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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미리 보는 李-盧 내각

권력 나누기 “글쎄…”

盧-鄭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합의 ‘투톱 체제’ 구축 … 2004년 총선 승리 등 남은 변수 수두룩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권력 나누기 “글쎄…”

권력 나누기 “글쎄…”

11월25일,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이후 다시 만난 민주당 노무현 후보(오른쪽)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

국민통합21(이하 통합21)의 정몽준 대표는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아니라 선대위 명예위원장이 됐다. 정대표의 한 측근은 이를 “후보와 동격이란 의미”로 풀이했다. 이 자리를 먼저 제안한 것은 정대표였다. 명예위원장은 특보단과 비서실, 대변인을 둔다. 당과 선대위 두 집 살림에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던 민주당은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러나 거절하기도 어렵다. ‘세 집’ 살림을 차려야 하지만 그가 얻어올 표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 참여 명분 얻고 통합21의 생명력 강화

후보로 나선 정대표를 여러 차례 검증했지만 아직도 그를 속속들이 아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회의를 했던 인사들도 정대표의 지향점을 물으면 “글쎄…”라며 말끝을 흐린다. 11월 중순의 일이다. 통합21 관계자들이 정후보에게 “각 지구당과 당 사무처에서 자금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며 정대표에게 주머니를 풀라고 요구했다. 조직이 무너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 기존의 정치 상식이라면 소위 ‘실탄’을 풀 시점이다. 그러나 정대표의 말은 달랐다

“왜 돈을 달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돈으로 하는 정치를 용납할 수 없다. 내가 돈을 풀어 선거에서 이기면 세상사람들이 아버지가 물려준 돈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얘기하지 않겠느냐.” 몸을 사리는 것인지, 다른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은 측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대표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했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소식을 들은 측근들은 “깨끗이 승복하는 이미지에 금이 간다”며 정대표를 만류했다. 그러나 정대표는 물러서지 않고 밀고 나갔다. 도박은 성공했다. 정대표 입장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는 밑지지 않는 장사다.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라는 정대표의 분권형 대통령제가 추진될 경우 정대표의 활동공간과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권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도 얻고 통합21의 생명력도 강화할 수 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기면 한나라당 소속 인사들 중 다시 탈당에 나설 사람들이 많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노무현’의 민주당으로 가기 힘들다. 정체성의 차이를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후보가 개혁 드라이브를 가속화하면 민주당 입당은 그만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경우 통합21이 완충역을 할 수 있다.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국민회의로 가지 않고 자민련으로 대거 이동한 것과 같은 이치다. 정대표는 가만히 앉아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수도 있다. 정대표에게 세가 모이면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형국이다. 2004년 총선 대비도 가능하고 사실상 ‘정몽준당’을 구성할 수도 있다. 차기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더구나 민주당 내 개헌론자들과 종으로, 횡으로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수확도 얻을 수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박상천 최고위원이다. 박위원이 6월23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자”며 개헌을 언급하자, 기다렸다는 듯 정균환 원내총무가 맞장구를 쳤다. 7월3일 이인제 의원도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하자고 치고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JP도 환영했다. 개헌을 고리로 정대표는 민주당 내 우군그룹과 연계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한 셈이다.



노후보측은 당초 정대표의 계산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다. 한 측근은 “정대표가 몸을 빼려는 수순을 밟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노후보 측근들은 “어떤 상황으로 가든 함정이 있을 것”이라며 노후보에게 “확답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개헌 카드를 받을 경우 권력 나눠 먹기란 비난을 피할 수 없고, 반대로 거절하면 정대표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려는 고육책이었다.

노후보측이 부담을 가진 것은 정대표의 개헌론이 당내 개헌론자들의 주장과 틀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박상천 최고위원, 정균환 총무 등 당내 개헌론자들은 모두 비노(非盧) 반노(反盧)성향의 중진들이다. 노후보측은 반 이회창-비 노무현의 여러 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해 지난 6월 제기됐던 개헌론이 다시 등장한 이면에 또 다른 흑막이 있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정균환 의원과 같이 움직였던 김민석 전 의원이 10월17일 정대표 진영으로 옮겨 간 점을 주시했다. 개헌이 박상천-정균환-김민석-정몽준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의혹을 품은 것이다.

노후보측은 11월29일 정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2004년 개원하는 17대 개원 국회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개헌을 발의해 17대 국회 임기 내에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노후보가 정대표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노풍(盧風)의 재점화가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노풍이 순풍을 타기 위해선 정대표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측근들의 채근이 이어졌고 국정원 도청 문건을 공개, 노풍의 재점화를 가로막고 나선 한나라당의 대세몰이가 위기감을 조성한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노후보가 동의함으로 노-정 투톱 시스템은 외형을 갖췄다. 그렇지만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노후보는 여전히 2004년 총선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다수당에 총리지명권을 주는 책임총리제를 시험 운용하는 중간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선거 공조는 정책에서 출발해야 함에도 단일화 효과에 집착, 국가의 근간인 개헌문제를 공조의 고리로 활용했다는 비난도 부담이다. 한나라당은 당장 “권력 나눠 먹기”라며 비난에 나섰다(상자기사 참조).

헌법을 고쳐야 하는 현실적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일단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2단계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2004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90년 3당 합당과 내각제 개헌 밀약, 97년 DJP 공조와 내각제 약속 등 정치인들의 개헌 합의는 있었지만 실현은 없었던 것이 정치현실이다. 권력을 나누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다. 노후보와 정대표가 새로운 정치 지평을 열 수 있을까.





주간동아 363호 (p28~2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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