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대가로 억대의 CF·방송 출연료를 받는 인기 연예인들. 보통사람과는 분명히 다른 존재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돈의 가치는 하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예인도 일반인과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간다. 그만큼 일상으로 돌아오면 1000원짜리 한 장도 아쉽다.
엄밀히 따져보면 연예인은 보통사람과 비교해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할 수 있다. 대다수 연예인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세금도 적게 신고해 대체로 낮은 신용등급을 부여받는다. 품위유지비, 대인관계비로 들어가는 돈도 상당하다. 특히 인기의 불안정성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돈 관리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어 어느 직업보다도 재테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제대로 자산 관리를 하지 않으면 노년에 낭패 보기 십상인 것이 연예인이기도 하다. 결국 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나 장삼이사(張三李四)나 큰 차이가 없다.
■ 대체로 자산관리사 통해 펀드, 부동산, 주식 투자
그렇다면 연예인은 돈을 어떻게 굴릴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들은 대부분 전담 PB(자산관리사)에게 자산 관리를 맡긴다. 이름 석 자가 널리 알려진 톱스타의 경우에는 국세청의 감시가 엄격하기 때문에 탈세나 딴 주머니를 차고 돈을 불리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톱스타들은 대체로 수입 관리를 PB에게 맡기고 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편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연예인을 비롯한 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카운슬링을 하는 한 PB팀장은 “톱스타에게는 전담 PB, 변호사, 세무사가 있고 이들이 자산관리를 맡는다”면서 “자기 재산을 10으로 봤을 때 2는 금융자산, 나머지 8은 부동산에 투자할 만큼 아직은 부동산 투자 비중이 높다”고 설명했다.
탤런트 K씨, 축구선수 K씨가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번 사례다. 이들의 경우 소득이 다른 연예인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수익성 못지않게 안전성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금융자산의 경우에도 채권투자에 관심이 많다.
최근 주식시장 침체로 매력이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주식투자 역시 연예인들이 돈을 굴리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주식에 투자하는 연예인들은 주로 인맥을 활용하는데, 절친한 기업인이나 유명 증권사 펀드매니저에게 전해 듣는 상장 기업들의 미공개 정보로 수익을 얻는다.
실제 유명 탤런트 Y씨는 펀드매니저, 기업인들과 주기적으로 골프를 치는 등 접대를 통해 주식투자 정보를 얻고 있다고 한다. 톱 탤런트 J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기업 정보나 투자할 곳을 구체적으로 일러줘 수익을 얻고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상적인 재테크 못지않게 비정상적으로 돈을 굴리는 돈테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톱스타와는 거리가 먼 연예인에게서 이런 양상이 두드러진다. ‘기부 천사’로 유명한 가수 김장훈, 탤런트 문근영 씨도 있지만 돈 굴리는 데 혈안이 된 연예인도 부지기수다. 이들의 돈테크 실태를 살펴보면 혀를 내두를 만큼 방법도 다양하다.
■ 해외 부동산 투자 러시… 컨설팅업체 정보만 빼먹고 실제 투자는 현지 에이전시 통해 계약
부동산 투자는 연예인들의 대표적인 돈테크 수단이다. 국내 빌딩과 상가건물 매입을 넘어 최근에는 해외 부동산 투자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탤런트 권상우 씨는 호주 골드코스트에 자리한 ‘서클 온 캐빌’ 펜트하우스를 약 17억원에 매입했다. 영화배우 장동건 씨와 메이저리그 박찬호 선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동차로 30분가량 떨어진 마리나 델 레이에 레지던스를 샀으며, 고현정 씨는 필리핀 보니파시오의 7억원대 콘도미니엄을 매입했다.
해외 부동산 컨설팅업체 루티즈코리아 임채광 팀장은 “고환율 탓에 최근에는 문의가 뜸하지만 올해 8월까지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연예인들의 문의가 빗발쳤다”며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해외 부동산 투자는 연예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고환율에 따른 환차익 덕에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부동산에 투자한 연예인들은 최소 50%에서 최대 150%까지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최근에는 젊은 연예인들도 해외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어 현지 모기지를 70% 가까이 받아 1억원 내외로 투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해외 부동산 투자를 할 때도 얌체짓을 서슴지 않는 연예인들이 있다. 매니저를 서너 차례 보내 부동산 컨설팅업체에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정작 계약은 하지 않는 것. 그 대신 몇몇 연예인이 뭉쳐 부동산 컨설팅업체에서 얻은 각각의 정보들을 취합한 뒤 자기들이 직접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부동산을 계약하는 것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를 통했을 때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처지에서는 정보만 제공하고 계약은 하지 못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격’이 된다. 탤런트 L씨, 영화배우 J씨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한다. 한 부동산 컨설팅업체의 관계자는 “연예인이라고 해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실제 거래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그래서 요즘은 상세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원칙적으로 다른 고객들과 동일하게 대우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속사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주식 대박’을 터뜨리는 연예인들도 많아졌다. 서울 목동의 한 증권사 객장.
금전 투자 없이 이름만 내세워 돈을 버는 것도 연예인들의 독특한 돈테크 방법. 대표적인 사례는 연예인이 엔터테인먼트 회사 등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다.
최근 소속사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 연예인들이 늘고 있는데, 이는 소속사를 옮기거나 큰 수입이 있을 때 연예인들이 돈 대신 지분을 요구하는 경우다. 소속사 처지에서는 현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 연예인들의 지분 참여로 주식시장에서 자사 주가가 오르는 반사이익도 챙길 수 있다. 또한 연예인이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외부 투자를 유치할 수도 있다. 연예인 처지에서도 주식이 오르면 대박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연예인들이 사실상 이름만 내걸고 주식을 받아 보유하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또한 코스닥 상장사 인수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얼굴마담 격으로 등장해 공식적인 코스닥 갑부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예인들이 직접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타인에게 빌려주고 이익을 챙기는 돈테크 사례도 있다. 직접 고깃집을 운영하는 유명 방송인 K씨는 지방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상호를 내건 고깃집으로부터 주기적으로 이름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탤런트 두 명이 공동대표로 있는 D헬스클럽의 경우, 대구 지점이 상호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연간 억대의 돈을 건네고 있다고 한다.
■ 차명계좌 통해 유흥업소 출연료 빼돌리고 세무서에는 축소 신고
카바레, 성인나이트 등 유흥업소에 출연하는 유명 가수, 개그맨, 탤런트의 경우 차명계좌를 만들어 출연료를 빼돌리고 수입을 축소 신고하기도 한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1년여 간 전국 야간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지난 7월 야간업소와 연예기획사 간 커넥션에 대한 수사 결과를 검찰에 송치했다.
이와 동시에 수사 과정에서 유흥업소의 영업장부 등을 다량 압수해 국세청에 넘겼다. 국세청은 넘겨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연예인들의 세금 탈루 여부를 조사 중이다. 현재 100명이 넘는 연예인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가수 J씨, 탤런트 B씨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업소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기획사나 매니저가 유흥업소와 출연계약을 맺는다. 공식적인 CF 촬영과 방송 출연의 경우 연예인 출연료를 부풀리거나 축소하면 국세청 조사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속이기 쉽지 않지만, 유흥업소와 연예인 사이에서 오가는 돈은 불투명한 경우가 많다. 연예인 출연료가 축소되거나 심지어 차명계좌를 통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유흥업소에 출연하는 한 가수는 “유흥업소 출연료가 내 통장으로 직접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일부”라며 “그 대신 매니저 등 다른 사람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분산해 받는다”고 털어놨다.
1회 출연료로 1000만원이 들어오면 300만원만 자신의 통장으로 받고, 나머지 700만원은 다양한 명의의 차명계좌로 빼돌리는 것이다. 유흥업소의 한 관계자는 “차명계좌를 만들고 세무서에 수입을 축소 신고하는 연예인이 많은데, 이번 국세청 세무조사로 업소들의 영업장부를 확인하면 그동안의 행각이 모두 들통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사채, 다단계에서 도박까지
고(故) 안재환 씨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채를 끌어다 썼고, 결국 불어나는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다. 당시 고 최진실 씨는 안씨에게 25억원가량의 사채를 빌려준 전주(錢主)라는 이른바 ‘25억 사채설’에 괴로워했으며, 이 같은 악성 루머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연예인들이 사업 때문에 사채를 많이 쓰기도 하지만, 연예인들의 자금이 알게 모르게 사채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52059;·#52059;사채의 전주가 실제로는 연예인 누구다’라는 ‘카더라’식 소문도 명동 사채시장에서 적지 않게 들린다.
방송인 강병규 씨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20억원 상당의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도박도 한탕을 노리는 연예인들이 주로 하는 돈테크다. 다른 돈테크와 달리 큰돈이 오가면서 자신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도박이다. 보통 억대의 판돈이 오가는데, 실제 돈을 벌기보다 잃는 경우가 많아 돈테크로서의 기능은 크지 않다.
11월18일 프로야구선수 출신의 방송인 강병규 씨가 인터넷 도박사이트에서 20억원 상당의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수 신정환 씨도 2005년 국내 불법 카지노 바에서 도박을 한 혐의로 벌금 70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강원랜드 인근의 한 전당포 주인이 “연예인들이 도박하다가 급전을 구하기 위해 맡겨두고 간 차를 되찾아가기도 한다”고 귀띔할 만큼 연예인들의 도박은 만연해 있다. 심지어 미국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등 해외 원정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도 적지 않다. 개그맨 H씨, 방송인 J씨 등이 그 예다.
■ 99%의 연예인에겐 너무 먼 이야기들
이 같은 일부 연예인들의 돈테크에 대다수 연예인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한 가수는 “어디보다도 양극화가 심한 곳이 연예계다. 한 번 출연으로 1500만원을 받는 1%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 1500원 벌기도 힘든 99%의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 연예계”라며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힘든, 연예인 같지도 않은 우리로서는 돈테크는 꿈도 못 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한 사극에서 무게 있는 조연급으로 열연한 탤런트 L씨의 말이다.
“당시 출연한 조연급 가운데 아직도 출연료를 받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더욱이 최근 방송사들이 재정 악화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드라마 제작편수를 줄여 아예 살길까지 막막해졌다. 여윳돈을 굴린다는 것은 그들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연예협회 석현 이사장도 “몇몇 톱스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연예인이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로 사정이 열악하다”며 “톱스타들이 벌이는 돈테크의 행태를 보면 ‘그들만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