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왼쪽)이 친이계가 추천한 윤진식 의원의 최고위원 지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퇴장하자 안상수 대표(맨 오른쪽)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11월 22일 한나라당 서병수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윤진식 의원이 당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거론되는데 반발해 당무 거부를 선언했다.
“당무 거부는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 난리를 피우고 그냥 나가겠다는 것이냐.”
안상수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서 최고위원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당 지도부를 선출한 7·14 전당대회(이하 전대)가 열린 지 5개월 가까이 된 상황에서 그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지명직 최고위원은 대표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명한다. 그만큼 당 대표는 각 정파와 당원이 두루 공감하는 인물을 추천해 최고위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이날 서 최고위원의 반발로 최고위원 추천 및 선출에 관한 안건은 상정 자체가 보류됐다. 이후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여당 역학관계 리트머스 시험지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최고위원 지명 논의가 미뤄졌지만 곧 다시 불거질 것이다. 최고위원은 당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각 정파는 ‘자기 편’을 심으려 한다. 이 문제는 앞으로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계 간 갈등 정도와 당청(黨靑) 관계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밖에 없다. 누가 양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처음 꺼낸 카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의 말처럼 최고위원 지명을 놓고 당내 복잡한 구도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7·14 전대 직후 안 대표는 ‘호남과 충청권을 배려하고 친이-친박계 간 화합’이란 원칙 아래 7·28 재보선 뒤 지명직 최고위원 구성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곤 친이-호남 몫으로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카드를 내밀었다. 부산 동서대 교수 출신(고향은 전남 영광)인 김 전 사무처장은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전남도지사 후보로 나서 14.4%를 득표한 인물. 17대 대선 당시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과 함께 선진국민연대를 조직하고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대외협력도 맡았다.
하지만 정두언 최고위원이 발끈했다.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데다 자신과 ‘앙숙’인 박영준 차관과 ‘의형제’ 사이인 김 전 사무처장이 탐탁지 않다. 정 최고위원은 “나를 욕보이려는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뿐이 아니다. 앞서 김 전 사무처장은 지방선거 이후 7·14 전대에서 대표최고위원 선거에도 출마했다. 당시 정 최고위원은 “나를 떨어뜨리려는 의도”라며 반발했다. 광주를 배경으로 한(부친 고향이 광주, 자신은 서울 출생. 어릴 적 광주에 살았다) 정 최고위원과 호남을 기반으로 출사표를 던진 김 전 사무처장의 지지표는 겹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박 차관과 의형제라는 데서, 정 최고위원 측은 ‘박영준 연출, 김대식 주연의 정두언 떨어뜨리기’라고 봤다. 당시 ‘서로 드롭(중도 사퇴)하라’며 으르렁대는 모습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한 친이계 의원의 분석이다.
“지명직 최고위원이 장기간 공석이 된 사태는 ‘김대식 카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직의 달인’이라고 칭찬할 만큼 그를 신뢰하고, 불모지 전남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한 만큼 그를 배려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대식 카드가 나왔을 때 당 내부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가 야당 당원 출신이라는 말도 나왔고, ‘영포회’ 사건으로 선진국민연대 출신에 대한 반발도 컸다. 존경받는 최고위원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전남에서 14%대의 득표를 한 만큼 제대로 키워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1 친박계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를 추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전 도지사와 담소 중인 박근혜 전 대표(오른쪽). 2 2009년 12월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윤진식 의원. 3 7월 14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정두언(왼쪽), 김대식 후보가 냉랭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사무처장은 ‘김대식=박영준’이라 보는 것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김 처장 카드에 대한 반발이 일자, 6·2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 후보로 나선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도 지명직 최고위원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사무처장의 말이다.
“한두 분에게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를 권한 걸로 안다. 정 전 장관에게도 (지명직 최고위원을) 권했는데, 그는 ‘당의 전면에 나서는 게 부담된다’고 말했다고 내게 전했다. ‘호남은 김대식이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호남에서 청와대와 안 대표를 만족시킬 만한 ‘김대식 대안’을 찾으려 해도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김대식 카드’를 여전히 만지작거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 여기에 친이-호남 몫 최고위원 인선이 마땅치 않자, 친박-충청 몫으로 눈을 돌려 윤진식 의원 카드를 내밀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친박계는 들끓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서 최고위원이 ‘당무 정지’를 선언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당초 안 대표가 친박계에게 충청 몫으로 지명직 최고위원 추천을 요구했다. 친박계는 김학원, 강창희 전 의원과 이완구 전 충남지사를 추천했지만 충청 몫 최고위원 지명 역시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면서 ‘MB노믹스’의 전도사인 윤진식 의원 지명설이 나돌자 친박계가 폭발한 것이다. 서 최고위원은 “안 대표가 친박계 충청권 인사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3명을 올렸는데 이유 없이 거부됐다. (거부한 데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청와대가 당 최고위원 자리까지 노린다’며 흥분했다.
“우리(친박계)는 3명을 추천했다. 강창희 전 의원은 ‘당 전면에 나서고 싶지 않다’며 본인이 고사한 걸로 안다. 그럼 이완구 전 지사는 왜 안 되나? 청와대에서 못 받아들인다는 것 아니냐. 안 대표도 비공식적으로 김대식 카드에 대해 ‘나의 뜻이 아니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윤진식 카드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서 최고위원이 안 대표에게 ‘청와대 거수기가 될 거냐’며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전 지사는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해 지사직은 사퇴했지만 당내에서 싸우겠다며 탈당하지 않은 분이다. 단체장으로서 당연히 이해되는 행동 아닌가. 당 화합을 위해 친박계에 최고위원을 추천하라고 해놓고 그 자리에 친이계 의원을 거론하는 게 말이 되나. 우리는 친이계 사무총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태클 걸지 않는다. 이렇게 뒤통수를 쳐도 되나.”
한나라당 지명직 최고위원 선출은 이처럼 정파 간 첨예한 이해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를 안고 가야 하는 안 대표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수직적인 당청 관계에 대한 비판과 친이-호남 몫 인물 부재 속에 안 대표의 고심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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