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베, ‘꽃으로 사랑을 말하다’
지난 20년간 아프리카를 드나들며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해온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장은 “아프리카 미술엔 항상 인간이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실제로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대부분의 인물이 전면에 드러나 있고, 풍경은 배경에 불과하죠. 심지어 실생활의 작은 도구에까지 인간의 형상을 그려 넣었는데요. 아프리카 한 부족이 사용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도구는 손으로 눌러 바람을 불어넣는 부분이 여자의 봉긋한 가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부족은 아궁이에 불 지피는 일을 남자가 했을 것 같은데요.
12월 14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통큰(02-732-3848)과 사간동 아프리카미술관(02-730-2430)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제 ‘Now or Never’는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회화의 선구자인 팅가팅가(E. Saidi Tingatinga), 우리나라 도깨비를 떠올리게 하는 익살스러운 그림의 릴랑가(George Lilanga), 다양한 색채와 문양으로 일상의 소망을 그려낸 카툰(Joseph Cartoon) 등의 작품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맴돕니다. 마치 팔딱팔딱 생기 넘치는, 작품 속 인물들이 ‘행복하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기 때문이죠.
특히 아프리카미술관에선 꽃으로 인간의 사랑을 표현한 케베(Ibrahima Kebe)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는데요. 이 미술제를 기획한 정 관장은 “케베의 인물들은 꽃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춤을 추고, 키스를 한다. 여기서 꽃은 아프리카라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단지 곁에 있어준다는 이유만으로 힘이 되는 누군가를 뜻한다. 이는 연인일 수도, 부모일 수도, 자녀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50대 중반인 케베 작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고 해요. 그림을 그리다가 구경 온 사람들이 있으면 수다 떨며 놀고, 망고를 먹다가 망고 색이 예쁘면 그림에 바로 칠한다죠. 그에게 그림 그리기란 일이 아닌 놀이인 겁니다.
전시 주제인 ‘Now or Never’는 ‘아프리카 미술, 지금이다. 나중에는 늦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해요.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순수한 오늘의 아프리카 미술을 만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또 하나, 아프리카 미술은 투자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실제 미국에선 아프리카 작품으로 눈을 돌리는 컬렉터가 늘고 있다고 해요. 정 관장은 “오바마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이 더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저평가된 부분이 많다”고 귀띔했죠. 어찌 됐든 아이와 같은 생명 에너지를 얻고 싶으면,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왼쪽) 카툰, ‘모두가 주연’ (오른쪽) 릴랑가, ‘세상 만사를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