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2003.01.02

동유럽 EU 가입 ‘기대 반 걱정 반’

폴란드·헝가리 등 10개국 7500만명 편입 … 서유럽 사람들 냉담 속 유럽 통일 큰 진전

  • 안윤기/ 슈투트가르트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com

    입력2002-12-27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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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 EU 가입 ‘기대 반 걱정 반’

    12월13일 코펜하겐에서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동유럽 10개 국가의 EU 가입이 확정되었다. 윈스턴 처칠(위 오른쪽)의 꿈이었던 ‘유럽 합중국’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12월1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몰타, 키프로스 등 동유럽 10개국의 EU 가입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날 결정에 따라 이들 10개국은 2004년 5월1일부터 EU 회원국이 된다. 이들 나라 중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인 몰타와 키프로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구권’ 국가들이다.

    이날의 결정은 사뭇 큰 의의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서 유럽의 분열은 로마제국 시절에 이미 시작됐다. 이후 내내 대립해오다가 50여년 전 얄타와 포츠담 회담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굳게 닫힌 철의 장막 안에서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위성국가와 공산정권이라는 공통분모로 뭉쳐 있었다. 이러한 두 세계가 EU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었으니, 이날은 독일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의 말처럼 ‘역사적인 날’이요, 냉전 종식을 최종적으로 공인한 날인 셈이다.

    ‘낯선 이웃의 접근’ 본능적 경계

    이날은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의 꿈 ‘유럽 합중국’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1946년 폐허의 한복판에 서서 “공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 유럽이 언젠가 하나가 된다면 그 어떤 장애물도 우리 4억 인류의 행복과 복지, 번영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명연설로 오늘날 EU의 정신적 초석을 놓았다.

    새로이 10개국 7500만명의 식구를 맞아들이게 된 EU는 이제 총 25개국 4억5000만명을 거느린 거인으로 우뚝 섰다. 이는 미국을 능가하는 규모다. 장차 단일헌법과 단일통화, 그리고 자체 방위군을 보유함으로써 국제경제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정치 영역에서도 거인에 합당한 위상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서유럽 사람들의 시선은 의외로 냉담하다. 환호와 기쁨 대신 왠지 모를 불안감과 거부감이 느껴진다. 룩셈부르크의 장 클로드 정커 총리는 “국민들 사이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전 남유럽, 북유럽 국가들의 EU 가입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단절된 채 살아온 ‘낯선 이웃의 접근’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 탓이다.

    특히 국경지대에 사는 구동독 주민들이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에 대해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동쪽 나라에서 건너온 수많은 불법체류자, 난민 등으로 인한 골치 아픈 문제를 그 누구보다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 자동차 도난, 매춘 등의 사회적 문제도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유럽 EU 가입 ‘기대 반 걱정 반’

    독일은 동유럽에서 밀려드는 난민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보스니아 난민들(왼쪽)과 독일의 수용소에 머물고 있는 동유럽 난민(가운데). 동유럽에 투자해 큰 성과를 거둔 폴크스바겐(오른쪽).

    사실 이러한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기우만은 아니다. 유럽 경찰(Europol)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접한 EU 국경지대의 범죄율이 급격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는 마약 거래 중개지로 분류된 상태다. 이 나라들은 러시아로부터 유입되어 오는 막대한 범죄자금의 세탁 장소로도 지목되어 왔다.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의 환전소, 카지노 등은 이미 러시아 마피아에 의해 장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슬로바키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은 인신매매단이 활개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이들 국가의 EU 가입으로 섹스 산업은 더욱 활성화돼 매년 20만명 가량의 여자와 아이들이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파리 등지로 팔려나갈 것으로 유럽 경찰은 예상하고 있다.

    獨, “유럽 동쪽 확대 경제 새 활기”

    새로이 EU에 가입하는 10개국 역시 모두 환희에 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항상 EU의 중심국가인 독일의 팽창을 경계해왔다. 또 만일 서방의 자본이 기존의 산업을 완전히 장악하고 토지마저 모두 사들인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식민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는 모스크바가 아닌 브뤼셀 유럽연합 정부의 꼭두각시가 되는 게 아닐까 등등의 불안감이 동유럽 국가 국민들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폴란드의 경우 전체 노동인구의 20% 가량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들 중 국제 경쟁력이 있는 가구는 5%도 채 안 된다. 폴란드 농촌의 붕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이 기존의 EU 회원국과 새로운 회원국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독일 지멘스 그룹의 총수인 하인리히 피어러는 “유럽이 동쪽으로 확대됨으로써 독일 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기존의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독일이 이들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에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독일은 이미 10여년 전 동독의 흡수통일이라는 역사적 격변을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유럽 세계의 접근에 대해서도 그리 큰 두려움이 없다. 독일은 또한 동유럽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기도 하다. 독일은 동유럽 국가들이 EU 전체와 맺는 교역 중 40%를 차지하는 나라다. 또 독일 전체의 무역 규모로 보면 동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이 10%를 차지하는데, 이는 독일 교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실 독일의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동구권 진출에 앞장서 왔다. 지멘스, 폴크스바겐, 도이체 텔레콤 등은 10년 전 철의 장막이 걷히자마자 동구권에 200억 유로 이상의 자본을 투자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지에서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충원한 덕분에 동구권 진출 기업들은 지금껏 큰 성공을 거두어왔다. 폴크스바겐이 1991년 체코의 스코다 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동서 유럽의 만남이 양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 이상적 사례로 손꼽힌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자동차 회사이면서도 낙후성을 면치 못하던 스코다 자동차는 폴크스바겐이 경영에 관여한 지난 10년 사이 4배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또 독일은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으로 오히려 난민 문제에 대한 부담도 덜었다. 지금껏 독일은 유럽연합국 중 최외곽에 위치한 탓에 동유럽에서 오는 난민들을 거의 떠맡다시피 하는 난감한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폴란드, 체코 등에 그런 책임을 상당 부분 떠넘길 수 있게 된 셈이다.

    불안한 밑바닥 정서에도 불구하고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은 유럽인 모두에게 희망찬 발전의 기회가 될 것인가. 처칠의 예언대로 하나가 된 유럽 앞에는 번영과 행복만이 펼쳐질 것인가. 남북한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적잖은 교훈을 남기며 유럽은 서서히 통일을 향한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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