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2003.01.02

진보정당, 희망을 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3.9% 득표로 정치세력화 성공 … 서민 중심 개혁 정책 인상적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2-12-26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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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시대’가 개막됐다. 세계화, 정보화 등으로 무장한 시민사회의 선택은 변화와 개혁이었고 그 중심에 노무현이 서 있었다. 50대 대통령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3김 시대의 퇴장을 동반한다.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한 20, 30대가 신파워그룹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정치개혁과 사회변혁을 강력히 주문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노무현 시대, 과연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진보정당, 희망을 쐈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진보정당은 국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유세중인 민노당 권영길 후보(왼쪽), 사회당 김영규 후보.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9%(95만7000표)의 득표율을 기록해 제도권 안에서 정치세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민주당 노무현 당선자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는 크게 차이가 났지만 1997년 대선에서 권후보가 국민승리21 간판을 달고 나와 30만표(1.2%)를 얻은 것에 비하면 5년 만에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룬 셈이다.

    권후보는 선거일 다음 날인 12월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보정치의 시대를 열 씨앗이 확실히 뿌려진 만큼 이 씨앗을 잘 키워서 대풍을 이루도록 하겠다”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소중한 ‘씨앗 표’를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는 민노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8.1%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이미 예상됐던 바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우리 사회 기저에 흐르고 있는 탈냉전적 분위기 등이 민노당의 진보적인 정책들을 수용할 수 있게 했다”며 “제도권 안의 보수정당에 대한 반감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은 6·13 지방선거에서의 약진을 계기로 진보정당 사상 처음으로 유력 후보들과 함께 TV 합동토론에 참가했다. 이 토론에서 권후보는 다른 후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을 선보이며 국민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선거 직전 민노당은 자체 여론조사에서 6~7%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투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빚어진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로 민노당은 민주당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정대표의 공조 파기에 따라 보수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기권과 함께 사표 방지 심리 등으로 민노당 지지표가 민주당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사회당 김영규 후보 0.1% 득표 … 급진정책 안 먹힌 듯

    따라서 민노당 선거대책본부는 당원들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권후보 지지를 호소하도록 했지만 결과는 기대치를 밑도는 득표율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은 이번 대선에서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창당 이래 벌인 꾸준한 대중사업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인 것이 이번 대선에서 크게 부각됐다.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공기업 해외매각 반대 등을 내세우며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벌여왔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노동자·서민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것이 인정받았다.

    둘째, 부정부패와 비리에 연루되고, 친재벌 정책 등을 내세우고 있는 기성 보수정당과 구별되는 민노당의 민주적인 당운영 방식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이자제한법·부패방지법 등 서민을 위한 정책 입법 활동이 국민들의 기대심리를 높였다.

    셋째, IMF 관리체제 이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서민들의 삶의 질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성장 일변도 정책과 일방적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반감이 높아져, 분배와 참여 중심의 진보적 구조개혁을 내세운 민노당의 공약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분석된다. 부유세 신설, 무상의료, 대학평준화, 남-북-미 평화협정 등을 내세우며 ‘평등하고 줏대 있는 나라’를 건설하자는 민노당의 정책도 신선했다는 평이다.

    민노당보다 더 급진적인 정책을 내놓은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파업 노동자와 농민들을 주로 찾아 장기파업 해결과 농가부채 탕감 등을 약속했지만 득표는 불과 0.1%(2만2000표)에 그쳤다. 사회당은 민노당과 마찬가지로 유효투표의 15% 미만을 획득했기 때문에 대선기탁금 5억원 가운데 선전벽보 작성 비용에 들어간 비용만 돌려받고 나머지는 모두 국고에 귀속해야 한다.

    민노당은 정당 국고보조금으로 연간 5억원 정도를 받지만 당원들의 당비가 주요 운영자금이다. 당비를 내는 당원들은 민주당(7000여명), 한나라당(1만여명)보다 많은 3만2000여명이다. 이들은 당대표나 공직선거 후보를 직접투표로 선출해왔다. 이로 인해 당대표 개인이나 소수 정파에 휘둘리지 않는 민주적 당내 구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노당은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포함해 최소 1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교섭단체까지 구성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서민들의 민생현안을 접수해 해결해주는 ‘민생보호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국민 생활에 더 밀착한 민생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권후보는 기자회견에서 “2003년에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편에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유일 ‘선명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다”며 “개혁적 대통령을 자임한 노무현 당선자에게 정당 민주화 등 정치개혁을 주문하고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견제와 비판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 민감한 노동 현안에 대해서는 새 정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12월17일 민노당 지지선언에 나섰던 교수(123인) 중 한 명인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국내 노동자와 해외자본 간의 갈등이 점점 더 첨예화하고 있지만 노무현 당선자는 노동자의 편이라기보다는 해외자본의 편인 듯하다”며 “민노당은 노동자의 편에 서서 새 정권에 맞서 조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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