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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인스턴트 영웅시대'

“쪽팔린 사람, 걱정과 함께 외출”

조영남이 본 인기인 속성 … “알아볼 땐 귀찮고 피곤, 몰라보면 인기 추락 전전긍긍”

  • 조영남 / 가수·화가

“쪽팔린 사람, 걱정과 함께 외출”

“쪽팔린 사람, 걱정과 함께 외출”
나한테는 습관이 하나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만큼 아주 오래되었다. 가령 집을 나서 큰길 쪽으로 택시를 잡으러 갈 때나, 압구정동이며 명동 같은 번화한 곳을 어슬렁거릴 때, 동대문시장 혹은 유명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때는 반드시 안경을 벗은 채 맨얼굴로 다닌다는 것이다. 대개는 큰 차양이 달린 운동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닌다.

이쯤 되면 독자들도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그건 남들이 나를 ‘가수 조영남’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선수를 치기 위해서다. ‘가수 조영남’ 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아하, 크고 둥그런 검정 뿔테 안경 낀 사람’을 떠올린다. 하여 얼굴에서 안경을 없애고 나면 나를 몰라볼 것이라는 계산에 따라 내 깐에는 ‘짱구’를 굴린 것이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TV에 나오는 그대로 안경을 쓰고 다니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는 또 그들에게 모종의 보답을 일일이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시라. 길 가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알아봤다는 신호로 정겹게 미소를 보내주는데, 그걸 못 본 체 외면하고 지나칠 순 없잖은가.

이들을 상대로 일일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도 건네야 하고, 약간의 용기를 내 다가와 손 내미는 사람한테는 악수를 받아줘야 한다면 산책이며 쇼핑이며 엉망이 돼버리기 쉽다. 거기다가 아무 종이쪽지나 명함 같은 데 사인까지 해달라고 성화를 대는 날에는 대책 없이 난감한 상황에 허덕이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안경을 벗고 운동모자를 눌러썼다고 해서 실제로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내 얼굴을 가리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되지만, 안경을 벗고 모자를 눌러써도 용케도 나를 알아본다는 점이다.



택시기사 중에는 “청담동으로 가주세요” 하는 내 목소리만 듣고서도 “아, 조선생님이시군요” 이렇게 귀신처럼 알아맞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듯 얼굴이 팔린 사람, 젊은이들 표현대로 ‘쪽’이 팔린 사람들은 바로 얼굴이 팔리고 쪽이 팔린 이유로 인해 무척 성가시고 귀찮고 피곤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이건 본질적으로 행복한 비명에 속한다. 기쁨에 겨운 푸념이다. 생각해보시라. 내가 뿔테 안경을 끼고 늠름하게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 채 그냥 지나친다면 내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 그건 바로 끔찍한 재앙이다.

가령 내가 차를 몰고 가다 교통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렸다. 내가 경찰 아저씨한테 “어이, 좀 봐줘. 나 ‘화개장터’ 부른 조영남이야” 했는데, 바로 “조영남이 누구예요?” 하고 되묻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행동 실수 땐 한 방에 인간성 나쁜 연예인 낙인”

결국 이래도 걱정이고, 저래도 걱정이다. 얼굴이 너무 팔려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봐도 걱정이고, 어느덧 인기가 떨어져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몰라볼까 봐도 참 걱정이다. 이 걱정 저 걱정, 불안과 초조로 전전긍긍하는 것이 이른바 인기인의 일반 속성이다.

천만 다행으로 내 경우 남들이 몰라보는 걸 걱정하는 단계는 넘긴 듯하다. 그러므로 남들이 날 알아보고 시도 때도 없이 파리 떼처럼 달라붙는 걸 기분 나빠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 나라 사람들은 너나없이 사소한 일로 모든 것을 즉석 판단해버리는 조급증을 보인다. 아차 실수하면 곧바로 인간성 나쁜 연예인으로 분류된다.

나는 도쿄나 뉴욕 여행을 좋아한다. 거길 가면 상대적으로 행동반경이 커지고 자유스러워진다. 아무 데나 기웃거릴 수 있고, 피자를 손에 들고 먹으면서 길거리를 다닐 수도 있으며, 아무 데서나 털썩 주저앉아 두리번거려도 무방하다.

자, 이런 괴상망측한 팔자에 대한 나의 대처 방법을 공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겠다. 내 앞에는 세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째, 마이클 잭슨처럼 왕창 유명인으로 살 것이냐. 거기에 따르는 사생활의 불편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둘째, 지금의 나처럼 보통의 유명인으로 살 것이냐.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편하다. 셋째, 아예 무명인으로 살 것이냐. 어느 쪽이 나의 삶을 최고로 윤택하게 할까.

나는 일찍이 두 번째를 택했다. 이른바 중용의 길, 적당하게 유명 인지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이 방면에서 꽤 성공한 것으로 자평하며 살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 있으면 하시라도 내게 알려주기 바란다. 뭘 어쩌자고 여기까지 써왔는지. 아, 쪽팔린다.



주간동아 443호 (p22~22)

조영남 / 가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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