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0

2004.06.24

욕먹는 굼벵이 이젠 ‘벌타’ 채찍

  • 문승진/ 굿데이신문 골프전문기자 sjmoon@hot.co.kr

    입력2004-06-17 18: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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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장 플레이어여, 필드를 떠나라!’ 골프는 자신과 치르는 싸움이다.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고 혼자서 필드에 나가면 ‘골프의 묘미’가 떨어진다. 동반자와 적절한 선의의 경쟁이 있어야 골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골프는 개인 플레이 못지않게 동반자의 구성이 라운드의 기분을 결정짓는다. 골퍼들 가운데 동반 라운드를 하기 싫은 대표적 기피 인물 1호가 바로 ‘늑장 플레이어’다. 늑장을 부린다는 비판에 대해 “내 돈 내고 내가 천천히 즐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골프를 즐길 자격이 없다. 자기만 잘 치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 행동은 필드에서 추방돼야 할 대상이다 얼마 전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라운드 분위기를 망치는 가장 큰 요인은?’에 대해 물은 결과 응답자 485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3명(48%)이 늑장 플레이를 1순위로 꼽았다.

    또한 늑장 플레이는 자신의 조뿐만 아니라 다음 조의 플레이어들도 짜증나게 한다. 다른 사람의 리듬과 페이스를 깨뜨리기 때문. 다른 사람이 기다리건 말건 끝없이 연습 스윙을 하는 골퍼, 불필요한 행동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는 골퍼, 자신의 공 하나를 찾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골퍼. 이러한 골퍼들과 라운드한다면 그날의 스코어와 상관없이 불쾌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각국의 프로골프협회들은 최근 프로골퍼들을 대상으로 늑장 플레이어에 대해 ‘철퇴’를 가하고 있다. 특히 PGA(미국프로골프협회)투어에선 두 차례 늑장 플레이를 한 골퍼에게 1벌타와 5000달러의 벌금을, 세 차례 적발시에는 2벌타와 1만 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5월 열린 미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사이베이스클래식 최종라운드에서 신인 스테이시 프라마나수드(미국)는 악명 높은 16번홀(파3)에서 천금 같은 버디를 잡았지만 ‘시간 초과’로 보기가 됐다. 생애 첫 우승을 노리던 양영아(26)도 17번홀(파4)에서 ‘늑장 플레이’로 보기가 트리플 보기로 변했다. 이로 인해 양영아는 단독 5위 기회를 놓치고 공동 7위로 내려앉으며 4000만원가량의 상금도 손해 봤다.

    늑장 플레이에 대한 한국선수들의 벌타는 LPGA에서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다. 박세리가 1999년 칙필A채리티챔피언십 최종일 15번홀 그린에서, 김미현은 그 해 듀모리에 클래식 2라운드 17번홀에서, 한희원은 2001년 하와이언오픈 2라운드 11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 늑장 플레이로 2벌타를 받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도 늑장 플레이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 협회는 제4회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 1, 2라운드에서 두 명의 프로선수에게 늑장 플레이로 1벌타를 부과했다. KLPGA가 한 대회에서 2명의 선수에게 벌타를 부과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늑장 플레이를 뿌리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것. KLPGA 김일곤 사무국장은 “한국선수들이 외국 무대에 나가 ‘지연 플레이’ 때문에 벌타를 부과받는 사례가 많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 무대에서부터 빠른 경기를 몸에 익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골프를 치면서 한 샷 한 샷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개인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다른 골퍼를 배려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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