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카무플라주
서울 경복궁 서쪽 돌담을 끼고 돌면 서울 도심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그 길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청와대 때문일까. 숨막힐 듯 무거운 공기가 머물러 있다. 더구나 골목마다 배치된 전경들은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이방인을 쏘아본다.
지하철 경복궁역 앞 대로에서 청와대에 이르는 통의동길 중간쯤에서 70여 년 긴 세월을 버텨낸 ‘보안여관’ 간판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예전의 여관이 아니다.
“2006년 9월 재건축 결정으로 폐허가 된 여관에 작가 13명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8개월간 이 건물에서 먹고 자면서 우리네 일상에 드리워진 역사성을 면밀하게 탐색하자는 의도였죠.”(김승호 ‘쿤스트독’ 미술연구소장)
2006년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한 젊은 예술집단 쿤스트독(www.kunstdoc.com)은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보안여관에 주목했다. 쿤스트독의 ‘통의동 프로젝트’ 매니저인 김현주 씨는 “초기에 건물주는 물론 동네 주민들과도 갈등이 있었지만, 한시적으로라도 지역의 역사성을 복원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한다.
시한부로 빈 보안여관을 ‘점거’한 작가들은 고인숙 권남희 박진호 박형철 손한샘 이명진 이진준 우금화 최익진 차기율 등 한국 작가들과 일본인 곤도 유카코, 독일인 베른트 할베르, 키프로스 출신의 미칼리스 니콜라이데스 등 다국적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올해 6월 사라질 보안여관과 인근 가옥 두 채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이것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반에게 공개된 ‘예술현장 통의동’의 출발점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묘사한 대로 청와대 주변 통의동은 권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공간이다. 외관은 양옥이지만 내부는 적산가옥 구조를 간직한 보안여관 역시 그 이름에 합당한 역사를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군사정권 시절까지 총독부나 청와대 장기파견자들의 숙소 또는 경호원 가족의 면회장소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여관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수십 년의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지나 좁은 방에 들어서면, 70년대 교련모자가 어울릴 법한 낡은 옷걸이가 이방인을 맞이한다. 여관방 하나씩에 든 작가들은 이곳을 ‘작업공간’이자 ‘생활공간’으로, 그리고 ‘전시장’으로 변모시켰다. 이들은 무엇보다 보안여관의 역사적 특징에 주목했고, 자신의 경험을 투영했다.
차기율, 도시 試掘 - 삶의 고고학(왼쪽), 고인숙, 일상의 기념.
일본작가 곤도는 여관 지하실에서 오래된 인형과 옷가지, 먼지 쌓인 액자와 낯선 군용품, ‘민병철 생활영어’ 등을 발굴해 ‘유물’처럼 전시한다. 여관 지하실에서 찾아낸 700장의 슬라이드 사진은 작가 미칼리스에게 색다른 벽화의 재료가 됐다. 보안여관 14개 객실과 그 방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들. 누군가에게 보안여관은 단순한 정거장이었을 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거나 고통스런 기억일 것이다.
통의동 프로젝트를 총괄한 쿤스트독 김승호 소장은 “통의동 주민들이 작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교류하면서 현대미술과 가까워졌다는 인식을 공유한 점이 가장 큰 성과”라며 “공공미술 분야에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을 계속 모색해나갈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올 여름 재건축 공사에 들어갈 보안여관의 남은 생명은 이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러나 작가들은 건물이 사라진 뒤에도 이를 영원히 존재하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일상에 깃든 역사를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일상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안여관은 대단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 시한부 레지던스 프로젝트인 ‘예술현장 통의동’의 종합보고전 격인 ‘통의동 경수필’전은 3월2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