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수능시험을 다시 치렀던 김모(38) 씨. 그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를 불안감에 한의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방 한의대에 들어간 김씨는 2006년 졸업과 동시에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늦은 나이인 만큼 하루빨리 한의원을 차리려 했지만 초기 투자시설비가 만만치 않았다. 5억원이 넘는 시설비를 감당하기 위해 김씨가 찾은 것은 엔화 대출. 당시만 해도 값싼 엔화 대출을 받는 한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엔화 가격이 치솟기 시작해 원금은 2배가 됐고, 이자마저도 2배 이상 부담하게 됐다. 더욱이 환자 수까지 급격히 줄어들면서 경영상태는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김씨는 개원 1년여 만에 한의원 문을 닫고 말았다.
의사와 더불어 평생 직업에 고수익이 보장되는 전문직으로 각광받던 한의사. 하지만 이도 옛말이 됐다. 최근 한의원을 찾는 환자 수가 감소하면서 폐업 한의원이 늘어남에 따라 ‘한의사 업계에 위기가 온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한방병원협회의 ‘한방병원 2003~2007년 진료실적’에 따르면 28개 주요 한방병원 외래환자는 2003년 199만3911명을 기록한 뒤 2007년 182만185명으로 4년 사이 17만여 명의 환자가 줄었다. 환자 수가 급감하다 보니 문 닫는 한의원도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의원 폐업 현황’에 따르면 폐업 한의원 수는 2000년 364곳을 기록한 뒤 2006년 734곳까지 매년 늘고 있다(그림 참조).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나은 편이지만 대구 대전 등 일부 광역시에서도 폐업 한의원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한의원은 다이어트, 비만 한의원 등으로 특화도 해보지만 신통치 않다.
일부는 다이어트·비만치료 특화 시도
한의사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한의대의 추락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 11개 한의대 중 우석대를 제외한 10개 한의대의 경쟁률은 지난해에 비해 떨어졌다(표 참조). 경원대의 경우 경쟁률이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을 정도다. 한때 수능성적 상위 0.5% 안에 들어도 합격을 걱정할 만큼 서울대 의대 합격권과 나란히 했던 경희대 한의대 지원자의 수능성적도 이제는 지방 의대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의사 업계의 위기는 한순간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2003년 건강보험에서 한의원 및 한방병원 치료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확대됨에 따라 진료수가가 상승하면서 급격히 환자 수가 줄었다. 부산 북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 한의사는 “진료수가 상승이 비록 몇천 원 차이지만 매일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는 적은 부담이 아니다”라며 “하루에 서너 명의 환자를 보는 날도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한의사들은 특히 중국산 한약재에 대한 환자들의 광범위한 불신이 그들을 한의원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불량 한약재를 유통하기도 했다. 예컨대 오미자를 약재로 쓰기 위해서는 A급이 필요한데, 기타 식품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엔 C급을 쓰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에서 식품용인 C급 오미자를 수입한 뒤 A급 약재로 둔갑시켜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다 전문성과 안정성이 부각되는 한의사 업계에 사람들이 점점 몰리면서 한의사 수급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11월5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2008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는 “2010년에는 최대 4077명, 2020년에는 최대 3650명의 한의사가 과잉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한의사들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자연스레 수익성도 악화되는 실정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한의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한의사를 비롯해 의료 전반에 과잉인력을 공급하는 정책을 폈다”며 “오히려 과잉인력이 국민보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의사 업계는 위기를 극복하려고 무엇보다 한약재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마련한 기준에 맞춰 한약재의 사전 검사를 강화하는 한편, 원산지 시스템을 구축해 한약재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여부와 관련 세금, 유통 현황까지 추적할 수 있는 이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희대 한의학연구소 류봉하 교수는 “한약에 대한 안전성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탕제 위주의 처방을 먹기 쉽고 보관하기 쉬우며 값도 저렴하게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진출 적극 모색
한의사들의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에 500여 명의 한의사가 진출했으며 호주 뉴질랜드 등에도 교환교수 및 연구원으로 나가 있다. 이란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 중동국가에서도 한의학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현수 회장은 “한의학은 국가적 재산이다. 의료비 절감에서도 전통의학인 한의학은 중요하다”며 “지금이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회가 될 수 있는 블루오션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의사들이 임상에 몰리다 보니 매년 5~6%의 공급 증가를 보이지만 연구, 해외진출 등에 대한 잠재 역량을 강화한다면 현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만의 전통의학으로 여겨졌던 한의학은 서구에서도 관심 있게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침술, 약재 등에 수천억 원의 돈이 투자돼 “우수한 약재의 종자들은 미국이 다 가지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 한국 한의사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다. 중국 역시 5년제 중의과 대학을 두고 ‘중의학’이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대만에도 7년제 학교가 존재한다. 특히 한의사 개방이 이뤄지면 한국어가 가능한 조선족 한의사들이 대거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 내우외환에 처한 한의사 업계는 위기를 딛고 도약할 수 있을까.
의사와 더불어 평생 직업에 고수익이 보장되는 전문직으로 각광받던 한의사. 하지만 이도 옛말이 됐다. 최근 한의원을 찾는 환자 수가 감소하면서 폐업 한의원이 늘어남에 따라 ‘한의사 업계에 위기가 온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한방병원협회의 ‘한방병원 2003~2007년 진료실적’에 따르면 28개 주요 한방병원 외래환자는 2003년 199만3911명을 기록한 뒤 2007년 182만185명으로 4년 사이 17만여 명의 환자가 줄었다. 환자 수가 급감하다 보니 문 닫는 한의원도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의원 폐업 현황’에 따르면 폐업 한의원 수는 2000년 364곳을 기록한 뒤 2006년 734곳까지 매년 늘고 있다(그림 참조).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나은 편이지만 대구 대전 등 일부 광역시에서도 폐업 한의원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한의원은 다이어트, 비만 한의원 등으로 특화도 해보지만 신통치 않다.
일부는 다이어트·비만치료 특화 시도
한의사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한의대의 추락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 11개 한의대 중 우석대를 제외한 10개 한의대의 경쟁률은 지난해에 비해 떨어졌다(표 참조). 경원대의 경우 경쟁률이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을 정도다. 한때 수능성적 상위 0.5% 안에 들어도 합격을 걱정할 만큼 서울대 의대 합격권과 나란히 했던 경희대 한의대 지원자의 수능성적도 이제는 지방 의대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의사 업계의 위기는 한순간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2003년 건강보험에서 한의원 및 한방병원 치료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확대됨에 따라 진료수가가 상승하면서 급격히 환자 수가 줄었다. 부산 북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 한의사는 “진료수가 상승이 비록 몇천 원 차이지만 매일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는 적은 부담이 아니다”라며 “하루에 서너 명의 환자를 보는 날도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한의사들은 특히 중국산 한약재에 대한 환자들의 광범위한 불신이 그들을 한의원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불량 한약재를 유통하기도 했다. 예컨대 오미자를 약재로 쓰기 위해서는 A급이 필요한데, 기타 식품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엔 C급을 쓰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에서 식품용인 C급 오미자를 수입한 뒤 A급 약재로 둔갑시켜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다 전문성과 안정성이 부각되는 한의사 업계에 사람들이 점점 몰리면서 한의사 수급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11월5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2008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는 “2010년에는 최대 4077명, 2020년에는 최대 3650명의 한의사가 과잉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한의사들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자연스레 수익성도 악화되는 실정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한의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한의사를 비롯해 의료 전반에 과잉인력을 공급하는 정책을 폈다”며 “오히려 과잉인력이 국민보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의사 업계는 위기를 극복하려고 무엇보다 한약재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마련한 기준에 맞춰 한약재의 사전 검사를 강화하는 한편, 원산지 시스템을 구축해 한약재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여부와 관련 세금, 유통 현황까지 추적할 수 있는 이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희대 한의학연구소 류봉하 교수는 “한약에 대한 안전성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탕제 위주의 처방을 먹기 쉽고 보관하기 쉬우며 값도 저렴하게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현수 회장은 “위기임은 분명하지만 기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한의사들의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에 500여 명의 한의사가 진출했으며 호주 뉴질랜드 등에도 교환교수 및 연구원으로 나가 있다. 이란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 중동국가에서도 한의학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현수 회장은 “한의학은 국가적 재산이다. 의료비 절감에서도 전통의학인 한의학은 중요하다”며 “지금이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회가 될 수 있는 블루오션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의사들이 임상에 몰리다 보니 매년 5~6%의 공급 증가를 보이지만 연구, 해외진출 등에 대한 잠재 역량을 강화한다면 현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만의 전통의학으로 여겨졌던 한의학은 서구에서도 관심 있게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침술, 약재 등에 수천억 원의 돈이 투자돼 “우수한 약재의 종자들은 미국이 다 가지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 한국 한의사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다. 중국 역시 5년제 중의과 대학을 두고 ‘중의학’이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대만에도 7년제 학교가 존재한다. 특히 한의사 개방이 이뤄지면 한국어가 가능한 조선족 한의사들이 대거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 내우외환에 처한 한의사 업계는 위기를 딛고 도약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