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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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길도 수행 … 부처님 말씀 알려야죠”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0-15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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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의 길도 수행 … 부처님 말씀 알려야죠”
    태풍 ‘라마순’이 몰고 온 빗줄기가 심상찮은 징조를 보이던 7월12일 오후,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불혹의 비구니를 만났다. 스님 소운(素雲). ‘본래 그대로의 구름’이라는 뜻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법명을 굳이 ‘흰구름’이라 풀이한다. 맑은 세상을 바라보며 어디에나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서 였을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큰스님이 지어준 법명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운명…. 그랬다. 그녀는 출가한 후에도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13년간 이국 땅을 떠돌았다. 그러다가 올 6월 홀연히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그녀의 손에는 하버드대학 박사학위증이 쥐어져 있었다.

    “부처님 말씀의 진수를 알고 싶어서….” 89년 2월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일본 도쿄대학에서 5년을 머무르며 ‘정영사 해원의 계율사상’이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8년 만인 올해 6월6일 ‘능가경 인도 주석서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 대학원 범어 인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간은 더 길지만 도올 김용옥의 공부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더니 “영광이지만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비교한다”며 기자의 속됨을 탓한다.

    그저 부처님이 좋고 불교가 좋아서 편지 한 장 달랑 남겨두고 절로 ‘가출’한 18세 소녀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학승(學僧)이 되어 돌아오기까지 사연도 많고 할말도 많았을 터.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고생이요? 진짜 고생한 사람은 고생스럽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죠. 공부도 하나의 수행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간간이 절을 찾던 그녀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왜 내게 이런 일이….” 그녀는 그 모두를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던져준 법문은 번민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녀에게 속세를 벗어던질 용기를 심어줬다. “마음만 잘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그녀는 드디어 출가했다.



    ‘마음만 다스리면’ 되는 줄 알았던 그녀는 출가 후 시간이 흐르면서 불교가 생각처럼 쉬운 공부가 아님을 깨닫는다. 강원에서 설법을 듣고 법문을 익혀가던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한자와 한문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한글로 불교를 배울 수 없을까 하고 궁리하던 그녀가 찾아낸 곳이 바로 동국대 선학과.

    “대학에서는 한글로 불교를 가르친다고 해서 검정고시와 학력고사까지 치르고 대학에 들어갔죠.” 하지만 생각과 달리 ‘한문’은 계속됐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모두가 한문이었고 토씨만 한글”이었다.

    “배움의 길도 수행 … 부처님 말씀 알려야죠”
    실망한 그녀는 이번에는 일본서적으로 눈을 돌렸다. 불교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루어진 일본이라면 한문을 보다 쉽게 풀이해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에 매달리기를 1년. “달달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그녀는 휴학계를 내고 해인사 선방으로 몸을 감추었다. 역시 깨달음은 홀연히 찾아온다고 했던가. 참선을 하던 중 그녀는 대오각성했다. “도대체 누가 공부를 하는 것인가. 동국대학인가, 나인가. 어느 누구에게 의지해서 공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제 불교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소운 스님은 우연히 일본의 ‘불교학연구 방법론’이라는 책을 잡게 된다. “영어, 중국어, 불어, 티벳어, 독일어, 범어, 빨리어(남방불교권·스리랑카 등지의 언어), 일어를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기초다.”

    책의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때부터 언어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총 8개 국어에 중국어는 고문과 현대언어를 함께 배워야 했다. 역시 한국에서는 역부족. 89년 2월 동국대를 졸업한 그녀는 그 해 3월 중국불교를 연구하기 위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떠났다. 당초 연구원 자격으로 갔던 그녀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도쿄대학 인도철학과 교수들의 인정을 받아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물론, 진학 2년 만에 6세기 당대 최고의 승려였던 중국 정영사(절 이름) 해원 스님의 사상을 재해석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번에는 인도불교. 한문, 일어, 중국어를 극복한 그녀는 불교의 성지인 인도 불교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그것도 인문학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대학 인도 범어학과. 대승불교를 꽃피운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제 불교의 본산인 인도에 이른 것. 어느덧 그녀는 불교의 진수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유학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녀를 가장 괴롭힌 것은 역시 경제적 어려움. “장학금과 기숙사 생활로 연명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었죠. 사가(私家)가 그리 부유한 편도 아니었고. 부처님의 도움으로 현지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학비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계속된 언어공부가 참선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언어는 반복과 암기가 중요한데 그것에 치중하다 보면 참선할 수가 없어요. 참선은 의식을 버리는 작업인데 언어학습은 참선의 적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중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그녀는 이 어려움을 염불로 극복했다. 단순 반복되는 염불로 의식을 정화하고, 또 이를 통해 언어공부에도 도움을 받았다.

    “배움의 길도 수행 … 부처님 말씀 알려야죠”
    “얼굴은 몰라도 제 염불 소리는 들어줄 만합니다. 참, 한국에서는 자기자랑 하면 안 되는데….” 호방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서 미륵불의 단초가 엿보인다.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보다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는 그녀는 지금 동국대 교수가 되기 위해 분주하다. ‘공부도 하나의 수행’이라고 믿는 그녀에게 자신이 배운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자 운명이기 때문.

    “저는 어릴 때부터 고기 마늘 파를 못 먹어서 전생에도 중이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역학을 하시는 분들도 애당초 저더러 학승이 될 팔자라고 했고요. 공부하기 싫어하던 어린시절에는 그 말이 싫더니 정말 팔자가 된 지금은 그 말이 그렇게 고맙더군요.”

    점심을 같이 하던 소운 스님이 기자를 보고 뜬금없이 “고기도 생선도 먹지 않는 것을 보니 당신도 전생에 중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다만 지금 먹고 싶지 않을 따름”이라고 답하자 “혹 어릴 때 고기를 못 먹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라며 놀라는 기자에게 그때서야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그게 바로 윤회라고 설명한다. 윤회는 시간과 사건의 연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소운 스님.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윤회는 반복된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공부하는 스님’ 소운에게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고 하릴없이 질문을 던졌다. 되돌아오는 스님의 답변이 가슴 한구석을 관통한다.

    “불교와 부처에 대한 의문, 대의심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까지 오지도 못했습니다. 그게 제 필생의 화두고, 그래서 공부합니다.”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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