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의정 왕따 민노당 ‘10석의 설움’

비교섭 단체 개원 한 달 철저히 배제 … 국회 밖 농성·거리 투쟁 등 현장 정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7-08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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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 왕따 민노당 ‘10석의 설움’

    촛불집회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단 대표(오른쪽)와 권영길 의원.

    “민주노동당 단병호입니다!” “와~ 와~.”

    6월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파병반대 집회. 집회에 참석한 여야 국회의원 20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랐다. 정청래 의원(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이내 머쓱해졌다. 참가자들이 “우~” 하는 야유와 함께 촛불과 전단을 내던진 것. 한나라당 의원들이 소개될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단병호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나서야 야유는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국회 밖에서, 특히 시위나 노동현장에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의원들의 인기와 역량은 대단하다. 보건의료노조 파업 때 현장을 찾은 노회찬 의원은 “서울대병원이 산별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 보건복지위에 부르겠다. 서울대병원을 국정감사에 넣겠다”며 사용자 측에 으름장을 놓았다. 원내정당으로서 민노당의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민노당 의원들은 정작 본업인 의정활동에선 거대 정당들에 따돌림당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 밖에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나 ‘의정활동’에선 주목은커녕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것. 민노당 의원들은 17대 국회 개원 이후 한 달 동안 사실상 ‘왕따’를 당했다. 일부 다선의원들은 “민노당이 국회 분위기를 흐려놓는다”며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국회의 오랜 관행을 깨려는 민노당 의원들의 행동이 못마땅한 것.

    “국회 분위기 흐린다” 비아냥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민노당 왕따’는 개원과 동시에 시작됐다. 민노당 의원들은 본회의가 열리는 시각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본회의장으로 헛걸음하거나 회의가 열린 것조차 모르고 의원회관을 지키고 있기 일쑤였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의석수(20석)를 얻지 못한 ‘작은 정당’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것이다. 원 구성 협상에선 부의장과 상임위원장을 각각 1석씩 달라고 요청했으나, 민노당은 어떻게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단병호 의원의 말이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도 국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은 많이 달랐다. 두 정당의 행태에 실망이 매우 크다. 모든 게 교섭단체 위주로 이뤄진다. 힘을 모아 민생을 위한 정책을 펴자고 호소하더니, 결국은 자기들끼리 자리싸움이나 하면서 국회를 공전시킨다. 상생을 한다며 출범한 국회가 이 정도 수준이라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상임위 배정에서도 민노당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천영세 의원단 대표는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체적으로 배정해 활동을 시작한 상임위 10곳에 민노당 의원이 각각 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노력은 하겠지만 (교섭단체 협상에 따라) 100% 장담할 수 없다”는 어정쩡한 답변을 들었다. 여성운동에 헌신해온 최순영 의원은 다른 상임위 활동을 하며 부가로 참여하는 여성위에서조차 배제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교섭단체 협상에서 여성위의 비교섭단체(민노당 민주당 자민련) 몫 의원 수를 1명으로 제한하려고 한 것.

    심지어 현역의원이 경찰의 제지로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다. 현애자 의원이 6월30일 경찰의 저지로 2시간 동안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 것. 장애인 25명과 함께 법률안을 제출하기 위해 들어가려던 현의원은 경찰에게 국회의원이라고 밝혔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들어가면 불상사가 우려된다”면서 경찰은 출입을 막았다. 현의원 측은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의정 왕따 민노당 ‘10석의 설움’

    현역의원 신분으로 전국금속노동조합 파업 찬반투표에 참여한 단병호 의원.

    국회 사무처조차도 거대 여당과 비교섭단체를 다르게 대우한다. 천영세 의원단 대표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풍자해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화씨 9/11’을 국회 의원동산에서 공개 상영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국회사무처로부터 “전례가 없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전례는 있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얼마 전 개인 팬클럽 회원들을 의원동산으로 불러 영화 ‘송환’을 함께 봤다는 사실에 민노당원들은 노기를 감추지 못한다.

    이처럼 국회에서 뜻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은 민노당 의원들은 최근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거나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가두집회를 벌이는 등 원내 진출 이전처럼 ‘거리 투쟁’에 더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원들 역시 아직까지는 국회보다 ‘현장’이 더 편한 눈치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단병호 의원은 지난달 전국금속노동조합 서울남부지회 조합원 신분으로 금속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에 참여했다. 현역의원이 ‘파업 찬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뤄지는 노조의 찬반투표에 참여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단의원에게 금속노조는 ‘친정’이나 다름없다. 노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단의원의 표정은 국회에서와 달리 환하게 변했다.

    “금속연맹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왔다.”(단의원)

    “위원장님한테 누가 투표하러 오라고 했는데요.”(한 조합원)

    “내가 가라고 했다.”(단의원)

    “국회에 이발소 목욕탕도 있다면서요?”(또 다른 조합원)

    “없던데….”(단의원)

    친정식구들에게 단의원은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잠시 국회에 파견 나간 조합원일 따름이었다. 국회에 호기심을 나타낸 조합원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던 단의원 역시 ‘위원장’이라는 호칭이 ‘의원’보다 훨씬 듣기 좋다고 했다.

    단의원은 보건의료노조 파업 때는 현장에 찾아가 직접 투쟁을 독려하기도 했다. 보건노조는 단의원에게 “파업과 관련해 직권중재 조치가 내려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단의원은 노조의 조언자 노릇을 하며 힘껏 도왔다. 단의원을 비롯한 민노당 의원들이 아직까지 국회보다 현장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지율 꾸준히 상승 현재 20%대

    가장 큰 문제는 의원단과 당의 의사소통이 더디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의원단과 최고의원회의 엇박자는 갈등으로까지 비쳐진다.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당에서 엉뚱한 성명이 나와 의원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민노당 대변인실은 최근 “언론학회 보고서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방송을 정쟁에 이용하고 있다”는 의원단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 천영세 의원단 대표는 당에서 탄핵방송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당에선 의원들과 시기각각 조율이 어려워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게 불만이다.

    이해찬 총리 임명동의를 놓고는 의원들과 최고의원들의 주장이 엇갈렸다. 절반이 넘는 의원들은 “명분이 약하다”며 찬성 의사를 내비쳤으나 당론을 결정하는 최고위원회가 반대하기로 결정해 의원들은 결국 당론을 따랐다. 의원들은 최고의원회의 결정을 따르도록 규정돼 있다. 앞으로도 곳곳에서 ‘당의 원칙론’과 ‘의원들의 현실론’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몸통 따로, 머리 따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민노당이 ‘당직-공직 분리’라는 유례없는 정당 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들을 당직에서 배제하는 초유의 실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민노당 한 관계자는 “당과 의원들의 의사소통이 너무나 느리다. 시시각각 대응하기가 불가능하다. 세 박자 느린 당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당직-공직 분리가 제대로 된 선택이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특히 민중민주(PD)계열-민족해방(NL)계열의 세력 다툼은 당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당내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당의 엇박자가 PD-NL의 정치적 견해차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혜경 대표는 “의원단과 당이 쌍두마차를 이뤄서 함께 잘 나갈 수 있는 모습이 돼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두 말(馬)이 제가끔 달려나가는 모습이다.

    민노당이 원내3당으로 제도권 정치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됐다. 원 구성을 비롯해 총리 후보 청문회,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등 국회 현안에서 민노당은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10석의 의석으로 국회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상임위에 1명씩 배치된 의원들도 민노당의 주장을 관철하기엔 역부족이다. 민노당을 출입하는 기자들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언론의 관심도 조금씩 멀어진다.

    그러나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게다가 민노당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해 현재 20%대를 넘나들고 있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위협하는 수치다. 여론조사에선 20, 30대 우리당 지지세력의 일부가 민노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있는 것도 감지된다. 현실정치에서 한계를 절감하고 있으면서도 지지기반은 더욱 탄탄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회찬 의원의 말이다.

    “국회에 이제 막 교두보를 마련했는데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17대 국회는 길게 봐서 걸음마 단계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여겼으면 한다. 길게 잡으면 17대 임기 4년이 원내정당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짧게 보더라도 올 정기국회는 지나야 한다. 어떤 전략을 세워야 17대 국회에서 10석으로 100석 못지않은 몫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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