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홈리스에게 돼지고기 수프를 제공하는 극우 성향 지원단체의 행위를 비판하는 포스터.
‘배고픈 홈리스 적극 지원’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몇 년째 같은 시간, 장소에서 홈리스를 끌어모으는 봉사자들의 정체는 ‘L’association d’extreme droite SDF’로, 프랑스의 극보수파를 지향하는 일부 저소득자로 이뤄진 단체다. 여기서 배급하는 수프의 주재료는 돼지고기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유대인이나 무슬림 홈리스는 먼발치에서 수프 냄새만 맡아야 한다. 주요리인 수프와 함께 배급되는 사이드 메뉴도 햄, 훈제 삼겹살 등이어서 먹을 수가 없다.
의도적으로 돼지고기 넣어 끓여
파리의 홈리스에게 최소한의 식사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에서조차 외국인, 특히 무슬림 아랍계나 아프리카계 이주민의 프랑스 거주를 극도로 반대하는 극보수파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모두를 위해 준비한 음식이 사실은 특정인이 먹을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돼지고기만 넣은 수프라는 것이 알려지자 프랑스 정부는 이 단체의 배급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다. 2007년 인종차별과 인권모독을 이유로 배급을 즉각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2010년 현재까지도 봉사라는 이름의 만행은 계속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금지됐지만, “지금껏 한 번도 배급을 거른 적이 없다”는 봉사자의 말처럼 정부는 이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고 있었던 것.
오늘도 모로코 출신 가족은 혹시나 하고 이곳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들이 빵 한 조각이라도 받으려고 천막 주위를 서성이다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 무슬림 홈리스인 켄자(43)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우리 같은 사람을 도와준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돼지고기 수프만 주고, 빵이나 기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전혀 없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아랍계 같으면 고개를 돌려요. 오늘도 혹시나 해서 왔는데, 또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매달 이 단체에서 배급을 받는 홈리스는 돼지고기 수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프랑스 종합지 ‘르 파리지앵’에 소개된 홈리스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저 배가 고파서 주는 대로 먹는 것뿐이다.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쩌겠는가?”
“돼지고기로 홈리스 지원 음식을 만드는 게 얼마나 나쁜 의미인지 잘 안다. 하지만 따뜻하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이곳에 오는 걸 그만둘 수는 없다.”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홈리스는 프랑스 사회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작은사진) 문제의 돼지고기 수프를 홈리스에게 배식하는 모습.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0년째 거리에서 살아가는 홈리스는 그릇된 의도를 알면서도, 오로지 배를 채우기 위해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 시청 관계자 오딜 트로스티안스키는 경찰서장 미셸 고당에게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과 인종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특정인들을 우롱하는 이 단체의 횡포를 중단시켜라”라는 내용의 자필 탄원서를 작성했다. 저소득층 지원단 회장인 자크 드로는 “이대로 놔두면 프랑스인은 되고 이주민, 특히 아랍계나 아프리카계는 안 된다는 파렴치한 의식이 확대될 것”이라며 “조만간 이를 반대하는 직접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내 홈리스 인권보호단체도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체 담당자인 오딜 보니바는 “돼지고기 값이 무척 싸서 돼지고기로 수프를 끓이는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 그리고 무슬림은 다른 곳에서 끼니를 때우지, 왜 우리 배급소에 와서 서성이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행위는 ‘자원봉사’의 탈을 쓰고 프랑스 수도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무언의 고문이다. 집을 잃고 거리에 내몰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도 선택받은 ‘프렌치’들만 누릴 수 있는 돼지고기 수프는 인종차별로 얼룩진 프랑스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