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

스스로 날개 꺾어 ‘악! 夢’

누적된 불만 폭발 ‘캐스팅보트’ 착각 가능성 커 … 이미지 한순간 무너지고 정치생명 ‘벼랑끝’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2-12-26 12: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노무현 시대’가 개막됐다. 세계화, 정보화 등으로 무장한 시민사회의 선택은 변화와 개혁이었고 그 중심에 노무현이 서 있었다. 50대 대통령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3김 시대의 퇴장을 동반한다.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한 20, 30대가 신파워그룹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정치개혁과 사회변혁을 강력히 주문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노무현 시대, 과연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스스로 날개 꺾어 ‘악!  夢’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2002년 12월20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당사를 나서고 있다.

    왜 그랬을까.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는 대통령 선거 전날 돌연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유권자들의 놀라움은 적지 않았다. 16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의 최대 이변으로, 선거 이후에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철 전 의원 등 국민통합21 전·현직 핵심 관계자들은 대선 이후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노후보 지지철회 발표 직전 상황, 노후보와의 선거공조 과정과 관련된 비화들을 공개했다. 문제의 종로 음식점 회동 내막도 자세하게 전했다. 이들의 증언들을 통해 정대표가 지지철회를 선언한 배경을 살펴본다.

    12월18일 저녁 정대표는 노후보와의 명동-종로 공동유세를 마친 뒤 측근 50여명과 함께 서울 종로 한식당 ‘우래옥’에서 불고기와 냉면으로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엔 허운나, 김성호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도 있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까지 유세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가장 먼저 얘기를 꺼낸 사람은 정대표였다. 그는 이철 전 의원에게 “아까 유세 때 노후보 발언 들으셨죠?”라고 물었다. 노후보는 종로유세에서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본 뒤 “대통령후보는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추미애 의원이나 정동영 의원과 경쟁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말리겠다”는 노후보 발언은 명동유세에서 나왔다.

    정대표는 국민통합21 최운지 공동선대위원장, 신낙균 최고위원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전 의원이 갑자기 여종업원을 부르며 부산을 떨었다. 정대표의 질문 의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옆에 있던 가수 김흥국씨가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처음엔 식당 근처 연합뉴스에서 기자회견 지시



    정대표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긴 뒤 최위원장과 측근 A씨만 들어오게 했다. 최위원장은 중간에 나왔다. 이후 정대표는 A씨와 30분간 밀담을 나눴다. 이 전 의원은 “강경론자로 알려진 A씨 의견이 정대표에게 영향을 준 듯했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정대표는 김행 대변인에게 “‘노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의원을 놀라게 한 일은 ‘기자회견은 언론사인 연합뉴스에서 하고, 타사 기자들을 연합뉴스로 부르라’는 지시까지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래옥에서 가장 가까운 언론사가 연합뉴스였다. 국민통합21 핵심 당직자는 “당시 정대표가 노후보 유세에 얼마나 격앙되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당직자들은 “특정 언론사에 가서 기자회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만류했다.

    국민통합21 관계자들은 여의도 당사로 일단 가기로 하고 유세 버스에 올랐다. 김행 대변인은 버스에 타지 않았다. 당 지도부는 “대변인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지지철회 발표를 하지 말라고 하라”고 김민석 전 의원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이때 이미 김행 대변인은 다른 승용차에서 A씨로부터 정대표의 의중이 담긴 메모를 건네받고 있었다. 당 지도부는 당사에 도착해 회의실에서 김행 대변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사이 김대변인은 노후보 지지철회 기자회견을 거의 끝내고 있었다. 이 전 의원은 “당 지도부와 당원의 의사는 완전 배제됐다.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정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평창동 정대표 자택으로 갔다. 정대표는 “잔다”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국민통합21 핵심 관계자가 정대표 부인 김영명 여사 등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나라의 유력 대통령후보가 찾아왔는데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집 밖에다 세워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을 열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스스로 날개 꺾어 ‘악!  夢’

    국민통합21 당직자들이 12월19일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에 반발해,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12월21일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철 전 의원.

    국민통합21 핵심 관계자는 “이상의 정황으로 봤을 때 노후보에 대한 지지철회는 정대표 혼자서 전격적으로 결정한 일이다. 정대표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사전에 치밀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노후보의 유세에 격분한 심리적 상태가 그대로 표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통합21 핵심 관계자였던 B씨는 “정대표의 지지철회 결정은 ‘우발적 사건’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런 결정에 이르게 된 데는 정대표와 노후보 진영 간 불신 누적 등 근본적 요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B씨는 또한 “후보단일화 이후 한나라당의 회유 작업도 대단했었다”고 술회했다.

    B씨에 따르면 노후보로 단일화된 직후 양측의 선거공조는 ‘조건 없는’ 공조였다. 그러나 이후 통합21측은 노후보측에 분권형대통령제로의 개헌, 대북 현금지원 중단 등 대북문제, 대미관계 문제 등 정책공조를 요구했다. 정대표에 대한 공개사과도 요구했다. 노후보측은 이를 모두 수용했다. 그럼에도 정대표는 노후보와의 공동유세에 나서지 않았다.

    12월13일 마침내 정대표는 노후보와 선거공조에 합의했다. 이때 처음으로 노-정 양측의 공동 국정운영 계획이 나왔다. 노후보가 TV토론이나 유세에서 “정몽준 대표와 국정을 함께 해나가겠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동 국정운영은 정대표측이 차기 정권의 권력을 분점한다는 것으로, 이전의 정책공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철 전 의원은 “매스컴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국민통합21은 각료 배분 비율 등 차기 정권의 권력 지분을 구체적으로 보장해달라고 민주당측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또한 “문서로 이를 보장해달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이를 거절하고 포괄적 의미의 공동 국정운영 약속만 하며 맞섰다.

    당시 민창기씨가 탈당하는 등 통합21 안팎에선 선거공조 압력이 힘을 얻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통합21은 공동 국정운영 등에 관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받지 못한 채 노후보측과 선거공조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재벌을 개혁하겠다” “차기 대통령 정몽준은 속도위반이다”는 노후보 발언이 터져 나와 정대표의 마음속에 내재돼 있던 불안감, 불만족감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통합21 한 관계자는 “정대표가 노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공동 정부운영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철 전 의원에 따르면 지지철회 발표에는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정대표는 자신이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지지를 철회하더라도 노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낙선될 확률보다 더 높다고 생각했다면 정대표는 절대 지지철회 발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정대표는 계산을 잘못한 셈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정대표의 행위에 대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많다. 단일화 약속을 선거 직전 파기한다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 위반이며 명분이 없었다는 게 첫번째 이유다. 정대표로선 선거공조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무조건 남는 장사’였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노후보가 당선되면 정대표는 국정공조 약속을 들어 노후보로부터 ‘실리’를 챙길 여지가 있었다는 것. 노후보가 이를 지키지 않거나 정대표를 박대할 경우 노후보에게 약속 위반 책임이 돌아갈 상황이었다. 또한 노후보의 재벌개혁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으며 동시에 ‘범여권 대권주자 1순위’에 오를 수도 있었다. 노후보가 낙선하더라도 정대표가 얻은 ‘정정당당한 정치인 이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지지철회로 정대표는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해도 되는지 국민에게 다시 물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1992년 대통령선거 투표일 며칠 전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부산본부는 부산 기관장들의 모임을 불법도청해 이들의 선거 개입 의혹을 터뜨려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국민당 부산본부장이었던 정대표는 도청을 한 피의자들에게 도피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재판에서 최종 인정돼 도청 사주 의혹을 받기도 했다. 정대표가 관여한 대통령선거에선 항상 마지막 순간에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