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3

2003.05.08

역사의 숨결 깃든 은은한 꽃마을

  • 강은옥 dreamloco@hanmail.net

    입력2003-04-30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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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숨결 깃든 은은한 꽃마을

    표충사 전경(큰 사진)과 표충사 계단 위에 있는 형상물.

    기관사는 직업적 특성상 계절감을 가장 빨리 느낀다. 운전을 하면서 바라보는 산과 강, 나무와 꽃은 계절을 ‘체험’하게 해준다. 늘 자연 속에서 일한다는 점에서는 사방이 꽉 막힌 사무실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도심 속의 직장인보다 행복하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에는 경부선 새마을호를 운행하면서 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운행중에 눈에 띄는 지역을 한 군데 발견했다. 다름 아닌 경남 양산시 원동. 이곳은 경부선 구간 중에서 꽃이 가장 먼저 피는 지역이다. 위치로만 따지자면 더 남쪽의 따뜻한 지역인 부산에서 먼저 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특별히 일조량이 많은 지역도 아니고, 아무리 초보적인 과학지식을 총동원해봐도 이런 현상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원동역은 낙동강을 마주보고 있는데 역사 바로 앞에 강이 흐르는 곳도 그리 흔치는 않다. 이런 묘한 기대감 때문에 원동을 여행지로 잡았다.

    원동은 말 그대로 숨어 있는 진주다. 사실 원동은 웬만큼 여행을 해본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곳. 그만큼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천연의 관광지다. 번잡함을 피해 조용하게 산책하며 자연을 느끼는 여행을 원한다면 원동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또 이곳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들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서울에서 원동으로 가려면 우선 동대구까지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간 뒤 다시 부산행 무궁화호로 갈아타야 한다. 동대구-부산행 열차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애초 서울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갈아타지 않아도 되지만 하루 한 차례(오후 4시15분)밖에 운행하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다. 여타 지방에서 갈 때도 동대구까지 온 뒤 다시 부산행 기차를 타거나, 아니면 반대로 부산에서 동대구로 가는 기차를 타면 30분 만에 원동역에 도착할 수 있다.

    원동역에서 내리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상쾌한 공기는 물론이고 역사 앞으로 펼쳐져 있는 강과 산,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진 전경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하기 때문.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은 단연 강과 계곡. 낙동강은 물론이고 원동지역을 감싸안는 원동천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원동천은 취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주변에 폐수를 방류하는 공장도 없어 맑고 깨끗한 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짙고 푸른 강물이 산과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신흥사와 표충사. 조선시대에 세워진 신흥사는 건립된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단청의 색채와 문양이 훌륭해 현재 보물 제1120호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채로운 절집 지붕. 보통 절의 지붕은 추녀 끝이 길게 들려 있어 화려하면서 장중한 분위기를 내는데, 이곳의 지붕은 추녀 끝이 들리지 않고 옆에서 보면 정삼각형의 맞배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어 무거우면서도 엄숙하고, 때로는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준다. 절 앞 계단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노라면 바람소리, 새소리만이 주위에 울려 퍼져 명상에 잠길 수 있다.



    표충사 역시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절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표충사 안에는 역사유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조개껍데기와 나뭇잎 등에 경전을 기록한 패엽경을 비롯해 표충사 삼층석탑을 해체할 때 나온 사리며 소형 불상, 그리고 사명대사가 입었다는 법의 등이 전시돼 있다. 15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전시관이지만 표충사의 장중한 역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표충사를 방문한다면 절 내를 돌아다니는 토끼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스님 말씀에 따르면 어느 때부터인가 산에서 토끼 두 마리가 내려왔는데 사람들이 해를 입히지 않자 자주 절을 ‘방문’한다는 것.

    역사의 숨결 깃든 은은한 꽃마을

    규모는 작지만 고즈넉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신흥사(위). 낙동강 바로 옆에 위치한 원동역.

    계곡의 진정한 면모를 보고 싶다면 천태산을 오르면 된다. 이 산에는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원동천이 굽이친다. 천태산 계곡의 요지에는 송골산방이라는 유명한 황토 민속음식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옻닭을 시켜 먹으며 원동천 계곡을 내려다보면 말 그대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주인 부부는 모두 교사 출신으로 명예퇴직 후 손수 2년간 집을 지었다고 한다. 친철함에서 그들 부부의 맑고 깨끗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내친김에 먹거리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원동에는 딱히 내세울 만한 토속음식은 없다. 닭이나 오리, 흑염소가 주요 먹거리인데 대부분 깨끗한 환경에서 직접 기른 것들이고 함께 내오는 채소 역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 음식이다. 이 지역 아낙들의 음식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아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후회하는 일은 없을 터.

    원동에서 밀양 쪽으로 올라오면 배내골이 있다. 이곳은 영남알프스(신불산∼영취산, 천황산∼재약산)라고 불리는 지역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자연휴양림, 명사관광농원, 송림관광농원, 파래소 폭포, 가야진사 등 볼거리가 매우 풍부하다. 원동지역과 배내골까지 모두 관광하려면 이틀 정도가 걸린다. 특히 이 지역은 여름에는 냉기가 돌 정도로 시원하다.

    산수 어우러진 한 폭 동양화

    또 이곳에는 미술관도 있어 잠시 들러 예술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작가 16명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으며 앞으로 퍼포먼스, 도자기축제, 동양화 및 서양화 초대전과 국악, 무용 등의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동여행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교통편이 그리 발달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택시는 아예 없고 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다. 일반버스와 마을버스가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하루 6회 정도 원동에서 배내골까지 운행한다. 좀더 편안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승용차로 이동하는 가이드를 이용하면 된다. 택시도 없는 관광지에 웬 가이드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원동역 가까운 곳에 쉬리모텔이라는 곳이 있는데 김현석씨(30)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조용한 곳에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인터넷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원동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저렴한 비용에 가이드도 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서 ‘재충전’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행이 삭막한 도시생활을 지탱해주기 위한 ‘충전제’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에는 좀 못마땅하다.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빨리빨리’, ‘좀더 완벽하게’를 외치며 숨가쁘게 살아가는 내면의 자아를 지우고 넉넉하고 풍성한 자아를 키워야 한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내면의 꽃을 피워야 하지 않을까. 전국에서 가장 꽃이 빨리 피는 원동, 그곳에서 내 마음의 꽃도 피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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