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 ‘빵을!’
“원시의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필요만을 느꼈고, 눈으로 보아 흥미롭다고 여겨지는 것만 쳐다보았다. … 그리고 각각의 세대는 언제나 똑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으므로, 최초 시대의 모든 조야함 속에서 수백 년이 되풀이되며 흘러갔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람이 여럿 존재한다고 하여 당연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루소가 원시상태에서는 차별의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사회의 속성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관계의 형성이 없다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일도 없다. 이러한 ‘고립된 개인의 상태’를 사회계약론자들은 ‘자연상태’라고 불렀다. ‘사회 혹은 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의 상태’다. 자연상태를 벗어나면서 강하거나 궁핍한 자가 그의 힘이나 욕구를 일종의 권리처럼 생각하면서 평등은 깨진다.
루소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회가 있는 곳에 불평등이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사회적 불평등은 제도화된 상태로 존재했다. 결국 사회가 있는 곳이라면 불평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평등의 가치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회는 개개인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사역(四域·Geviert) 개념에서처럼 세계는 각 단일성(Holon) 중 어느 것도 다른 셋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인권선언문 제1조에서 인간은 권리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고 생존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평등의 개념이 달리 사용되고 있고,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평등에 대한 개념 규정은 정책과도 직결된다.
“평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수량적인 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비례적인 평등이다. 전자는 수 또는 크기에서의 동일 또는 균등을 의미하며, 후자는 비율에서의 균등을 의미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연세대 2008년 예시
나아가 최근 복지국가에서는 브라이언 터너의 조건의 평등까지 고려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경우든 사람들의 조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용에서의 ‘여성 할당제’‘장애인 할당제’ 등과 같은 적극적인 우대정책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차별이 없는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홍길동의 율도국은 완전히 평등한 국가였을까? 혼자 남았던 ‘로빈슨 크루소’ 또한 무인도에 상륙한 식인종의 포로인 프라이데이를 구출해 하인으로 삼는다. 여기서 우리는 불평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미래의 삶의 전망에서 나타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전망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그 불평등을 줄일 때 사회적 약자의 처지가 더욱 악화될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 존 롤스 ‘정의론’, 고려대 2007년 수시1
결국 우리는 사회 속에서의 완전한 평등은 포기해야 할 것인가? 루소는 위의 책에서 신체적 조건과 외모에 대한 관찰은 가능하지만 그 평가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탈무드의 다음 구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 인류는 단지 한 선조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 연관 기출문제
연세대 2008년 예시 ‘분배와 평등’, 중앙대 2007년 수시1 ‘평등의 개념’, 고려대 2007년 수시1 ‘정의와 효율성’