 위상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우리당 일각에서는 대테러 센터를 국무총리가 직접 관장하게 하고, 국정원의 임무는 테러정보 수집과 보고에 국한하게 하는 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정원과 총리가 관장하는 대테러 센터 간 업무 협조가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우처럼 차라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에 테러 담당 조정관을 두어 테러 업무를 조정하도록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다양화 대형화하고 있는 테러에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테러 전문가가 국내에 있는지는 의문이다.

‘김선일 충격’ 테러방지법 부활하나
또 대테러 센터 같은 새로운 기구를 만든다고 해서 효과적인 테러 대책이 될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경우 9·11 이후 테러 관련 부처를 통합해 국토안보부를 창설했지만, 미국 내에서도 효율성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국방연구원 미국연구실 김재두 연구위원은 “미국을 대상으로 한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선 결국 해외 테러단체 움직임 등에 대한 미 중앙정보국(CIA)의 정보가 중요한데, 이에 관한 정보의 질이 떨어진 상황에 국토안보부 같은 공룡 부처가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지적도 미국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는 테러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은 쉬운 일이 아니다. 테러 자체에 예고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 피살사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지적이 많은 상황에서 효과적인 테러 예방 및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임이 틀림없다. 과연 새로운 테러방지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그리고 법안이 과연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443호 (p32~33)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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