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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넘어⑥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10대 어린 엄마 순간의 실수 평생 굴레 … 학교에선 퇴학 ‘교육권 박탈’로 제자리 찾기 막아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서울영아일시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1. “우리 아이 입양되기 전,

내 손으로 옷 한번 사주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올해 2월 엄마가 된 18살 소녀, 정유경(가명)입니다. 지난해 5월 친구와 우연히 놀러 간 30대 아저씨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갖게 되었어요. 어머니는 내가 3살 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3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이후 사촌언니 집에 얹혀 살았지만, 눈칫밥 먹기 불편해 집을 나왔죠. 친구 집에 얹혀 살다가 나쁜 아저씨를 만난 거예요.

나를 임신시킨 아저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섰어요. 아이를 지울까 생각해봤지만, 수술할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결국 아이를 낳아 입양을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직 어린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불쌍하잖아요. 나를 쏙 빼닮은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기 전 예쁜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PC방 아르바이트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론 어림도 없더라고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택한 것이 ‘원조교제’였어요. 하지만 세상에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20대 오빠는 날 여관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뒤 도망가버렸어요. 우리 아이 옷 살 돈도 주지 않고 말이에요. 서울 수서경찰서 형사 아저씨들이 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잡아줬지만, 제 상처는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나요. 우리 아이는 정말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2. “아이, 제가 꼭 키울 거예요.”

나는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자, 예쁜 아들의 엄마인 서진영(가명)입니다. 올 봄에 3.2kg의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복학했어요. 어떻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냐고요? 담임 선생님께서 내 사정을 눈감아주시고, 70일 병가처리해주셨거든요. 제 임신 사실은 학교에서 절대 비밀이에요. 사실 임신은 병가처리 사안이 아닙니다. 주위 다른 친구들은 임신 사실이 알려질 경우 퇴학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저도 곧 학교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입양 시설에 보낸 내 아이를 직접 기르기로 결심했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시설은 아이를 낳고 몸푸는 동안에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 빨리 옮겨갈 곳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들은 ‘세움터’에 돈을 벌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모자의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학교를 다니는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은 없어요. ‘학교냐, 아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기도 해요. 아빠 없이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요? 내 불행이 아이에게도 이어질까 봐 걱정이죠.

남자요? 생각만 해도 싫어요. 세상 남자 누구도 믿을 수 없어요. 나보다 한 살 많은 아이 아빠는 지금 다른 여자친구와 사귀며 잘살고 있어요. 제 손에 반지 보이시죠? 혼전순결 서약반지예요. 앞으론 결혼하기 전에 결코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거든요. 저, 매일 밤마다 울었지만 이젠 아이 엄마로 씩씩하게 살아갈 거예요.

올해 아이를 낳은 두 10대 엄마의 가슴 아픈 고백이다. ‘엄마’라고 불리기엔 너무도 앳된 얼굴을 간직한 두 소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혼모’다.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결혼하지 않은 엄마를 뜻하는 ‘미혼모’와 객관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뜻의 ‘비혼모’라는 용어도 이들에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결혼을 논하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의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미성년 미혼모를 일컫는 ‘어린 엄마’라는 말이 그나마 이들에게 가장 어울릴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전국 10개 미혼모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는 미혼모는 400명에 이르며, 한 해 평균 5000명의 미혼모가 생기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들 가운데에 10대의 어린 엄마가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한창 발랄해야 할 청소년 시기에 엄마가 돼버린 이들은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제도적 한계’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한 줄기 희망을 바라보며, 힘든 나날을 버텨가는 어린 엄마가 당당히 홀로 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의 비혼모 보호시설 ‘애란원’의 전경.

6월10일 오후 방문한 비혼모 보호시설 ‘애란원’(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엷은 빛 벽과 아기자기한 그림들은 이곳이 ‘따뜻한 엄마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듯했다. 출산 예정일을 눈앞에 둔 5~6명의 어린 엄마들은 원활한 출산을 위해 요가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소녀의 얼굴과 이들의 부른 배는 언뜻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인 기자가 운동방에 들어서자, 이들의 눈에는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그것은 세상의 편견에 의해 다치고 싶지 않다는 저항의 표시이기도 했다.

애란원의 한상순 원장은 “미성년의 비혼모는 ‘엄마가 됐다’는 이유로 나이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15살짜리 어린 엄마는 25살짜리 비혼모와 다른 사회와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엄마이기 이전에, 아직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성장해야 할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10대의 어린 엄마가 겪는 가장 큰 차별은 ‘교육권의 박탈’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의 임신 사실이 알려질 경우 ‘다른, 학생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학교의 명예를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퇴학을 권고하고 있다. 광주에서 비혼모 보호시설 ‘우리집’을 운영하는 이선희 원장은 “학생의 대학 진학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어린 엄마를 퇴학시키는 경우가 100%에 가깝다. 그나마 출석 일수에 구애받지 않는 상업계 고등학교가 어린 엄마에게 조금 관대한 형편”이라며 “어린 엄마에게 가혹한 학교의 규정이 이들을 제자리로 돌아오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학교에서 밀려난 어린 엄마는 자신의 나이에 누려야 할 학습권도, 소중한 교우관계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미혼부도 책임 법제화 시급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광주의 비혼모 보호시설 ‘우리집’에서 10대 어린 엄마들이 촛불의식을 하고 있다.

실제로 충남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이미연양(가명·20)은 2년 전 임신했다는 이유로 복학을 하지 못했다. 평소 성실한 모범생이었던 이양은 남자친구와 깨가 쏟아지는 연애로 교내에서 유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 그러나 학교는 평소 모범생이었고, 공부할 의욕이 넘쳤던 이양의 복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학교를 자퇴한 이양은 1년 후 검정고시를 치르고, 올해 대학에 합격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입학이 1년 늦어진 셈이다. 이양은 이를 악물고 제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임신을 이유로 학교로부터 거부당한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린 엄마의 학습권이 중요한 이유는 학력이 바로 이들의 자립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제때 학업을 이수하지 못한 어린 엄마는, 사회로 진입하면서 또 한 번의 장벽을 경험하고 이것은 자아실현의 포기로 이어진다.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린 엄마를 위한 ‘직업교육’이 필수적인 셈이다.

임신한 비혼모가 출산하기까지 도와주는 기능을 해온 애란원에서는 최근 ‘비혼모 종합관리지원 시스템’을 갖춰 이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아이를 직접 키우며 일을 하겠다는 비혼모는 ‘모자의 집’에서, 아이를 입양시킨 10대 어린 엄마들은 ‘세움터’에서 머물게 배려하고 있는 것. 하지만 수요에 비해 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비혼모의 수는 너무나 적다. 더욱이 10대 어린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형편이다.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애란원은 해마다 여름 해외 입양아 가족을 초청해 이곳에 기거하는 비혼모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실시하는 ‘비혼모 복지제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10대 어린 엄마들이 급격히 늘어나자, 이들 국가는 아예 10대 어린 엄마들을 위한 탁아소를 건립하고 있다. 이들도 청소년으로서의 권리를 최대한 누릴 수 있게 배려하고 있는 것. ‘탁아소를 학교 안에 세울 것인가, 학교 밖에 세울 것인가’가 학교 관계자들의 고민일 정도다.

10대 어린 엄마가 간직한 또 다른 상처는, 상대 남성에겐 흠집 하나 남기지 않으면서 여성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현실이다. “왜 여자만 나쁜 사람으로 몰려야 하냐”는 한 어린 엄마의 반문에 가슴이 시려온다. 특히 “10대 어린 엄마의 경우 상대 남성의 강요나 설득에 의해 성관계를 맺고 임신에 이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무책임하게 성관계를 맺고 10대 여성의 임신이 확인됐을 때 상대 남성은 대개 임신중절을 종용하거나 연락을 끊어버린다는 것. 심한 경우에는 남성의 부모가 “요즘 여자애들을 어떻게 믿냐”며 해당 여성의 도덕성을 힐난하기도 한다.

비혼모 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가 필수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미 미국, 캐나다의 여러 주에서 미혼부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에게 일정한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는 남성은 감옥에 가야 할 정도로 엄격하게 남성의 책임을 묻는다.

한상순 원장은 “10대가 임신했을 때 임신중절을 강요하는 것은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다. 임신중절로 인해 여성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trauma·상처)가 감당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이 성관계를 하기 전 ‘생명 탄생’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비혼모 5명으로 구성된 구슬공예 업체의 공방에서 구슬을 꿰어 장신구를 만드는 구성원들. 10대 비혼모들이 홀로서기 위해 직업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가 2002년에 발표한 ‘미혼모 보호시설 종사자들을 통해본 10대 미혼모의 교육 요구도와 시설 운영에 관한 연구’는 특히 “남자 청소년에 대한 적극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0대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피임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청소년의 성적 문란을 조장하기보다 오히려 성적 활동을 연기하고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어린 엄마들의 경우 자신이 임신한 줄도 모르고 임신 5, 6개월까지 이르는 게 다반사다. 현실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교과서식 성교육’은 10대 청소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셈이다.

10대 어린 엄마들이 모두 ‘결손 가정’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10대의 이성교제가 활발해지고, 성문화가 개방되면서 일반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의 이선희 원장은 “비혼모는 단순히 ‘가출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며 “순간의 실수가 이들에게 평생의 굴레가 되지 않게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가야 용서해, 너 보내고 어떻게 살까”
아이를 키울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어린 엄마의 대부분은 아이와 생이별을 결심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이들의 ‘모성애’는 더욱 강렬한 법이다. 아이를 낳고, 입양을 보내기까지 어린 엄마는 눈물 어린 고통을 감내한다. 어쩌면 아이를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이 평생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아들아. 비록 나는 너를 떠나보내지만,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너는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너를 기억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라. 아가야!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너를 키우고 싶지만, 너무나 키우고 싶지만, 너를 키우게 되면 외할머니가 죽겠다고 하시니, 난 너를 포기할 수밖에 없구나. 용서하거라, 이런 나를 이해해주기 바란다.”(애란원의 소식지, ‘사랑을 심는 사람들’에 실린 19살 어린 엄마의 편지)

하지만 ‘마냥 울고 있지 않겠다’는 10대 어린 엄마의 다짐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한다. 애란원에서 만난 서진영양은 “입양시설에 맡겼던 아이를 데려오겠다. 아이에게 충분한 물질적 지원은 해줄 수 없지만, 그보다 큰 사랑을 주겠다”며 눈을 반짝인다. 기자의 큰 인형 선물에 “우리 아이가 좋아하겠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 어린 엄마는 혼자서 아이를 키워나가야 할 현실이 얼마나 가혹할지 예상하고 있을까. 적어도 생명의 고귀함을 알고, 책임을 질 줄 아는 당당한 10대 어린 엄마가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주간동아 2004.06.24 440호 (p52~54)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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