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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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왜곡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11-26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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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왜곡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한 장면.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혹시키는 도시 터키 이스탄불. 누구든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박물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도시의 골목과 모퉁이 하나하나가 문화유산인 곳. 이스탄불 외에 어디에서 또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이스탄불, 그리고 그 자랑스런 도시를 가진 나라 터키를 야만과 폭압의 공간으로 그린 영화가 있다.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마약 밀수를 시도하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붙잡힌 미국 청년 빌리가 갇힌 터키의 감옥은 그야말로 생지옥 같은 곳이다. 고문과 폭력, 강간 등이 벌어지는 악몽 그 자체다. 그러나 진짜 심각한 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가 터키의 감옥에 대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터키를 빌리의 조국 미국, 즉 서구의 문명사회와 끊임없이 대비시킨다. 관객들은 터키의 감옥만이 아니라 터키 사회 전체가 그 같은 전근대적인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빌리는 결국 ‘미드나잇 익스프레스(탈주)’를 타고 이 지옥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빌리가 쓴 터키 감옥의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빌리의 이야기, 그리고 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는 과연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인 빌리 헤이스가 30년 만에 스스로 그에 답했다. 지난해 30년 만에 터키를 다시 찾은 그는 터키인들에게 잘못을 빌었다. “영화로 인해 터키의 모습이 왜곡된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는 “늘 이스탄불에 돌아가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해왔다”고 고백했다.

    젊은 시절 이 영화 각본을 썼던 올리버 스톤도 이스탄불을 찾아 “터키에 피해를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젊음에서 나온 열정이 지나쳤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두 사람의 뒤늦은 참회와 사과는 그대로 의미 있고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영화를 사실의 진위를 떠나 하나의 은유로 받아들인다면 영화에는 전적으로 허구만은 아닌 면이 있다. 그것은 서구인들이 터키를 바라보는 시각이 투영됐다는 점이다. 서구가 갖고 있는 터키에 대한 편견과 경계심이 자신들이 보고 싶은 터키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 편견과 불편한 심정의 뿌리에는 결국 옛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기억이 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를 정복하고 기독교 문명을 굴복시켰으며, 기독교 성지인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의 벽화를 이슬람의 문양으로 뒤덮은 굴욕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영화 주인공 빌리 30년 만에 “왜곡 미안” 참회



    유럽을 횡단하는 열차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의 종착지는 이스탄불이다. 그것은 터키가 유럽의 일부인 듯하지만 그 끝이자 경계이며 접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터키는 유럽의 경계, 주변인에서 이제 유럽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고 몇 년째 유럽에 구애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터키를 아직도 자신들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독일에서 녹색당 당수로 터키계 의원이 선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를 유럽 사회가 반(反)유럽의 이교도 문명에 대해 좀더 개방적이 되고 있다는 징표로 봐도 될까. 동서양 문화의 갈등, 그러나 그것을 넘어선 통합과 융화. 이것이야말로 이스탄불발(發), 또 터키에서 전해오는 특급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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