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마이스터 하우스 중 ‘오스카 슐레머의 방’ 재현 모습(금호미술관 ‘유토피아’전).
최근 들어 ‘디자인’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죠? 특히 얼마 전 서울이 디자인 수도로 지정되고 난 뒤부터 TV는 물론 지하철 광고판까지 디자인 관련 행사광고가 아주 전세를 낸 것 같아요. 그중에서 단연 큰 행사는 지난달 폐막한 ‘디자인 올림픽’이었습니다. 오지랖 넓은 구보 씨, ‘미술’기자지만 디자인 행사도 모두 다닙니다. 그런데 오지랖 넓은 건 구보 씨뿐만이 아니더군요. 그곳에서 적지 않은 미술작가들을 만났거든요. 올림픽 주경기장을 통째로 폐 플라스틱 용품으로 둘러놨던 최정화부터 농부 작가 이종구, 도시주의 작가 그룹 플라잉시티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타이포그래피와 가구·신발 디자인展 부담 없어미대 입시생들 사이에서야 순수미술이냐 디자인이냐가 문제겠지만,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다면 현장에서는 그런 구분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 작가 잭슨 홍도 있고, 그래픽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은 현재 한국에서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가장 가볍게 넘나드는 작가라 할 수 있죠.
네덜란드 WT공방의 엽서 이미지(제로원디자인센터 ‘Starting from Zero’).
어쩌면 예술가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란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구분 없이, 또한 삶과 예술의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찍이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실제 있었다고 하네요. ‘유토피아’(~12. 28, 금호미술관)는 바로 1919년부터 33년까지 독일에서 일어났던 바우하우스 운동, 즉 생활문화의 혁명에 관한 전시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와 헤르베르트 바이어 같은 디자이너, 바실리 칸딘스키와 라즐로 모홀리나기 같은 미술가들이 모여 주택, 주방, 가구 및 조명 등 실제 생활 요소에 실험성과 이데올로기를 적용했다고 하는데요. 참으로 부러운 시대였죠. ‘이상에서 현실로’라는 이번 전시의 부제가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들의 바우하우스 운동은 20여 년간 지속된 뒤 멤버들이 미국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중단됐지만 지금까지도 디자인과 건축, 미술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MADE2008-Saving by Design’전 전시물.
20세기 초 급진적 디자인의 발신지가 독일이었다면 현재는 네덜란드일 겁니다. 이제는 그 폭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디자인의 세계는 넓지만, 자칫 지나치기 쉬운 분야가 있죠. 지금 독자 여러분께서 보고 계시는 글자 모양은 바로 타이포 디자인입니다.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네덜란드 아른험의 타이포그래피 공방 베르크플라츠 타이포그래피(Werkplaats Typografie·WT)의 전시(~11. 30, 제로원디자인센터)가 열리고 있습니다. ‘Starting from Zero’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특별히 WT공방의 폴 엘리먼과 맥신 콥사의 강연이 열려 국내의 많은 디자인 학도가 몰렸다고 하네요. 타이포그래피의 고수들을 한국에서 볼 기회는 이미 놓쳤지만 포스터, 인쇄물, 영상, 다큐멘터리 사진 등 WT공방에서 온 풍성한 아카이브 자료는 아직 전시 중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국내에는 아직 디자인 전문 전시장이 자리잡지 못한 편인데요. 예술의전당 내에 있는 디자인미술관이 꿋꿋하게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MADE2008-Saving by Design’전(11. 20~12. 17)이 열리는군요. 우리에게 친숙한 가구 브랜드 IKEA와 신발 브랜드 Camper 등의 디자인이 전시된다고 하니 부담 없이 즐기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